오늘, 생각하기
[+55] 인생 2모작

봉쥬르! 몽마르트

화가 민형식

“아버지가 퇴직 후 프랑스로 그림 그리러 가신다고 한다”고 전했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그 양반 거기갈 위인이 못 된다.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그러나 어머니의 예상과 달리, 아버지는 정말 프랑스로 날아갔고, 몽마르트(Montmartre) 언덕의 거리 화가가 되었다. 민병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트 파파」 속 주인공인 아버지, 민형식 화가의 인생 2막 이야기다.
  • 글. 이성미
  • 사진. 김도형

퇴직 후? 다 생각이 있지

민형식 화가의 가슴속엔 언제나 프랑스가 있었다. 젊은 시절, 서양화를 전공한 민형식 화가에게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그림을 그릴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아내의 반대로 기회는 무산됐고, 그는 34년을 평범한 미술 교사로 살아왔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었지만, 가끔 삶이 무료하게 느껴질 때면 그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퇴임을 앞둔 민형식 화가에게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퇴임 후에 뭐하실 거예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 생각이 있지.” 그 말 한마디가 영화감독인 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들도 ‘프랑스에 가 내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아버지의 바람을 알고 있었다. 불현듯 아버지를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아버지 민형식 화가의 마지막 수업을 촬영하고, 퇴임식에도 찾아갔다. 그러나 퇴임을 하고 바로 프랑스로 날아갈 것만 같았던 아버지는 한참이 지나도록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했다.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산에 오르며 아버지는 평범한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절대 못 간다. 갈 위인이 못 된다.” 민형식 화가를 보면서, 아내인 이운숙 씨는 호언장담했다.
“평생 마음에 담고 산 프랑스인데, 막상 가려니 선뜻 나서질 못했어요. 무엇보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죠.”
결국 아버지를 위해 아들이 나섰다. 지인을 통해 몽마르트에서 그림을 그릴 방법을 찾았고, 아버지에게 귀띔해주었다. 몽마르트 언덕의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에서 정식 거리 화가로 활동하기 위해선 파리시청에 미리 허가를 얻어야 하고, 한 달이라는 기간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도 일러두었다. 그제야 민형식 화가는 마음을 다잡았고, 프랑스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떠났다. 퇴임 후 해가 바뀐 2017년 12월, 민형식 화가의 프랑스 한 달 살이가 시작됐다. 아들 민병우 감독과 아내 이운숙 씨도 덩달아 비행기에 올랐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를 보며 관객들은 크게 웃고
한편으로는 코끝이 찡해짐을 느낀다.
젊은이들은 살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아버지·어머니의 꿈,
그리고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하며 잠시 숙연해진다.
백발의 관객은 ‘나도 꿈을 이루겠노라’ 결심한다.
몽마르트 거리 화가가 되다

프랑스에 도착 후 민형식 화가는 몽마르트 언덕으로 매일 붓과 캔버스를 들고 나갔다. 파리는 추웠고, 날씨가 변덕스러워 급히 짐을 싸야 할 일이 많았다.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했고, 음식도 언어도 입에 착 붙진 않았다. 아내의 감시(?)도 뒤따랐다. 매일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인물화 화가와 비교해 풍경화 화가는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민형식 화가는 그저 좋았다. 프랑스 땅에 첫발이 닿았을 때의 희열. 평생 가슴에 박힌 응어리가 풀어질 때의 쾌감. 이 감정만으로 “오길 잘했다”라고 말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어디든 눈을 돌려도 화폭에 담을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높게 솟은 에펠탑,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반짝이는 물랭 루즈(Moulin Rouge), 하늘과 하나의 색으로 맞닿은 니스(Nice)의 바다, 모네를 비롯하여 수많은 예술가가 사랑한 에트레타 절벽(Falaises d'Etretat).
이 모든 것이 그의 예술가적 감성을 뒤흔들었다. 루브르(Louvre) 박물관과 오르세(Orsay)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등에 들러 걸출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감상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무엇이든 그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 붓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낮이든 밤이든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까지 왔는데 그림 몇 점 팔아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가족의 물음에 “그림에 혼을 넣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꿈꾼다고 하는 그 자체가 좋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의 가장 큰 수확을 꼽는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열정’이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찍으면 찍을수록 ‘영화가 될 수 있겠다’라는 기대도 생겼다. 그리고 약 1년간의 편집 과정을 거쳐 아버지의 퇴직 후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트 파파」가 2020년 1월 9일 정식 개봉했다.

꿈꾼다고 하는 그 자체가 좋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를 보며 관객들은 크게 웃고 한편으로는 코끝이 찡해짐을 느낀다. 젊은이들은 살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아버지·어머니의 꿈, 그리고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하며 잠시 숙연해진다. 백발의 관객은 ‘나도 꿈을 이루겠노라’ 결심한다.
영화는 민형식 화가 가족의 삶도 바꾸어 놓았다. 민형식 화가는 프랑스와 한국에서 그린 그림을 모아 난생처음 단독 전시회를 열었고, 시사회에 참여해 관객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민병우 감독도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서 아버지와 함께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머니는 여전히 가시 돋친 응원을 계속해가고 있다. 가정 안에서 구성원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각자가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 다녀오면서 가슴 뛰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살맛이 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들이 참 큰 역할을 해주었어요. 아들도 내 삶을 들여다보며 느낀 것이 있었겠지만, 저 역시 이번 계기로 ‘자식은 부모의 스승이다’라는 말이 크게 와닿게 되었습니다. 관객들도 영화를 보고나서 느끼는 바가 각자 다르겠지만. 모두 가족의 꿈을 응원하는 응원군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어요.”
민형식 화가는 이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들에게 다음 영화를 이야기한다. 쿠바, 아프리카 등 가고 싶은 곳을 상상하고 새로운 꿈을 꾼다. 민형식 화가의 가슴 속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프랑스는 언제든 불쑥 나와 그가 붓을 들게 할 것이다. “봉쥬르!”라는 힘찬 인사를 건네며.

services s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