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공간의 재구성

환경을 바꾸면 모든 게 바뀐다

서울 녹천중학교 1995년에 개교한 녹천중학교는 공간혁신으로 새롭게 학교의 위상을 재정립한 학교다. 구체적이고 정교한 계획에 따라 공간의 쓸모와 모양새를 꾸준히 바꿔온 녹천중학교는 달라진 공간 덕분에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다.
  • 글. 이경희
  • 사진. 김도형

  • 학생들의 휴식 공간인 홈베이스. 층마다 학년별로 나누어진 이 공간은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양쪽 복도에 미닫이문을 달고 천정에 냉난방 시설을 해서 이곳도 교실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 소나방은 우드톤의 인테리어와 커피 향기, 잔잔한 음악이 있는 공간이다. 교사들은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재충전한다. 교사들이 직접 청소하고 관리한다.
복도 끝에 만들어진 탈의실. 누군가가 들어가면 오른쪽 상단에 설치된 센서가 깜박거린다. 이 아이디어 덕분에 탈의실은 안전하게 관리, 운용되고 있다.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전철역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 오롯이 자리 잡은 녹천중학교는 외관만 보면 그저 평범한 학교다. 그러나 학교 내부로 발걸음을 들이는 순간, 그 ‘평범함’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비범함’으로 바뀐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색다른 학습법으로 학교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공간이 곳곳에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이든 수장의 혁신 없이는 조직의 변화가 일어나기 힘든 법. 2016년에 부임한 손원석 교장은 환경을 바꾸는 일에 관심이 지대한 리더였다.
“제가 2010년에 교감 발령이 난 이후부터 근 10년간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주려고 노력해 왔어요. 공간이 변해야 사람이 변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새롭게 부임해온 녹천중학교 역시 그에게는 변화와 혁신의 대상이었다. 어둡고 침침한 느낌의 학교를 변모시켜 학생과 교사에게 활력과 변화에 대한 의지를 불어넣는 게 목적이었다. 녹천중학교의 변화는 제일 먼저 학교 도면도를 펼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빈 교실이나 공간이 생길 때마다 그곳을 따라다니며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은 학교 전체를 중구난방으로 만들 뿐, 보다 거시적이고 앞을 내다보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앉던 곳에 앉고, 가던 곳에 가고, 변화보다는 안주를 택하는 ‘관성’은 사실 아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인 법. 녹천중학교 역시 모든 공간을 학습 교실, 활동 교실, 휴식 공간, 교무실 공간의 4섹터로 나누고 움직이기까지 만만치 않은 저항과 부딪쳐야 했다.

  • 25년 전통을 가진 녹천중학교. 외양은 평범하지만 그 내부는 학생친화적이어서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다.
  • 2-6 위에 붙은 404는 4층에 네 번째 교실이라는 의미다. 학교 방문객 및 학부모들을 위해 설치한 일종의 번호판인데 처음 오는 사람도 쉽게 교실을 찾을 수 있어 반응이 좋다.
  • 형식을 파괴한 교실. 올해부터 아이들과 교사는 세로로 세워진 보드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선 채 문제를 풀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녹천중학교는 불과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큰 변화를 이루면서 학생들은 밝아지고 교사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고 있다.
인근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보내고 싶은 학교로 손꼽히면서 입학생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고 하니,
환경을 바꾼 것이 얼마나 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 놀랍기만 하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곳곳에

그러나 조금씩 바뀌어 간 학교 공간은 교사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은 소나방이다. ‘소통과 나눔으로 기쁨 가득 찬 학교를 만듭니다’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곳은 교사를 위한 카페다.
동시에 학생과 학부모가 마음 편히 교사와 상담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교무실 한복판이나 비어 있는 교실에서 했던 상담이 이곳에서 이루어지며 상담의 질은 올라갔고, 교사들 역시 한 잔의 커피와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이곳에 떡이나 과일을 가져다 놓고, 전체 메시지를 돌리면 알아서 먹고 가니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했다. 녹천중학교에는 다른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공간도 눈에 띄었다. 바로 탈의실이다. 남녀공학인 중학교에 탈의실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해 일선 학교에서는 절대로 만들지 못했던 이 공간이 복도 끝에 남녀로 나뉘어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 탈의실을 만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비슷한 목소리로 우려했습니다. 결국 교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댄 끝에 누군가가 들어가면 센서가 작동해 바깥등이 깜박거리는 시스템을 만들었죠. 작년에 만든 이후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고 학생들 역시 깜박이는 센서에 묘한 압박감을 느끼며 후다닥 옷을 갈아입게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작지만 빛나는 아이디어는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교실에 분리수거함을 따로 설치하는 대신 청소도구함에 구멍을 뚫어 분리수거가 가능하도록 해 깔끔한 교실 환경을 유지하도록 한 것. 또 서랍 없는 책상을 주문해 학생들이 사물함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유도하고 수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청소도구함에 구멍을 뚫어 분리수거가 가능하도록 주문 제작했는데 나중에 업체에서 찾아왔습니다. 구멍 뚫은 청소도구함을 제작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말이죠. 돈을 받는 대신 사물함 위의 공간을 막아달라고 했고 쌍방 계약서까지 썼죠. 작은 아이디어로 예산 없이 교실을 개선한 경우였습니다.”

토론, 회의, 수업, 동아리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문예활동실. 커텐 뒤에 대형 거울이 달려있어 아이들이 춤 연습을 할 때도 그만이다.
  • 청소도구함과 분리수거함이 일체형으로 되어 있다. 문에 뚫린 구멍을 통해 아이들은 쉽게 쓰레기를 분리수거할 수 있고 치우기도 용이하다.
  • 서랍 없는 책상. 이로 인해 교실은 한결 더 깨끗해졌고 수업 집중도는 더 높아졌다.
혁신 공간이 불러일으킨 변화

사방을 둘러본 녹천중학교는 학생 친화적인 학교였다. 어느 곳에 가도 학생들을 배려한 흔적들이 눈에 띄고 이는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애교심과 자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홈베이스’는 그런 취지를 잘 살린 대표 공간이다. 창고 공간으로 학생들은 거의 접근하지 않았던 죽은 공간을 층별로 예쁘게 꾸며 오로지 학생들을 위한 아지트로 만들어준 것이다. 2층은 3학년, 3층은 2학년, 4층은 1학년이 사용하는 이 홈베이스에는 소파와 탁자, 의자 등이 놓여있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마다 학생들이 몰려와 늘 만석이다.
“이곳은 처음 만들 때부터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가져온 아이디어를 다 수용하지는 못했지만 적게라도 반영하니 굉장히 좋아들 했어요. 그 덕분에 이곳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이 생겼고 청소도 학생회에서 조를 짜 돌아가면서 할 정도로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토론·회의는 물론,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문예활동실도 눈에 띈다. 소규모 대학강의실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형식의 활동을 가질 수 있고, 커튼을 열면 보이는 거울을 이용해 춤 연습도 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노는 공간을 봤으니 이제는 녹천중학교만이 갖고 있는 아주 특별한 교실을 둘러볼 차례다. 책걸상이 없는 교실, 책상 대신 투명한 보드가 세로로 놓여있는 교실이 바로 그것이다. 책걸상 앞에 칠판이 붙어 있는 뻔한 교실의 형태가 아닌, 환경을 바꿈으로써 교육 방법을 바꾼 교실은 학생들에게 창조와 혁신의 기운을 불어넣겠다는 의지가 끓어 넘친다.
“책걸상이 없으면 학생들은 바닥에 앉을 겁니다. 그리고 모둠별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측면에 붙어있는 칠판을 바라보거나 돗자리가 깔린 교실 바닥을 이용하겠죠. 세로로 놓인 투명보드 역시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마주 보고 문제를 풀거나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교사들은 이 새로운 환경을 어떻게 활용해서 교육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고, 학생들은 이 방식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로 성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성을 타파하는 교실인 셈이지요.”
녹천중학교는 불과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큰 변화를 이루면서 학생들은 밝아지고 교사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고 있다. 인근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보내고 싶은 학교로 손꼽히면서 입학생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고 하니, 환경을 바꾼 것이 얼마나 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 놀랍기만 하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학생들은 도서관이 아니라 카페에서 공부하고, 시끌벅적한 힙합을 들으면서 공부한다. 달라진 학생들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학교 환경뿐이다. 녹천중학교는 “사람이 환경에 수렴하는 게 아니라 환경에 사람이 수렴한다”고 생각하는 신념이 빛을 발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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