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인터뷰 1

경영학의 눈으로
농업을 바라보다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농경제사회학부 문정훈 교수 문정훈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학교 푸드 비즈니스 랩*의 비전은 ‘더 잘 먹고, 더 잘 마시고, 더 잘 노는 세상’이다. 이것이 인간이 더욱더 행복해지는 길이라 생각한 까닭이다. 이를 위해 그는 농업에 경영학적 관점을 접목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자재를 넘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먹을거리의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 푸드 비즈니스 랩 : 더 잘 먹고, 더 잘 마시고, 더 잘 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음식에 대한 담론을 다루며, 우리 음식 문화의 저변 확대를 지향하는 연구소 「The–K 인터뷰 1」은 각 전공별 명사가 된 교수들을 인터뷰하는 코너로, 교육가족이 명사의 교육 가치관과 철학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한국 농업, 이제는 품질로 승부할 때

옛말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다. 이는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라는 뜻으로,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여전히 농업은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하지만 뉴스에서 접하는 한국 농민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이윤을 남기기가 어렵다. 그런데 시장에서 농산물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 역시 그리 가볍지 않다. 어떤 이들은 ‘유통업체의 폭리’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대해 문정훈 교수는 “유통업체의 사정을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겨나는 것일까.
“전통적인 농업경제학에서는 정책적인 지원으로 농업 진흥을 도모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접근도 중요하지만, 정책 외에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학·석사를 마친 문정훈 교수가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배경이 여기 있다. 경영학의 눈으로 농업을 보면 공급을 넘어선 수요에 관심이 닿는다. 이제까지 국내에서는 농산물을 일상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컸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도 가격을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여겼다.
“돼지고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국내에서는 돼지의 품종이나 생산과정이 가격 형성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았습니다. 표준 규격돈 115kg을 맞추면 같은 가격을 받기 때문에 생산비를 적게 들일수록 생산자가 더 높은 이익을 얻습니다. 다른 농축산물도 비슷해요. 소비자들이 A와 B의 맛과 품질에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니 ‘싼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격경쟁으로만 치달으면 농산업이 성장할 수 없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농업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영세한 농민들이 생산비를 낮추고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정훈 교수는 공급이 아닌 수요에 주목했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좀 더 섬세하고 까다로워지면 맛과 품질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생긴다.
맛과 품질이 좋다고 해도 그 가치를 소비자가 알아보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몇 해 전이었던가. 문정훈 교수는 ‘골든퀸3호’라는 품종을 접한 적이 있다. 그도 처음에는 이 쌀을 집에 보관해두기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밥을 해보니 맛이 남달랐다. 이후 그는 골든퀸3호 품종을 브랜드화하는 작업에 관여했고, 골든퀸3호를 재배하는 면적도 크게 늘었다.
이 품종을 개발한 민간 농가는 ‘좋은 품종 하나 잘 개발하면 평생 먹고살 수 있다’는 선례가 됐다.

음식의 트렌드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소비자의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세련되어지면 이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식품외식 기업들은 더 노력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식품외식 산업은 성장하게 된다. 원물을 생산하는 농업도 마찬가지다. 거대 기업이 농사에 참여하는 미국이나 캐나다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족 단위의 소규모 농업이 이뤄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운 프랑스 농업이 변함 없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이유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자, 문정훈 교수는 식품회사를 비롯해 유명 셰프들과 협업하며 국내 농축산물의 브랜드화를 지원하고 있다.
“똑같은 돼지고기 요리라도 어떤 품종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어요. 색다른 돼지고기 요리를 고민하던 요리사에게 토종돼지인 ‘난축맛돈’을 써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난축맛돈’으로 만든 음식을 맛본 손님들의 반응이 뜨거웠죠.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또 다른 토종돼지인 ‘우리흑돈’으로 요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조금 비싸더라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돼지고기를 찾기 시작하면 농가들도 생산비 경쟁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죠.”
문정훈 교수는 학술 연구 외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먹거리 트렌드를 공유하고 있다. 먹거리를 대하는 대중의 생각과 경험에 영향을 미치려면 학술 용어를 대중의 표현으로 풀어내야 한다. 농업은 물론 식품업계, 외식 비즈니스 등 먹을거리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푸드 비즈니스 랩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푸드 비즈니스 랩의 연구원들과 함께 「푸드로드」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SNS 역시 대중과 소통하는 창구다.
농업과 식료품업, 외식업 등 먹거리와 관련한 이슈를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는 그의 글에 호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먹거리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식품 소비행동 전망을 바탕으로 해마다 한 번씩 「푸드 트렌드 매거진」을 만들어왔다. 어느덧 3호 까지 발행된 이 간행물은 올해 말 4호 발행을 앞두고 있다.
4호의 주제는 ‘After COVID–19’이다. 코로나19가 사람들의 식생활과 식품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다룬다.

문정훈 교수는 학술 연구 외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먹거리 트렌드를 공유하고 있다.
먹거리를 대하는 대중의 생각과 경험에 영향을 미치려면
학술 용어를 대중의 표현으로 풀어내야 한다.
농업은 물론 식품업계, 외식 비즈니스 등
먹을거리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푸드 비즈니스 랩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영학을 만난 농업,
변화하는 음식 가치를 연구하는 동력이 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밀키트의 수요도 올라가고 있다. ‘밀키트’는 식사라는 의미의 ‘밀(meal)’과 조립 세트라는 ‘키트 (kit)’를 합성한 말로 메뉴에 맞게 미리 손질한 식자재를 한 팩에 담은 제품을 가리킨다. 이미 문정훈 교수는 「푸드 트렌드 매거진」 3호에서 밀키트 시장의 전망에 주목한 바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밀키트 시장을 관심 있게 바라봤습니다. 2019년 9월을 기준으로 국내에 출시된 밀키트 제품을 전수 조사했어요. 사용한 식자재를 비롯해 레시피와 조리방식 등을 다각도로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의 확산 일로에 있던 올해 5월에 다시 한번 전수 조사를 마쳤습니다. 10월에도 한 차례 더 조사를 앞두고 있고요.”
실제로 국내 밀키트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 중이다. 2019년 9월, 10개 브랜드 270개가 유통되던 밀키트 시장은 2020년 5월을 기준으로 42개 브랜드 673개 제품으로 확대되었다. 밀키트의 변화 과정을 시계열로 분석하면 이후의 먹거리 트렌드도 예측해볼 수 있다. 문정훈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 특수가 지나가면 특색이나 강점을 갖춘 제품 중심으로 밀키트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요즘 문정훈 교수의 관심사는 가정간편식의 다양화다.
“육류를 활용한 가정간편식은 이미 다양하게 나와있는데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단백질인 생선과 어패류 등을 활용한 메뉴는 아직 거의 없어요. 식품회사에서도 관심은 있지만 식자재의 신선도 관리가 어려워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고 있죠. 그래서 푸드 비즈니스 랩에서 생선 등을 활용한 가정간편식을 어떤 형태로 개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문정훈 교수는 농작물이 자라는 토양을 비롯해 농업, 수확, 유통, 가공, 도매, 소매, 외식, 급식, 섭취 등에 이르는 먹을거리와 관련된 가맹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는 과정까지 두루 연구하고 있다. 경영학을 만난 농업이 우리나라 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기를 희망하면서.

services s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