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쉬어가기
지금, 여기

‘비화가야의 꿈’이 흐르는
문화의 고장, 경남 창녕

경상남도 창녕군은 우리나라의 4대강 가운데 하나인 낙동강을 끼고 있는 고장이다. 아울러 창녕군 동쪽에는 억새군락지로 유명한 화왕산이 있다. 해마다 4월 중순이면 화왕산 능선 곳곳에서 진달래꽃 군락지도 만날 수 있다. 창녕군은 교통이 매우 편리한 고장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두루백리의 고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는 대구, 마산, 밀양, 합천 등이 모두 100리 안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최근 들어 창녕군은 ‘생태도시’라는 새로운 별명을 또 하나 얻었다. 창녕군 전체가 지난 2018년에 제주시, 순천시, 인제군 등과 함께 세계 최초의 ‘람사르 습지도시’로 인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인증을 받은 습지도시는 창녕군을 포함한 7개국 18개 도시다. *송일봉 작가는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해외여행전문지 ‘코리안 트레블러’ 편집부장과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 편집장을 지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길 위의 인문학’ 기획위원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국립공원 대표경관 100경’ 선정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문화답사 프로그램 ‘송일봉의 감성여행’을 25년째 진행하고 있으며, KBS 한민족방송에서 매일 ‘5분 여행기, 구석구석 코리아’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 여기」는 기존의 해외 여행지 소개에 이어 국내 여행지 소개를 요청하신 회원님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우리나라의 다양한 여행지를 소개하고자 마련된 코너입니다. 아직은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여행이 자유롭지 않지만, 대한민국 곳곳의 숨은 명소를 통해 잠시나마 여행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되었습니다. *비화가야 : 6가야(대가야, 소가야, 금관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성산가야)중 지금의 창녕지역에 있던 나라
  • 글_사진. 송일봉(여행작가)

1. ‘교동고분군’을 답사하는 탐방객들
가야시대 고분들이 모여 있는 ‘교동고분군’

창녕은 ‘제2의 경주’라 불릴 정도로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고장이다. 가야국의 많은 나라 가운데 ‘비화가야(소가야)’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그래서 창녕에는 가야시대의 유물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명소가 교동고분군(사진 1)이다.
창녕의 교동고분군에는 80여기의 고분들이 밀집돼 있다. 현재 이 고분들은 대부분 5~6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제강점기 때인 1918~1919년 사이에 대규모의 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당시 마차 20대에 실을 수 있는 많은 유물이 출토됐으나 대부분 일본으로 반출됐다.
창녕에 있는 가야시대 고분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부분의 고분들이 구릉지대에 밀집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명계사상(冥界思想)’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명계는 ‘사후세계’를 의미하는데, 돌아가신 분을 조금이라도 하늘과 가까운 곳에 모시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구릉지대는 묘를 쓰기에 좋지 않다. 비가 많이 내리면 봉분의 흙이 쓸려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봉분 주변을 단단한 돌로 쌓은 ‘호석’(사진 2)으로 이러한 단점을 보완했다. 교동고분군의 높은 지대에 있는 고분에서는 지금도 호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교동고분군 옆에는 지난 1996년에 개관한 창녕박물관(사진 3)이 있다. 이곳에는 비화가야의 다양한 유물들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많은 유물 가운데서도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배, 동물이 그려진 토기가 눈길을 끈다. 가야시대의 유물인 ‘굽다리접시’(사진 4)도 볼 수 있다. 일명 ‘창녕형 접시’로 불리는 귀한 유물이다. 참고로 ‘굽다리’는 ‘그릇에 달린 높은 굽’을 말한다. 창녕박물관의 문화관광 해설사와 동행하면 유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직접 고분을 둘러볼 수 있다.

  • 2. 호석이 잘 보존되어 있는 교동의 한 고분
  • 3. 가야시대 유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창녕박물관
  • 4. 일명 ‘창녕형 접시’로 불리는 ‘굽다리접시’
동요 ‘산토끼’의 발상지, 이방초등학교

창녕에는 그 유명한 신라진흥왕척경비(사진 5)도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비석인 신라진흥왕척경비는 신라 진흥왕 때인 561년에 조성됐다. 1914년에 발견됐고, 643자 가운데 400여 자만 판독된 상태다. 참고로 진흥왕이 세운 비석은 창녕 외에 서울의 북한산과 북한의 마운령, 북한의 황초령에도 있다.
창녕읍 중심가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석탑의 형식을 잘 갖춘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사진 6)이 있다. 상륜부는 사라지고 없지만 기단, 옥개석, 탑신, 층급계단 등이 잘 보존돼 있다.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해서 현재 주변은 자그마한 소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옆에는 창녕 술정리 하씨 초가가 있다. 남향에 ‘일자(一字)’로 부엌, 안방, 대청마루, 건넌방 등이 이어져 있다. 짚 대신 억새로 지붕을 얹은 점, 다듬지 않은 목재를 대청마루의 아랫면으로 쓴 점, 자연석을 댓돌로 쓴 점 등이 눈길을 끄는 민간 가옥이다. 현재의 집은 조선시대 영조 때인 1760년에 지어졌다.
한편, 창녕의 이색적인 명소는 창녕읍에서 북서쪽으로 10km쯤 떨어져 있는 이방초등학교(사진 7)다. 이 학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요 ‘산토끼’가 처음 만들어진 학교로 유명하다. 동요 ‘산토끼’는 일제강점기 때인 1928년 이방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이일래 선생님이 ‘나라 잃은 설움’을 산토끼에 비유해서 만든 노래다.
현재 학교 교정에 ‘산토끼 노래비’(사진 8)가 세워져 있으며, 학교 옆에는 산토끼노래공원이 있다.

5.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인 ‘신라진흥왕척경비’ / 6.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술정리 동삼층석탑’ 7. 동요 ‘산토끼’의 발상지인 이방초등학교 / 8. 이방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산토끼 노래비’
창녕의 진산, 화왕산

해발 756m의 화왕산은 창녕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편찬)에 ‘창녕의 진산’이라고 소개돼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화왕산 서쪽 자락에는 ‘자하곡’이라 불리는 이름다운 골짜기가 있다. 자하곡은 ‘자하동천(紫霞洞天)’이라 불리기도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동천’은 ‘천제와 신선이 소통하는 공간’을 가리키는 도교 용어다. 따라서 자하동천은 ‘신선이 살 정도로 아름답고 신성한 공간’을 의미하는 셈이다.
화왕산의 명소 가운데 하나인 자하곡은 도성암에서 화왕산 정상으로 가는 3개 코스 가운데 2코스에 포함돼 있다. 2코스는 화왕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가파른 코스다. 화왕산의 자하곡 매표소에서 도성암까지의 거리는 약 1.3km다. 도성암에서는 화왕산의 1코스, 2코스, 3코스가 갈라진다. 가장 완만한 3코스를 이용할 경우 도성암에서 화왕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약 1.6km다.
화왕산을 오르는 다른 코스도 있다. 옥천매표소에서 출발해 관룡사(사진 9), 용선대, 관룡산 등을 거쳐 화왕산 동문(추정지)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약 6km인 이 코스에서 가장 멋진 곳은 용선대다. 용선대에는 보물 제295호인 석조석가여래좌상이 있다. 용선대에서는 화왕산과 관룡산의 유려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 9. 화왕산에 있는 전통사찰인 관룡사
  • 10. 화왕산 정상에 펼쳐져 있는 억새밭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활약했던 화왕산성

화왕산은 밀양 재약산, 광주 무등산과 함께 억새 군락지로도 유명하다. 화왕산에 둘러싸여 있는 정상부 전체가 모두 억새밭(사진 10)으로 뒤덮여 있다. 억새밭이 있는 화왕산 정상에는 ‘배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하나 있다. 이 바위에는 재미난 얘깃거리가 있다. 즉, 배바위는 커다란 두 개의 바위 사이로 겨우 한 사람이 빠져나갈 정도로 작은 틈이 벌어져 있는데, 이 틈을 지나면서 ‘길이 참 넓구나’라고 말하면 신기하게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날씬한 사람이라도 ‘길이 좁아서 못 지나가겠다’라고 말하면 이 틈을 빠져나가는 데 애를 먹는다고 한다.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교훈을 주는 바위다.
화왕산 정상에는 길이 약 2.6km의 ‘테뫼식 산성’인 화왕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테뫼식 산성’이란 ‘성곽의 형태가 마치 산에다 머리띠(테)를 두른 것처럼 축성된 산성’을 말한다. ‘테뫼식 산성’과는 달리 ‘골짜기의 능선을 이용해서 축성되는 산성’은 ‘포곡식 산성’이라 부른다.
화왕산성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의병들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당시 화왕산성 일대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왕산성을 언제, 누가 축성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단지 문화재청 자료에 ‘가야 시대 때 축성된 산성으로 추정된다’라고 기록돼 있을 뿐이다.

창녕 지도 의령군 함안군 마산시 밀양시 청도군 대구광역시 이방초등학교-우포늪-교동고분군-화왕산
살아있는 생태박물관, 우포늪

창녕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내륙습지인 우포늪(사진 11)이 있다. 우포늪은 약 1억4천만 년 전에 생성된 ‘살아있는 생태박물관’이다. 당시 강물이 범람하면서 밀려온 흙과 모래가 입구를 막으면서 커다란 저수지가 만들어졌고, 점차 퇴적물이 쌓이면서 지금과 같은 ‘늪’이 형성됐다. 지난 1998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람사르 협약(국제습지보호협약)에 가입됐고, 2011년에는 천연기념물 제524호로 지정됐다.
우포늪은 크게 우포, 목포, 사지포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여기에 쪽지벌과 산밖벌(2017년 복원습지)을 포함하면 전체 면적이 약 250만㎡에 이른다. 이처럼 넓은 우포늪에서는 식물류 800여 종을 비롯해 조류(209종), 어류(28종), 포유류(17종) 등 다양한 종류의 토속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우포늪은 사진동호인들도 많이 찾는다. 자연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어린이들에게는 생태교육의 현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우포늪에는 철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겨울철에 우포늪으로 날아오는 철새는 30여종 15,000여 마리다. 간혹 먹이활동을 위해서 이동하는 철새들(사진 12)도 볼 수 있다. 우포늪과 같은 습지는 우리의 생활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습지의 대표적인 가치로는 생태학적 가치(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 제공), 수문학적 가치(홍수 조절과 습도 조절), 경제적 가치(환경정화에 필요한 비용 절감), 경관적 가치(다양한 체험공간 제공) 등을 꼽을 수 있다.

  • 11. 늦가을의 우포늪 정취(한국관광공사 제공)
  • 12. 먹이활동을 위해 이동하는 우포늪의 겨울철새들
TIP
여행 정보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창녕나들목을 지나 20번 국도를 타고 가면 창녕읍에 도착한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창녕시외버스터미널까지 약 4시간가량 소요된다.
창녕은 전국 최대의 양파, 마늘 생산 지역으로 특산품인 양파와 마늘이 유명하다.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 토,일요일에는 창녕군 농·특산물 공동 브랜드인 우포누리를 널리 홍보하고자 ‘우포누리 축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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