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명사 인터뷰

변화하는 뇌를 통해
만들어가는
긍정적인 삶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한소원 교수 “나이가 들어서 이제 머리가 굳었나 봐.” 어느 순간부터 깜박 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일하는 속도도 예전보다 더 느려진 것 같다. 정말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뇌를 소모하면서 살아가는 걸까. 그러나 한소원 교수는 이러한 통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게 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므로. 「The–K 명사 인터뷰」는 각 전공별 명사가 된 교수들을 인터뷰하는 코너로, 교육가족이 명사의 교육 가치관과 철학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뇌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

한소원 교수는 인지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뇌와 행동에 관한 연구를 자주 접했다. 뇌와 관련된 여러 연구 중에서도 그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던 부분은 ‘뇌 가소성’이다. 이에 따르면 뇌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학습이나 경험을 통해 죽기 전까지 유연하게 변화한다. 그에게 뇌 가소성은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우리 몸과 삶을 잇는 연결고리’다. 나이가 들면서 운동 능력이나 지각 능력 등 쇠퇴하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경험하는지에 따라서 뇌는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한때는 인간의 두뇌 발달이 어린 시절에 끝나고, 이후로는 변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세였어요. 하지만 그건 이제 지난 이론이에요. 실제로 뇌는 우리가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어가면서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뇌가 변화하고 회복한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들도 여럿 있다. 대중에게도 익히 알려진 런던 택시 기사의 사례가 그중 하나다. 복잡한 시내를 주로 운전하는 런던 택시 기사들은 기억을 관장하는 뇌 부위인 해마가 특히 발달했다고 한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 중에서도 유산소운동을 자주 하면 뇌세포를 연결하는 뇌 백질이 늘어나고 인지 기능이 향상된다는 결과가 있다. 한소원 교수는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30분 이상, 6개월 이상 지속해야 효과가 나타난다”라고 말한다. 또한 유산소운동만 하는 것보다 근력운동을 같이 해야 근육량 소모를 막을 수 있고, 이때 운동의 강도는 각 사람의 체력에 따라 다르게 조절해야 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자기공명 영상 등을 활용해 뇌구조와 뇌의 변화 과정을 자세하게 살필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뇌와 관련된 연구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뇌를 들여다보면, 스스로 보완하고 회복하는 뇌의 가능성에 대해 더욱더 감탄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언어를 사용하고 표현할 때에는 좌뇌가 활성화되지만, 노년기에 이르러서는 언어를 처리할 때 좌뇌 와 우뇌 모두가 활성화되는 경우가 많다. 좌뇌와 우뇌가 힘을 모아 인지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운동하라

한소원 교수가 2020년 10월에 출간한 「변화하는 뇌」는 뇌 가소성에 대한 이론적 배경과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방법까지도 참고할 수 있는 책이다. 수업 시간에도 어려운 심리학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종종 예시로 든다는 그는 책을 쓰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독자들을 뇌과학과 심리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뇌는 춤추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삶을 원한다’는 「변화하는 뇌」의 부제는 뇌 가소성을 높이는 활동을 압축해 설명하고 있다. 이는 한소원 교수가 실제 삶에서 실천하고 있는 일들 이기도 하다. 외국어 공부나 다른 사람을 만나 교류하는 사회적인 활동 역시 뇌 가소성을 높인다.
일례로 춤은 감각 능력과 균형, 공간 인지 능력과 기억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음악을 들으면서 스텝을 밟고, 새로운 스텝을 익히기 위해 학습해야 하며, 다른 사람과 교류하며 정서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복합적인 과정을 두루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지심리학과 뇌과학을 연구하면서 춤이 얼마나 좋은 활동인지 깨달았다는 그는 공공연하게 펼쳐왔던 춤 예찬론을 실천하고자 직접 춤을 배우기도 했다. 아쉽게도 춤에 큰 소질은 없었지만, 수없이 반복하며 새롭게 배워야 하는 다양한 동작들은 그의 뇌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10년 넘게 드럼을 치면서 베이스 기타를 함께 배운 그는 리듬이 주는 즐거움을 익히 경험해왔다. 음악은 쾌락과 관련된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긍정적인 정서를 유발한다. 학위 과정 중에는 라켓볼을 배우기도 하고, 심리학과 학생들이 모인 농구팀에 들어가 농구를 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뇌 가소성을 높이기 위해 시도했던 일은 아니었으나, 관련 연구를 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사회성과 공감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은 지금은 직접 사람을 만나 교류하기는 어렵지만,
화상이나 온라인 메시지를 통해서라도 대화하면서 삶의 질을 높여가야 합니다.”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며 새로워지는 뇌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기보다 새로운 관심사를 추구하는 성향은 그가 하는 연구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연구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자신의 전문성을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낯선 상황에 적응하는 일이 고되기는 해도, 오히려 뇌는 불확실성 속에서 더욱더 부지런히 움직이며 또다른 변화를 추구한다. 모든 일을 예측할 수 있으면 뇌는 더 학습할 필요가 없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요즘 한소원 교수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야는 인공지능을 비롯해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휴먼 컴퓨터 인터랙션(Human–Computer Interaction)’과 사람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똑똑하게 나이 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 트렌드인 ‘스마트 에이징(Smart Aging)’ 등이다.
이러한 연구를 하기 위해 한소원 교수는 실제 로봇을 구동하기도 한다. 얼핏 공학과에서 할 법한 연구들을 심리학과에서 하는 이유는 아무리 최첨단 기술이라도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나 인공 신경망도 결국 인간의 뇌를 모델로 합니다. 사람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는지가 무척 중요하지요. 올해 초, 성희롱과 차별적인 발언을 학습해 논란이 일었던 인공지능 캐릭터 ‘이루다 사태’ 역시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은 인간 이해에 초점을 두고 개발을 진행해야 하는데, 기술에만 집중하면 이런 부작용이 나올 수 있지요.”
실제로 한소원 교수가 운영하는 ‘인간공학심리연구실’에서는 공과대학 연구실과 자주 협업한다. 이따금 주변에서 ‘심리학과에도 연구실이 필요해요?’ 하고 반문할 때도 있다. 심리학이 다루는 분야가 워낙 다양해서 일어나는 오해다. 그럴 때마다 한소원 교수는 “산업공학과 비슷한 일을 한다” 고 간단히 설명하고는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사회성과 공감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은 지금은 직접 사람을 만나 교류하기는 어렵지만, 화상통화나 온라인 메시지를 통해서라도 대화하면서 삶의 질을 높여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보고 느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뇌가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세상을 보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반응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소통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감의 과정을 통해 우리 뇌는 다시금 회복하고 보완하며 새롭게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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