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을 찾아가려면 대구광역시 계산동에 있는 계산성당(계산 주교좌 대성당)을 출발지로 삼는 것이 좋다. 쌍둥이 첨탑이 인상적인 계산성당(사진 1)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다. 계산성당보다 오래된 성당으로는 서울 약현성당(1892년), 북한 평양성당(1896년), 인천 답동성당(1897년), 서울 명동성당(1898년) 등이 있다. 1902년에 세워진 계산성당은 지난 1984년 5월 5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해서 기도를 올린 성당이기도 하다. 성당 입구에는 이를 기념하는 동판 부조(사진 2)가 붙여져 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한복을 입은 한국인 성자(사진 3)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계산성당 건너편에는 개신교 교회인 대구제일교회가 있고, 그 옆에는 좁고 가파른 계단길이 있다. 이 계단길이 바로 청라언덕으로 오르는 ‘3.1만세운동길(사진 4)’이다.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교회지도자와 학생들이 주축이 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하려는 학생들이 일본 경찰을 피해 이동하던 길이 지금의 3.1만세운동길이다.
청라언덕으로 오르는 3.1만세운동길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옛 건축물 사진과 함께 담쟁이덩굴(사진 5)이 자라고 있다. ‘청라(靑蘿)’는 말 그대로 ‘푸른 담쟁이덩굴’을 의미한다. 3.1만세운동길이 끝나는 곳에는 붉은색 벽돌로 지은 오래된 건축물이 있고, ‘여기는 청라언덕입니다’라고 쓰인 안내판(사진 6)도 보인다. 청라언덕은 달성공원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산(東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이름도 바로 이 ‘동산’에서 따왔다.
청라언덕은 우리나라 근대음악의 선구자인 박태준(1900~1986년)이 작곡하고, 시인이자 수필가인 이은상(1903~1982년)이 작사한 ‘동무생각’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대구에서 계성학교(현 계성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박태준은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 했다. 이때 마산의 청년시인인 이은상을 만났다. 그리고 박태준은 우연한 기회에 계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신명 여학교(현 신명고등학교) 여학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이은상은 이 이야기를 토대로 시를 썼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시에다 박태준은 곡을 붙였다. 이때가 1922년. 박태준의 나이 23세 때였다. 이렇게 해서 가곡 ‘동무생각’이 탄생했다. 박태준은 가곡 외에도 ‘기러기’, ‘오빠 생각’, ‘새 나라의 어린이’ 등을 비롯한 많은 동요를 작곡했다. 지난 2012년에는 박태준의 일대기를 그린 창작 오페라 ‘청라언덕’이 대구 국제오페라축제에서 선을 보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 음악 단체인 ‘조선음악가협회’의 이사로 활동했던 작곡가 현제명도 대구 계성학교와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 집 앞’, ‘고향 생각’, ‘나물 캐는 처녀’ 등 우리 귀에 익은 곡을 많이 만들었지만, 오늘날 그에 대한 평가는 냉담하다. 청라언덕에 현제명 노래비를 세우려던 계획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친일 행적이 발목을 잡아 취소되었다. 현재 대구제일교회 앞마당에는 ‘현제명 나무’라 불리는 이팝나무(사진 7)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청라언덕에는 눈길을 끄는 서양식 건축물 세 동이 있다. 각각 ‘선교사 스윗즈 주택’, ‘선교사 챔니스 주택’, ‘선교사 블레어 주택’이라 불리는 이 건축물(사택)들은 모두 100년이 넘은 것들이다. 이들 건축물이 건립된 1906~1910년 무렵은 대구 일대에서 개신교의 선교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기다.
현재 선교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선교사 스윗즈 주택’(사진 8)은 1910년 무렵에 세워졌다. 1907년 대구읍성이 철거될 당시에 나온 안산암으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붉은 벽돌로 벽을 쌓았다. 지붕은 기와를 올린 한옥 형태이며, 창에는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로 한껏 멋을 냈다. ‘선교사 스윗즈 주택’ 옆에는 동산의료원의 개원 100주년을 기념하는 종탑(사진 9)이 있다.
의료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선교사 챔니스 주택’(사진 10)에서는 1800년대와 1900년대의 다양한 동서양 의료기기를 전시하고 있으며, 교육역사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선교사 블레어 주택’에서는 민속 사료와 옛날 교과서를 비롯한 교육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두 주택 사이에는 지난 2009년에 세운 ‘동무생각 노래비’(사진 11)가 있다.
청라언덕을 둘러본 이후에는 근처에 있는 ‘음악다방 쎄라비(사진 12)’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찾으면 좋다. ‘3.1만세운동길’ 옆에 있는 쎄라비는 지난 2012년 KBS-2TV에서 방영한 월화드라마 ‘사랑비’가 촬영되었던 곳이다. 기존에 있던 계산다방을 세트장으로 만든 곳이지만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음악다방의 역할을 하고 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최근 들어 대구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명소다. 가수 김광석의 음악을 주제로 조성된 이 골목길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방천시장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길이 약 350m의 이 벽화골목(사진 13)은 ‘방천시장 문전성시 사업’의 하나로 2010년에 조성했다. 벽화골목 중간쯤에는 김광석 동상(사진 14)이 세워져 있다.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광석은 명지대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노래를 불렀다. ‘메아리’, 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물원’ 등에서 활동했으며 1989년에 첫 솔로음반을 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음반을 발표했지만, 아쉽게도 1996년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히트곡으로는 ‘사랑했지만’, ‘나의 노래’, ‘일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등병의 편지’ 등이 있다.
구마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 서대구나들목에서 북비산로와 달성로를 거쳐 청라언덕(대구 동산병원 주차장)을 찾아가면 된다. 청라언덕 근처의 별미집으로는 계산성당 옆 골목길에 있는 가정식 음식점인 ‘서영홍합밥(전화 053-253-1199)’(사진 15)이 있다. 빈대떡을 곁들인 홍합밥은 대구에서의 한 끼 식사로 결코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