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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22 Vol.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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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누기

좋은 사람 좋은 생각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사)한국상담심리학회 회장인 이동귀 교수는 ‘맞다’ 혹은 ‘틀리다’라는 결과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부모와 아이 모두가 과정을 받아들이는 긍정적 태도와 자기 객관화를 갖추고, ‘완벽’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올바른 자존감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성공과 행복의 열매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고 부연한다.

이성미 / 사진 이용기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은 ‘완벽주의자’

완벽주의란 말 그대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동귀 교수가 속한 연세대학교 상담심리연구실에서 한국인 성인(20~60세) 5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3.62%가 스스로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명 중 한 명은 완벽주의 성향인 셈이다. 완벽주의는 양날의 검과 같다. 잘 활용하면 더 나은 결과를 끌어내는 동력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절망으로 치닫는 요인이 된다. 우리는 전자를 ‘행복한 완벽주의자’, 후자를 ‘불행한 완벽주의자’라고 부른다.
행복한 완벽주의자와 불행한 완벽주의자는 평소 목표를 높게 설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부정적 상황에서 감정을 처리하는 능력에 차이가 있다. 행복한 완벽주의자는 부정적 감정이 생겨도 그것에 압도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다음을 생각한다. 자신을 실패로 이끈 환경 요인을 찾은 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은가?’ 생각하고 개선하는 것이다. 반면, 불행한 완벽주의자는 실패를 겪었을 때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하고, 결국 ‘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야’라고 판단해 버린다.
좋은 결과를 내면 상황이 나아질까? 안타깝게도 불행한 완벽주의자는 좋은 결과를 얻어도 기뻐하지 못한다. 이동귀 교수는 영국 인지행동 치료자 로즈 샤프란(Roz Shafran) 박사의 연구를 예로 들며, 불행한 완벽주의자가 우울해지는 메커니즘에 관해 설명한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가정하자. ‘매주 1kg을 감량한다’라는 목표를 세우면 어떨까? 사람들 대부분은 ‘성공하기 어렵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세운다. 0.9kg을 감량해도 0.1kg이 부족해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자기를 비난하고, 우울감에 빠진다. 그렇다면 1.1kg을 감량했다면 어떻게 될까? 기뻐할 상황 같지만, 불행한 완벽주의자는 ‘내가 목표를 너무 낮게 잡은 건 아닐까?’ 의심한다. 그러고는 목표를 더 높게 재설정한다. 결국 목표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실패로 귀결되고,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동귀 교수가 완벽주의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도 내담자의 우울감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좇으면서부터다.
“심리상담을 하다가 내담자 중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이들은 상담을 거듭해도 쉽게 변하지 않았죠. 주변에서 아무리 ‘잘한다’라고 해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요. 그래서 그들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 완벽주의와 자기 가치감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네 명의 완벽주의자 중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이 뿌리 깊은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 그 일념으로 이동귀 교수는 20년 넘게 완벽주의를 연구했다. 그리고 행복 또는 불행을 느끼기 이전에, 완벽주의자를 서로 다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동귀 교수와 연구팀은 ‘나를 평가하는 소재(所在)가 자기 내부에 있는가, 타인에게 있는가?’, ‘어떤 일을 해나갈 때 향상에 초점을 맞추는가,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가?’의 기준에 따라 완벽주의자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지난해 2월 연구실의 손하림, 김서영 박사와 함께 펴낸 책 「네 명의 완벽주의자」에는 그간의 연구 결과가 알기 쉽게 담겨 있다.
완벽주의자의 네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첫 번째는 눈치 백단 인정 지향형이다. 자기 평가 소재를 외부에 둬 타인의 평가와 인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슨 일이든 향상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 사람에게 가장 흔한 유형이다. 이들이 더 멋진 완벽주의자로 변신하기 위해선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스릴 추구 막판 스퍼트형은 앞서 언급한 유형처럼 타인의 칭찬을 중요시하지만, 행동할 때 실수를 예방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다르다. 실수 예방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일을 시작하는 것을 미루다 막판에 몰아서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일을 작은 단위로 쪼개 일단 시작하거나 자신만의 마감 기한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세 번째는 방탄조끼 안전 지향형으로, 자기 평가 소재를 내부에 두면서 예방에 초점을 맞춘다는 특징이 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 ‘숨은 공로자’라고 불리지만 현상 유지와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변화를 피하려고 한다. 안전 지향형 완벽주의자는 두려움 때문에 기회를 놓칠 수도 있으니 도전에 앞서 자신에게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고민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강철 멘탈 성장 지향형은 자기 평가 소재를 내부에 두면서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행복한 완벽주의자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그러나 긍정과 적극성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때로 ‘피곤한 리더’로 여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성장 지향형 완벽주의자는 자신과 경험과 능력치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당신은 행복한 완벽주의자입니까' 강연 모습 [사진 출처:세바시 강연 Sebasi Talk 공식유튜브]
YTN 사이언스 투데이 출연 모습 [YTN 사이언스 유튜브]

자존감 높은 아이, 행복한 완벽주의자로 키우는 방법

방법완벽주의자라면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알고, 강점을 활용해 긍정적 변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공통으로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자기 존재적 인식이 필요하다. 이동귀 교수는 “완벽주의는 대물림될 수 있다”라면서, “아이가 결과만을 중시하면서 자신을 몰아붙이는 불행한 완벽주의자로 자라지 않도록 어른이 도와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줄 때 ‘안전하다’라고 느낍니다. 그렇지 못하면 불안감을 느끼고요. 결과만을 보고 ‘왜 이것밖에 못 하니’,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하고 내몰기보다는 ‘열심히 노력한 걸 알아.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어’,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는 피드백을 주세요. 그럼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또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현실 감각도 필요합니다. 밑바탕에 진정성이 깔려 있어야 ‘건강한 자존감’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스스로 평가하는 자기 가치와 특정 과제를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믿음인 자기 효능감이 균형을 이룰 때 자존감이 높은 사람,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동귀 교수는 결과 중심적 양육 태도에서 벗어나도 되는 근거 중 하나로 “과거의 성공 공식에 아이를 맞출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성공한다’는 것은 과거의 공식일 뿐, 지금은 선택지가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들과 같은 노선으로 달려가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성공과 행복에 더 가까워지는 방법일 수 있다. 자녀를 양육하며 한 번쯤 자문해 보자. ‘나는 자녀에게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음미해 볼 시간을 주었는가?’ 하고 말이다.

기대보다는 믿음을, 칭찬보다는 격려를

자녀에게 기대보다는 믿음을, 칭찬보다는 격려를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의 기대는 좌절로 이어지기 쉽지만 믿음은 조건 없는 안전한 토대가 된다. 또 칭찬은 부모가 원하는 방향대로 아이가 행동했을 때 주어지는 것이지만 격려는 자녀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때 이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동귀 교수는 세상의 모든 완벽주의자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처음부터 100% 다 잘 해낼 순 없습니다. 완벽하게 잘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직된 생각에서 벗어나 우선 70%를 완성하는 데 집중해 봅시다. 그리고 완성도를 점점 높이는 데 의미를 두세요. 또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빛을 비춰주세요. 그러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행복한 순간도 더 많아질 겁니다.”
이동귀 교수는 더 많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각자 자기 분야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그런 세상이 온다고 믿는다. 심리학과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연구자로서 연구에 매진하는 것도, (사)한국상담심리학회 회장으로서 상담심리사를 배출하고 이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앞으로도 이동귀 교수는 더 많은 사람이 불안과 우울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중함을 찾을 수 있도록 계속 돕고자 한다.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실 완벽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화가의 그림은 저마다 특색이 있을 뿐 완벽을 논할 수 없고, 작가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완벽히 표현할 단어도 세상에는 없다. 결국 완벽이란 자기 기준이며, 자기다움의 다른 말일 것이다. 다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자기답게 행복해질 때, 조금은 완벽에 가까운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케이 로고 이미지

스스로 평가하는 자기 가치와
특정 과제를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인
자기 효능감이 균형을 이룰 때 아이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