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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22 Vol.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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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아이들의 풍요로운 삶과 미래를 위한 봉사 교육
국내외 학생 봉사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쌤! 이거 하면 몇 점 줘요?” 오래전 대입 관련 취재를 할 때 한 고등학교 교사가 말했다. 학생들이 ‘이 봉사 활동을 하면 몇 점 주는지’를 물을 때마다 마음이 쓰리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봉사 교육은 참 어렵다. 타인을 돕는 인간 본성에 관한 시민교육이면서도 어찌 되었든 점수로 환산되는 평가 항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서 봉사 활동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모든 평가의 나침반이 대학입시로 향해 있는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도 많은 교사들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과 자신의 마음을 건강하게 두루 살피는 봉사 활동은 여전히 잘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외 학교 봉사 활동의 사례를 살펴보고 학교 봉사 교육의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김지윤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기자


듣고, 보고, 배우고, 깨닫게 하는 학생 자원봉사

자원봉사란 스스로 원해 남을 돕는 것을 말한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지속해서 행하는 활동이 곧 자원봉사다. 빠듯한 학사 일정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봉사 활동을 꾸준히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정의상으로는 그렇다.
자발적인 활동이기에 스스로 원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금전적 보상 등이 따르는 활동도 아니다. 교육과정에 봉사 활동이 있는 이유는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여러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함일 테다.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도 봉사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과 태도를 길러준다는 점, 자원봉사를 하며 우리 이웃이 자신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차근차근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는 점, 자연과 인간관계를 아우르는 통합적 인격교육이 가능하다는 점과 미처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던 주변 인물들에 대해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점 등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봉사 교육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즉 봉사 활동이, 배우고 깨달아 자신을 확장하는 학습의 한 과정이 된다는 이야기다.
진로 교육 측면에서 보면 교실 안에서 발견하지 못한 학생 들의 적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예전 학생 취재원 중 한 명은 공공도서관에서 저학년 대상 책 읽기 봉사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 제작 봉사를 꾸준히 하면서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뒤 관련 공무원이 되어 지금은 우리 사회의 ‘추운 곳’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어느 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절차에 따른 해결을 통해 한 지역이, 한 사회가 점점 더 나아지는 모습을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산 교육’의 기회이기도 하다. 사회·도덕·윤리 시간에 배운 여러 이론과 그것이 작동하는 ‘진짜 세계’를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 흔치 않기에 봉사 활동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주로 공공기관과 복지시설, 농어촌 일손 돕기, 공공질서 확립 캠페인, 교통안전 캠페인, 재해 구호 활동, 문화재 보호 활동, 하급생 지도 활동, 지역 행사 홍보 및 지원 활동 등을 통해 봉사 교육을 받는다. 그렇다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선진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봉사 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봉사와 학습을 연결한 미국과 영국의 학생 봉사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들 나라 역시 ‘자원봉사 활동’ 자체가 학교 교육과정 안으로 들어가 평가의 한 항목이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1992년 미국의 메릴랜드주에서 고교 졸업 필수 요건으로 ‘지역사회 봉사 활동’을 지정한 이래 자원봉사 활동과 교육은 더욱 확산했다. 미국은 봉사 활동을 통한 일탈 및 비행 예방 교육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 전국 고등학교의 약 40% 학교에서는 재학생들이 봉사 활동에 참여해야만 졸업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중·고생 가운데 약 61%가일주일에 평균 3.24시간을 봉사 활동에 참여한다고 한다.
1993년에는 ‘국가 및 지역사회 자원봉사 지원법’이 제정됐는데, 국가 차원의 봉사 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봉사 교육 활성화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전국 자원봉사연합(CNS)이라는 공적 기관이 봉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을 위한 학교 중심 프로그램, 지역사회 중심 프로그램, 대학생을 위한 프로그램 등으로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육아 시설부터 노인 시설 방문 봉사 활동, 공공기관과 사회단체 활동 등 한국과 비슷한 봉사 활동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다. 평가 대상인 것은 마찬가지여서 매 학기 1학점 등 학점 이수를 해야 하며 결과 보고서도 제출해야 한다. 봉사 교육 전문가들은 “미국 학교에서의 봉사 활동은 ‘봉사 학습’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봉사와 학습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구성된다”라고 말한다. ‘봉사 활동? 그냥 날짜랑 시간 맞춰 가서 몇 시간 하다 오면 되지’ 식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미국의 봉사 활동 교육 프로그램은 준비·실천· 반성·축하 등의 절차를 밟으며 수행해야 한다. 준비 단계에서는 문제의 인식과 분석, 직접 및 간접 봉사 선택,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기능 학습과 수행 등의 과정을 거친다. 실천 단계는 계획된 봉사를 수행하는 단계다. 낯설거나 새로운 상황에 부딪힐 때는 체크리스트 등을 통해 봉사 계획을 조정하게 된다.

생활 속 작은 영웅을 발견하고 격려하는 봉사 체계

반성 단계는 학생들의 몫이다. 봉사 활동 내용 전반에 대해 다시금 복기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마지막 축하와 인정 단계도 흥미롭다. 이 단계야말로 효과적인 봉사 학습 프로그램의 백미다. 누구나, 특히 학생은 자신들이 행한 봉사 활동에 대해 지역사회가 칭찬하고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미국에서는 ‘작은 영웅’을 발굴해 축하하고 포상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를테면 1996년부터 미국중등교장협의회(NASSP)와 푸르덴셜생명이 공동 주최하는 중·고교생 자원봉사 대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은 유럽에서 자원봉사 활동과 봉사 교육이 가장 활성화된 나라다. 봉사 활동이 단순한 평가 항목이 아닌 주요한 사회 기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봉사 활동과 해당 파생 활동을 수치로 나타내면 국민총생산의 5%를 차지하는 등 농업 부문보다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은 내무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총괄한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의 성장을 위해 1997년부터 추진한 ‘Make a Diff erence’ 프로그램이 잘 알려져 있다. 영국 역시 청소년들이 참여한 봉사 활동에 대한 축하와 인정이 제도화되어 있다.
영국은 국제 포상협회를 통해 14~25세 청소년들이 자원봉사 활동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이를 통해 사회봉사뿐 아니라 탐험 및 탐사, 취미 활동, 사회체육 활동 등에 대한 개인별 기록부를 만들고 교육자가 이를 평가해 성취 수준에 따라 포상하며 모범이 되는 사례를 발굴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성취와 인정으로 깨닫는 봉사의 ‘의미’와 ‘재미’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청소년 봉사 교육에서 지역사회 및 가족의 인정과 축하는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2011년부터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서 ‘청소년 자기도전 포상제’(이하 포상제)라는 이름의 활동을 진행해 왔다.
봉사나 자기 계발 등을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기획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다. 이를 확대한 '가족형 청소년 자기도전 포상제'(이하 가족포상제)도 시범사업으로 운영한 바 있다. 가족 포상제도는 보호자와 아이가 함께 도전활동을 기획·진행하며 유대감을 쌓는 등 가족 간 소통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한국형 자기 성장 프로그램 가운데 가족형으로는 유일하다. 활동 단계별로 진흥원이 발급하는 금·은·동장 등 인증서가 나와 성취감도 얻을 수 있다.
우리 가족만의 미션을 만드는 활동, 요리·외국어·달리기 등 다양한 주제로 성취 목표를 정하고 보고서도 작성하는 방식이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포상제로 성취감과 가족 간 사랑도 쌓아나가는 봉사 활동 교육 프로그램이다.
여러 기관이 연합한 캠페인 형태의 환경 관련 봉사 활동을 진행해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사례도 있다. 탄소 중립 실천을 주제로 ‘미니 플라스틱 자원순환 캠페인’은 분리 배출되더라도 재활용 선별이 어려워 폐기되는 미니 플라스틱(병뚜껑 등 휴대폰 크기 이하의 작은 플라스틱)을 별도로 수거, 플라스틱 재생산 업체를 통해 플로깅 세트(집게·주머니·장갑 등)로 업사이클링하고 이를 사회적 기업을 통해 판매하는 캠페인으로 많은 학생이 동참했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의 청소년 자기도전 포상제 포스터(2019)

시민들의 문화로 자리 잡은 프랑스 봉사 교육

프랑스는 문화·예술의 나라답게 자원봉사 활동도 문화, 예술·체육·환경에 집중돼 있다. 흔히 ‘봉사는 사회복지’라고 여기는 우리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봉사 활동에 대한 국가 개입이 매우 적고 이에 따라 봉사 활동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보다는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세계의사회, 적십자 등을 통한 국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 봉사 활동 정책의 기본 방향은 청소년들이 미래 사회와 직업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진로와 직업을 선택하는 데 다양한 정보를 주는 것에 조금 더 중점을 두는데, 봉사 활동의 중심이 되는 곳은 ‘샹티에’라고 부르는 작업장이다.
샹티에는 일종의 무보수 작업장으로,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던 청소년들이 종교, 사회, 정치에 상관없이 공동 작업과 단체생활을 하는 곳이다.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환경 정비 등을 통해 마을과 도시의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는 방식이다. 봉사 활동에 대한 특별한 제도나 법령을 마련하기보다는 교육정책 안에서 보다 일상화된 봉사 교육을 채택한 것이다.
진로 교육을 겸한 봉사 활동, 소통과 관계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시민교육,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민주시민성. 이렇듯 전 세계에서 봉사활동은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서 공존과 나눔, 시민의식을 배울 수 있는 봉사활동의 참된 의미가 여기에 있다. 케이 로고 이미지
미니플라스틱 자원순환 캠페인에 참여한 학생들의 모습[사진 제공: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