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납월홍매와 흑두루미를 만날 수 있는 고장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금둔사는 한겨울에 매화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금둔사 홍매는 해마다 1월 초에 꽃망울이 터진 후, 3월 중순까지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납월홍매'(사진 1) 다. ‘납월(臘月)’은 음력 섣달을 가리킨다. 따라서 납월홍매는 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 꽃과 향을 가지고 오는 귀한 손님인 셈이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선암매, 남명매, 율곡매, 고불매 등 다양한 사연이 담긴 매화나무들이 있다. 납월홍매는 꽃이 피는 시기를 강조하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둔사 납월홍매의 역사는 1985년부터 시작됐다. 금둔사 주지인 지허스님이 근처 낙안읍성에 있던 납월홍매 고목에서 씨를 받아다 심은 것이 그 시초다. 가지를 심은 매화보다 씨를 심은 매화나무가 오래 산다는 것을 아는 지허 스님의 선견지명 덕분이다.
현재 금둔사에는 납월홍매, 청매, 백매(사진 2)등 모두 100여 그루의 토종 매화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 가운데 여섯 그루가 납월홍매다. 지허 스님은 여섯 그루의 납월홍매에다 각각의 이름표를 붙여놓았다. 이 가운데 산신각 옆에 있는 납월홍매((사진 4)가 가장 보기에 좋다. 참고로 청매와 백매의 꽃은 모두 흰색이지만 청매의 꽃받침은 연한 녹색이고, 백매의 꽃받침은 연한 갈색을 띠고 있다.
매화는 깔끔한 자태도 아름답지만,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윽한 향기다. 매향을 가리켜 ‘아름다운 향기’라는 뜻의 ‘가향’이라 부르고, ‘매향은 귀로 듣는 향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옆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정갈한 마음을 가져야만 비로소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옛 선인들은 앞을 다퉈 매화를 극찬했다. 고려 시대 때의 문인 이인로는 다른 봄꽃들에 앞서 피는 매화를 보고 ‘고야산 신선 얼음살결에 눈으로 옷 지어 입고 / 향기로운 입술로 새벽이슬 구슬을 마시는구나 / 속된 봄꽃들의 붉은 빛에 물들세라 / 요대를 향해 학을 타고 날아가려 하는구나’라는 시를 지었다. 그런가 하면 조선 시대 때의 문인 상촌 신흠은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즉,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는 팔지 않는다’라는 시구(詩句)를 남기기도 했다.
금둔사(사진 5)는 백제 위덕왕 때인 583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고찰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차례 중창을 거듭하다 폐찰이 되었고, 지허 스님에 의해 1983년 무렵부터 불사가 이뤄져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금둔사 일주문에는 ‘금전산금둔사(金錢山金芚寺)’라는 글씨가 편액으로 걸려 있다. 이 글씨는 서예가 소암 현중화가 썼다. 일주문 뒤에는 다른 글씨체로 ‘세계일화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葉)’(사진 6)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눈에 익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다. 물론 추사 김정희가 금둔사를 위해 쓴 것은 아니다. 하동 쌍계사 금당에 걸려 있는 글씨를 번각 (한 번 새긴 책판을 본보기로 삼아 다시 새김)한 것이다.
최근에 복원불사가 이뤄진 만큼 금둔사에서 고풍스러운 옛 사찰의 분위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찰 곳곳을 유심히 살펴보면 특색 있는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금둔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숨겨진 보물’은 석불비상(보물 제946호)(사진 7)과 삼층석탑(보물 제945호)(사진 8) 이다. 이 두 유물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예를 많이 갖추고 있다.
석불비상은 말 그대로 비석 형태의 판석에 조성된 불상을 가리킨다. 금둔사 석불비상은 멀리서 보면 마치 비석처럼 보이는 불상이다. 석불비상 앞에 있는 삼층석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층 탑신부 양면에 양각되어 있는 공양상(사진 9)
이다. 왼쪽 무릎은 땅에 대고, 오른쪽 무릎은 세운 자세로 공손하게 차를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처럼 탑신부에 공양상을 양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예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탑신부에는 금강역사나 사천왕상을 양각한다.
금둔사 근처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읍성 가운데 하나인 낙안읍성(사진 10)이 있다. 성은 외부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 산등성이를 기반으로 축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낙안읍성처럼 바다에서 가까운 평지에 성을 쌓게 된 것은 고려 시대 말기 이후에 왜구들의 침입이 매우 극심했기 때문이다.
낙안읍성은 조선 시대의 읍성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되어 있는 읍성으로, 조선 태조 때인 1397년에 흙으로 처음 축성되었다. 이 고장 출신 김빈길 장군이 토성을 쌓은 것이 그 시초다. 이후 조선 세종 때인 1424년에 돌로 다시 쌓았고, 조선 인조 때인 1626년부터 1628년까지 임경업 장군이 성을 튼튼하게 재정비했다. 낙안읍성은 2019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관광명소다. 우리나라에서 사람 사는 초가집이 가장 많은 곳인 낙안읍성은 성곽의 총길이가 1,410m에 이른다. 성곽 위로는 3~4m너비의 넓은 길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길을 거닐며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낙안읍성의 동쪽, 서쪽, 남쪽에는 성안의 큰길과 연결된 성문이 세워져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낙안읍성의 정문격인 동문(낙풍루) 앞에 세워져 있는 작은 석구상(사진 11)2기가 눈길을 끈다. 오랜 풍상으로 인해 비록 그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 있지는 않지만, 돌로 만든 두 마리의 개가 성문 밖을 향해 짖고 있는 모습에서 낙안읍성의 오랜 연륜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랜 옛날부터 개가 잡신의 침입을 막아준다고 믿어왔다. 따라서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았던 동문 앞에 석구상을 세운 것도 마을 동쪽에 있는 멸악산(오봉산)의 강한 기운을 막고자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순천을 대표하는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인 순천만습지는 사계절 내내 생태기행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그동안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이라 불렸는데, 2016년 1월 1일부터는 간결하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담은 ‘순천만습지’로 불리고 있다. ‘연안습지’ 또는 ‘해안습지’라 불리는 갯벌은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기능이 뛰어나서 ‘지구의 허파’라 불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자연재해를 예방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조절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세계 5대 연안습지’ 가운데 하나인 순천만습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갈대숲을 볼 수 있는 명소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갯벌 생물과 희귀 철새들이 살아가고 있다. 특히 겨울철에는 세계적인 희귀종인 흑두루미들이 순천만습지를 찾아온다. 운이 좋다면 조류 가운데 가장 우아하게 나는 흑두루미 가족(사진 12)을 만날 수도 있다. 흑두루미들은 대체로 해가 뜰 때는 바다에서 내륙 쪽으로, 해가 질 때는 내륙에서 바다 쪽으로 날아간다. 이 점을 잘 기억하면 흑두루미 가족의 멋진 비행을 볼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순천만습지에서는 흑두루미 외에도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을 비롯해서 모두 14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이 같은 희귀 조류들을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갈대밭 입구에 있는 대대포구 선착장(사진 13)에서 ‘순천만 생태체험선’을 타는 것이다. 이 체험선을 타면 순천만습지의 가장 안쪽까지 접근할 수 있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갯벌과 철새들의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순천만습지에는 유난히 안개가 많이 낀다. 이처럼 짙은 안개는 순천만의 또 다른 명물이다. 1964년 10월 ‘사상계’에 발표될 당시 ‘감수성의 혁명’이란 극찬을 들었던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지로 잘 알려져 있다. 소설의 무대인 무진은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간이다. 하지만 순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 김승옥은 「무진기행」을 쓸 때 ‘순천만 앞바다와 갯벌’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바 있다.
대대포구에서 ‘무진교’라 불리는 다리를 건너면 드넓은 갈대밭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 갈대밭 사이로는 근사한 나무 바닥 산책로 길이 놓여있다. 그리고 갈대밭 끝에는 용산전망대로 오르는 탐방로가 있다. 이 탐방로에는 약간의 오르막 길이 있긴 하지만 걷기에 부담이 없다. 순천만습지의 낙조전망대인 용산전망대에서는 그 유명한 ‘순천만 낙조’의미한다.(사진 14) 를 감상할 수 있다.
남해고속도로 고흥나들목에서 857번 지방도로를 따라 12km쯤 가면 낙안읍성에 도착하고, 4km쯤 더 가면 금둔사에 도착한다. 순천만습지는 남해고속도로 순천만나들목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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