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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23 Vol.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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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얼굴 마주하면 즐기는 문화예술교육으로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아이들

코로나19 이후 모든 수업이 발 빠르게 온라인,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됐다. 학교 선생님들의 큰 희생과 배려, 열정 덕분에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웠던 공교육현장이 모니터 속에서 ‘꽃피는 교실’로 전환됐다. 미술과 체육, 음악 등 예체능 과목도 온라인상에서 활발한 수업이 이뤄졌다. 다만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아이들과 직접 대면했을 때 나오는 창조적 시너지가 있는데 온라인 교육은 아쉬운 점이 많다”라고 입을 모았다. 미래 교육의 방향성이 비대면, 온라인 등 기술에 방점을 찍은 에듀테크에만 집중되기보다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살아 있는 에너지가 반영될 수 있는 대면형 학습이 더욱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 이후 학교는 물론 지역의 문화센터도 전부 문을 닫으면서 특히 대면 교육 위주의 문화예술교육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육정책과 교육 서비스 시스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학생들이 각자 행복한 삶을 스스로 가꿔나갈 수 있도록 인문학적 감성과 소양을 바탕에 둔 미래 교육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코로나19 이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 취재 사례를 통해 학생들이 행복한 문화예술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김지윤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기자


코로나19 이전 현장 중심으로 진행된 문화예술교육

‘연극’은 학교 현장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문화예술교육이다. 대면 예술교육의 대표 주자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연극’ 단원이 생겼다. 영어로 연극은 ‘플레이(play)’인 만큼 놀면서 협업 능력과 창조력, 표현력을 키울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연극이다. 자신의 배역뿐 아니라 상대방의 피드백과 표정 등 극 전체의 맥락을 보는 힘을 키워주는 게 바로 연극의 강점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이전인 2018년 8월, 전국청소년연극제를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연극제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국어, 영어, 수학 공부에서는 느낄 수 없던 ‘카타르시스’를 맛봤다”라고 말했다.
“그때, 왜 그런 말을 하셨어요? 이모도 피해자였잖아요. 제가 받을 상처를 정말 가늠하지 못하셨나요?” 당시 연극제에 참가한 동대전고등학교 연극부의 창작극 ‘루피너스’ 가운데 일부다. 이 연극은 이모에서 조카, 조카의 딸로 이어지는 가정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극 중 화자는 이모로부터 시작한 줄 알았던 학대가 알고 보니 할아버지·할머니 세대부터 가정 내에서 ‘대물림’됐다는 걸 알게 된다.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흔하게 일어남에도 잘 가시화되지 않고, 경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 등을 날카롭게 지적해 호평받았다. 이 연극은 제22회 전국청소년연극제에서 최우수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연극제에 나가려면 작품 연습 약 3개월, 시도별 경연 과정 약 3개월이 걸린다. ‘장기전’인 셈이다. 대학 입시 공부가 지상 과제인 우리나라 공교육 현장에서 연극제 준비를 한다고 하면 “연극 전공하려고?” 하는 우려의 소리를 듣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데 이 연극제에 나온 청소년들은 모두 연극·연기 전공 등 예술 분야 지망생이 아닌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연극제 측에서 심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예술고교 등은 참가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 인문계고 연극부 등 연극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열정이 있는 학생들로 참가 자격을 제한했다.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살아있는 수업’

동대전고 연극부 학생들은 연극제를 위해 극본부터 대사,무대 소품 등을 직접 만들고 구성했다. 특히 연극제에 출품 할 극본을 만들기 전에 학생들과 지도교사는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 회의를 진행했다. 지도교사는 “가정폭력이 생각보다 주변에서 많이 일어난다. 다만 사적 공간으로 인식돼 갈등이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특히 부모의 폭력은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다. ‘루피너스’에서는 할머니와 이모, 조카, 조카의 딸 등으로 이어지는 가정폭력의 아픈 역사와 해결 방안, 고민 등까지 담아보고자 했다”라고 강조했다. 부모와 자녀들, 그 자녀의 자식들로 이어지는 몇십 년에 걸친 가정폭력의 시공간을 무대 위에서 재현한 것이다. 폭력 가해자를 이해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너도나도 쉬쉬하던, 경찰들마저도 “그런 건 집안에서 알아서 해결하세요”라고 법 적용을 피하던 상황들을 연극 무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사회 혹은 국어 시간에 가정폭력 등의 문제를 다룰 수 있지만, 문화예술 분야인 연극을 통해 해당 이슈를 다루면 더욱 입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실제 연극 교육을 통해 현장 교사와 학생들은 ‘살아 있는 수업’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교실에서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엎드려 잠자기에 바쁘던 아이도 정규 동아리인 연극부에 가입해 자신의 재능을 찾기 시작했다. ‘맨날 자던 애’가 ‘주연 배우감’ 소리를 듣기도 했다. 연극부 단장을 맡은 한 학생은 “TV에서처럼 소리 지르고, 뭔가를 극적으로 표현해 내는 게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한데 연극배우로 활동하시는 선생님이 직접 학교에 오셔서 연극의 기본 정신, 배우의 표현 기술 등을 알려주셨고, 눈빛과 몸짓으로 대사를 표현해 내는 모든 과정이 ‘나의 내면과 내 친구의 내면이 소통하는 방식’이라는 걸 체득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공감과 소통으로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

얼굴 보고 소통하는 ‘예술교육의 힘’은 학교뿐 아니라 집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정불화와 폭력 등을 연극 주제로 잡은 만큼 아이들의 실제 경험담이 소중한 밑 자료가 됐다. 연극 대본을 만들기 전 학생들은 각자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모님과 따뜻한 말을 나눠보는 영상을 촬영했다.
‘(나와 다르게) 우등생인 언니와 갈등 풀기’ 등 실제 가족과 꼬인 관계를 푸는 것도 해봤다. 극본 및 시나리오 작업 자체가 현실의 갈등을 해결해 보는 하나의 촉매가 된 것이다. 지도교사는 “아이들이 연극 수업에 열정을 가진 만큼 절실함이 있었고, 그 학생들의 가족도 지지해 주고 응원을 보내주면서 결과적으로도 좋은 창작극이 나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연극제에서 강원 북원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은 창작극 ‘판결을 내리겠습니다’로 최우수상(전라북도지사장상)을 받았다. 두 가정의 이혼과 양육 문제 등을 다룬 ‘법정물’이다. 밤낮은 물론 주말도 없이 연습하며 친구들과 협동,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 소품을 구상하면서 발휘한 창작력과 상상력 등 모든 것이 귀한 경험이었다고 학생들은 말했다.
연기 전공을 지망하지 않는 인문계 고등학교의 연극부가 이런 성취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지도교사들의 힘도 컸지만 문화의 힘, 예술의 힘에 푹 빠진 청소년들의 ‘몰입’이 한 몫했다. 연극이라는 예술교육의 한 분야를 접하며, 교과서 속 먼 이야기가 아닌 ‘내 얘기’를 몸짓과 표정으로 발산해보는 시간을 가진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평소 스트레스받은 부분들을 몸과 마음으로 해소하며 풀 수 있는 게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비대면 등 온라인이 상호작용의 전부를 이루고 손끝 터치 한 번으로 모든 정보를 얻을수 있는 세계가 편할 수는 있지만, 그곳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인간의 ‘진짜’ 희로애락 등 감정과 에너지가 대면형 예술교육에는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한 상처를 치유해 준 예술교육의 힘

문화예술교육의 한 분야로 ‘예술치유교육’도 있다. 음악과 무용, 미술 등 예술 매체를 ‘치유의 관점’에서 활용하는 교육을 말한다. 학교와 가정에서 환영받지 못해 방황하던 위기 청소년들이 예술치유교육을 통해 성장하는 사례도 속속 나온다. 오토바이를 훔쳐 무면허운전을 하는 등의 이유로 기소유예·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의 마음을 열기위한 ‘마음톡톡 음악치유 프로그램’도 그 가운데 하나다. 코로나19 이전에 열린 마음톡톡은 교육부와 GS칼텍스가 손잡고 진행한 예술치유교육 프로그램이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마음속 말들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집과 학교에서는 매번 ‘공부도 못하는 애’, ‘나쁜 애’라며 혼나기만 했거든요. 지금은 물건 훔치던 제 모습을 정말 반성해요.” 당시 마음톡톡에 참여한 김 군(16)의 이야기가 예술치유교육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려준다. 실제 전남 동부권에서는 음악치유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전인 2013년 25.2%이던 청소년 재범률이 2015년 21.9%로 떨어지는 등 예술치유 프로그램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연극과 음악 등 문화예술 분야 교육 현장을 취재하며 느낀점은 하나다. 적어도 교육 효과에서만큼은 ‘대면의 어색함’이 ‘비대면의 편리함’을 이긴다는 것이다. 감정을 나누고 표현력을 키워주며, 말 한마디를 나누더라도 어떤 분위기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세세히 알려주는 것은 바로 연극과 음악, 체육, 미술 등 문화예술교육이다. 코로나19 이후 직격탄을 맞은 전국 곳곳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여러 지원과 정책 등을 통해 하나둘 문을 활짝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청소년들이 지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려면 ‘표정이 있는 교육’인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