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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23 Vol.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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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너머 꿈

취미를 통해 찾는 교육의 지혜

전통주 빚는 상문고등학교
김한결 교사
지그시 지켜봐 주기, 충분히 기다려주기. 김한결 교사가 생각하는 술 빚기와 교육의 공통 노하우다. 막걸리는 항아리 뚜껑을 자주 열수록 금방 상하고, 학생들은 관심을 지나치게 쏟을수록 쉽게 엇나가는 까닭이다. 그의 취미는 전통주 빚기만이 아니다. 커피 만들기, 등산, 뮤지컬, 밴드 활동…. 다양한 체험을 즐기며 마음의 곳간을 채워 나간다. 취미를 통해 쌓아둔 긍정 에너지로 교실에 활기와 향기를 불어넣는다.

박미경 / 사진 이용기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학문을 닦는 과정을 닮은 전통주 만들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되 함부로 자유를 침범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 그 거리가 존재하는 사이를 우리는 ‘좋은 관계’라 부른다. 김한결 교사는 학생과 교사 사이에도 바로 그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손’으로 배워가고 있다. 바로 전통주 제조를 통해서다. 호기심으로 배우기 시작한 술 빚기가 학생들을 향한 그의 사랑을 점점 더 그윽하게 숙성시킨다. “학교에서 술 이야기를 하려니 조금 쑥스럽네요. 하지만 그 어떤 취미보다 ‘교육적’이라 생각해요.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과 전통주를 빚는 일이 놀랍도록 비슷하거든요. 술이 익어가길 기다리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하기를 기다려주는 법을 덩달아 배우고 있어요.”
그가 전통주 제조를 처음 접한 건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여름방학 때다. 혼자 즐길 만한 취미를 갖고싶어 서울의 한 술도가에서 마련한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했다. 곧바로 술 빚기에 매료됐다. 전통주가 거의 모든 학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걸리 빚기는 미생물을 이용하는 생명과학이자 화학이고, 전통문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우리의 역사다. 한편 지리이기도 하다. 어느 지역의 특산물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술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 무엇보다 수학이다. 술 빚기가 쌀과 누룩과 물의 비율로 알코올 도수를 조절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에, 수학교사인 그는 매우 큰 흥미를 느낀다.
“전통주 빚는 과정은 무척 체계적이에요. 풀이 과정에서 순서 하나만 빠뜨려도 정답에 이르지 못하는 수학 문제처럼, 막걸리도 중간에 과정 하나만 생략해도 맛이 이상해지거든요. 쌀과 물과 누룩 이외에 별다른 재료가 필요하진 않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고되고 힘들어요. 그래서 술이 다 익었을 때의 성취감이 매우 특별해요.”

기다림 연속, 술 빚기를 통해 인생을 배우다

맨 처음 2L짜리 유리병에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요즘 10L와 20L짜리 항아리 여러 개에 전통주를 빚어둔다. 그 덕분에 명절이 기다려진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며 친척들이 그가 만든 막걸리를 함께 맛보면서 도란도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까닭이다. 단지 술을 빚기 시작했을 뿐인데, 평범하던 일상에 좋은 추억이 쌓여간다.
“술을 빚어보니 기본을 지키는 게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찹쌀을 물에 불려 8시간 정도 내버려 뒀다 그 쌀을 다섯 번 이상 헹궈야 하는데, 그때 너무 세게 헹구면 쌀알이 깨져 맛이 변해버려요. 천천히 조심스레 씻는 게 중요하죠. 또 고두밥을 찐 뒤에는 반드시 식혀야 해요. 그러지 않고 곧바로 누룩을 넣으면 누룩 속 효모가 다 죽어버리거든요. 고두밥과 누룩을 용기에 담을 땐 손을 깨끗이 씻고 용기는 반드시 소독해야 합니다. 하찮은 과정이 하나도 없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항아리 뚜껑을 자주 열지 않는것이다. 술이 잘 익어가고 있는지 궁금해 뚜껑을 자꾸 열면 산소와 접촉이 잦아져 산화가 일어나고, 결국 막걸리의 신맛이 강해져 먹을 수 없게 돼버리기 때문이다. 지그시 바라보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 술을 제대로 숙성시키는 비결은 그것뿐이다. 그 과정이 ‘교육’을 닮았다고 그는 생각한다.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의 환경을 만들어준 뒤, 학생 스스로 공부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최고의 교육법이라 믿는 것이다. 과도한 관심과 지나친 잔소리는 가뜩이나 압박감을 느끼는 고등학생들에게 스트레스만 가중할 뿐이다. 믿어주고 맡겨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그가 선택한 최선의 해법이다.
“그건 ‘방치’와 달라요. 관심 없이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는 거니까요. 적절한 거리에서 바라보다 필요한 순간에 개입해요. 술을 빚으면서 생겨난 저의 변화입니다.”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몰입의 효과

전통주 빚기가 그에게 선물한 것은 그게 다가 아니다. 술 빚기는 그 자체로 ‘몰입’의 연속이다. 술 한잔을 얻기 위해 한 과정 한 과정 집중하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이며 얽혀 있던 마음이 안개 걷히듯 사라져버린다.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그의 취미는 그 밖에도 많다. 커피 만들기, 뮤지컬, 등산, 밴드 활동…. 교사가 되기 전부터 이것저것 배우기를 좋아한 그가 지금껏 해오고 있는 일이다. 그중 커피 만들기는 가장 오래된 취미다. 2016년부터 배우기 시작해 현재 바리스타 1급, 커피지도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해둔 상태다. 커피와 전통주는 비슷한 점이 많다. 무슨 향이 나고 어떤 맛이 나는지 테이스팅 노트를 쓰며 공부한 경험이 막걸리 빚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
“뮤지컬은 2020년부터 서울교사뮤지컬단에 소속되어 활동해 왔어요. ‘레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 역할을 맡은 적이 있고, 공동 작업의 묘미와 무대 위의 황홀을 원 없이 만끽했습니다. 지난 12월에 결혼했는데, 거기서 아내를 만났어요. 취미가 사랑을 선사해줬죠.”
2017년부터 몸담고 있는 상문고등학교 교사 밴드 ‘감성생활’에선 기타와 서브 보컬을 맡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활동을 쉬다 지난 연말 학교 축제에서 모처럼 공연을 선보였을 때, 그날의 떨림과 기쁨이 아직 생생히 남아 있다. 등산도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친구와 히말라야 등반을 한 그는 요즘에도 가끔 네팔에서 보낸 그 겨울을 떠올린다. 하늘 가까이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좋아, 지금도 두 달에 한 번씩은 반드시 산에 오른다.
“1년 사이클이 거의 비슷해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게 교사라는 직업 같아요. 학생들은 그 학년을 처음 겪을 텐데, 교사가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취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좋아하는 활동을 통해 작은 성취들을 쌓으면 교사의 몸과 마음에 좋은 기운이 쌓이고, 그렇게 쌓은 긍정 에너지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달된다고 믿어요. 교사가 ‘취미 부자’로 살면 아이들과의 대화도 풍부해져요. 다양한 관심사를 나누면서 친구처럼 유쾌하게 소통할 수 있죠.”

유쾌하고 건강하게 학생들과 소통하는 꿈

그가 수학 교사를 꿈꾼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담임선생님이 수학 교사였는데, 답 맞추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 수학이란 학문에 ‘원론적’으로 접근하며 수업을 했다. 그게 참 멋져 보였다. 훗날 자연스레 수학 교사가 됐고, 그도 ‘그런’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느냐’고 아이들이 물어올 때마다 그는 화내거나 짜증 내지 않는다. 대신 수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이 스며 있는지, 수학을 통해 논리적 분석력을 키우는 것이 인생에 얼마나 큰도움이 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좋아요. 가령 ‘환경 미화를 왜 해야 하느냐’고 누군가 물어오면 교실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말해줘요. ‘그냥 하라’고 말하는 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대화로 풀어요. 그 방식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꽤 있지만, 그게 옳다고 믿기 때문에 쭉 그렇게 해나가려 해요.”
그는 올해 교사 생활 10년 차다. 아직까진 아이들과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아주 먼 훗날에도 그럴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취미’가 더욱 소중해진다. 스스로 행복한 교사만이 아이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삶의 끝을 떠올리는 사람이 오늘을 더 의미 있게 살듯, 그 직업의 막바지를 상상하는 사람이 직업인으로서 오늘을 더 잘 꾸릴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은퇴하는 그날까지 학생들과 시시콜콜 대화하는 꿈. 지금 쏘아 올린 꿈의 별이 그의 미래에 먼저 가서, 환한 불빛이 되어줄 것이다.케이 로고 이미지
'꿈 너머 꿈'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꿈 너머 꿈'은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담는 코너입니다. 회원님이라면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꿈을 향해 쉼 없는 도전을 하는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주세요. 「The-K 매거진」이 회원님들의 꿈과 도전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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