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매거진(더케이매거진) Magazine
Monthly Magazine
March 2023 Vol.67
생각 나누기 아이콘 이미지

배움 더하기

오늘의 학교

"제대로 배우면 무한한 기회가 있습니다"
융합기술과 만난 농업의 미래

순천대학교 농업교육과 강대구 교수
과거 한국에서 농업은 일상과 밀접했다. 기성세대가 어린 시절만 해도 농경사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고, 도시에 살더라도 시골에 사는 일가친척을 방문하며 농촌의 일상을 접했다. 학교에서 교양과목으로 농업을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화가 무르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요즘 학생들에게 농업은 익숙지 않은 분야다. 강대구 교수는 농업을 제대로 배우면 미래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라희 / 사진 김수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이제는 농업교육에 대한 오해를 내려놓아야 할 때

순천대학교 사범대학에는 전국에서 단 하나뿐인 학과가 있다. 바로 농업교육과다. 1983년에 순천대에 농업교육과가 개설될 무렵만 해도 농업교육과가 개설된 대학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1990년에 국립 사범대학 출신자의 우선임용제도가 위헌으로 판결 나면서 농업 교사 양성 정책에 변화가 생겼고, 7차 교육과정 개편 이후 농업이 선택교과로 바뀌어 농업계 고등학교를 제외한 중등학교에서 농업을 가르치는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강대구 교수가 졸업한 서울대학교 농업교육과를 비롯해 각 대학 농업교육과가 개편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농업교육과에서 농업 교사만 양성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농업을 매개로한 다양한 산업을 이끌어갈 인재도 이곳에서 배움을 쌓는다. “아직도 농업교육과 하면 농사짓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으로 여기는 분이 있어요. 좁은 관점에서 작물의 특성에 관해 가르치는 것도 농업교육의 일부지만, 알고 보면 농업에서 파생되는 수없이 많은 분야가 존재합니다. 이들 직업을 알려주고 자신에게 적합한 농업직을 준비하고 선택해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 농업 교사이고, 농업교육의 역할입니다.”
농업교육의 최전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대구 교수에게 농업과 관련한 진로 확대는 미래의 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실제로 최근 농업은 인공지능과 로봇 등 첨단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팜은 물론 최신 트렌드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한 농축산물 관련 상품 개발 및 농기업 경영, 농기계 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되는 추세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대학에서 농업계 학과에 진학하지 않으면 농업 분야에 얼마나 다양한 진로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농업교육과 전공과목 중에 ‘직업·진로·설계’ 과목이 있습니다. 2022년 2학기를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에게 익명으로 수강 소감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한 학생이 ‘왜 중학교 때 농업에 관한 진로를 한 번도 말해 주는 교사가 없었는지 아쉽다’고 적은 거예요. 농업계에 이렇게 다양한 진로가 있는 줄 알았다면 고등학교 때부터 농업계에 진학해 준비했을 것 같다고요. 생각보다 농업을 매개로 진출할 수 있는 진로가 무척 다양하거든요. 농업을 가르치는 학교가 드무니 ‘농사=농부’라는 협의로만 판단하고 ‘농사는 힘들다’는 인식이 앞서죠. 그러다 보니 진로 지도뿐 아니라 농업 분야 인재 유입에도 한계가 생기는 겁니다.”

농업에서 가지를 뻗은 다양한 직업의 세계

기존 법령에서는 농업을 농작물 재배업과 축산업, 임업 및 이들과 관련한 산업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농업의 의미가 확대되면서 농업 전공자들이 진출할 수 있는 농업 관련 전후방 산업이 계속 늘고 있다.
“식물이나 동물자원, 생명공학 분야가 아니더라도 농기계, 식품가공, 농산물 유통·정보·마케팅 등은 물론 농기업, 농촌 서비스 등 다방면에서 농업과 연계된 직업이 있습니다. 하물며 농촌에서 농기계를 사용하면 이를 만들거나 수리할 엔지니어가 필요하고, 농산물 판매직이라고 해도 소비자들은 농업에 관한 전문 지식이 있는 판매자를 더 신뢰합니다. 한국직업사전(work.go.kr)에서 ‘농업’을 키워드로 찾을 수 있는 직업은 60건입니다. 농촌, 식물, 동물, 농공, 조경, 농업경영, 농기업, 화훼, 산림, 식품 등 농업 관련 용어를 포함해 검색하면 더 많은 직업이 나옵니다. 융복합 직업도 꾸준히 나오는 추세이고요.”
강대구 교수는 전남도교육청의 지원으로 순천대에서 2020년 도내 농업 계열 특성화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미래 Young農人(영농인)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기능 숙달 교육에서 벗어난 융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농직업 세계와 커리어 패스’에 대해 강의하며 학생들이 관심 있는 농직업 분야의 경력 개발 단계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왔다.
“농촌진흥청에서 2014년에 발표한 ‘농업·농촌 유망 일자리 50선’에 따르면, 농업·농촌 유망 직업은 크게 ‘농산물 생산 및 지원 분야’, ‘6차 산업화 분야’, ‘농촌 삶의 질 분야’, ‘ICT 등 융복합 분야’, ‘농촌 지원 서비스 분야’, ‘국민 생활 분야’, ‘환경·에너지 분야’ 등 일곱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더 넓게는 8개 분야로 구분할 수도 있고요. 각 항목에 속하는 직업의 종류도 수십 가지가 넘어요. 기업에서 사원부터 사장까지 경력별로 직급을 구분하듯, 농업 역시 생산 농업의 초보 단계부터 중급 이상의 기술자와 경영인 등 다양한 단계가 있습니다.”

평생교육과 함께하는 선진국형 일터 학습 정착 필요

강대구 교수는 제대로 된 농업교육이 이루어지려면 교양교육과 함께 직업교육이 초·중등학교 단계에서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 시절 농촌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지극히 익숙한 일이지만, 요즘 청소년들은 시골 생활을 경험한 비율이 극히 드물다. 그래서 강대구 교수는 2000년경 당시 학과 교수와 사범대 학생들을 위한 교양과목으로 ‘인간과 농업’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했다. 교양과목 개설 후 첫 강의 시간에 60여 명의 학생이 모였는데, 대학생이 될 때까지 농촌에 한번 이상 가본 적이 없다는 학생이 7명이었다. 지방 도시인 순천에서도 수강 인원의 10%에 달하는 학생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도 농촌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농업이나 농촌에 대한 이해 부족과 농직업에 대한 낮은 선호도와도 연결된다.
교육대학원생과 광주자연과학고 방문 학부생들과 연구과제 스터디 모임 멘토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도 정책적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교양으로서의 농업교육도 한계가 있습니다. 2001년에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 방문교수로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는 주지사가 만든 농업교육지도자 재단에서 농업인과 일반 시민이 기금을 모으고, 농업교육과 지원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을 지원하며, 전국적으로는 ‘Ag in the classroom’이라는 협의체가 각 주에서 교양교육으로 농업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학습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습니다. 성인 농민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주립대학 시스템이나 평생학습 시스템도 정착되어 있고요.”
강대구 교수는 “우리나라도 장학제도가 있지만, 학생 개인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라고 전한다. 농업 교과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전하다. 그는 “2015년부터 진행된 NCS 교육과정 적용은 각론으로 들어가면 아쉬움이 크다”라고 토로했다. 다양한 분야와 융합되는 농업의 현주소와 달리, NCS 적용 기준의 한계로 농산업 분야의 학습과 진로 다양성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농업을 재배와 사육만으로 한정하려는 인식에 기인한다.
교사 학습공동체 워크샵 환영사
“실제 산업에 종사하는 인력 구조로 보면 농업과 연관되는 분야가 무궁무진합니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농가에서 트랙터를 이용해 작업을 해왔다면, 장기적으로는 생산시설 변화에 따른 생산시설 내 작업에 대한 대비뿐 아니라 스마트팜 같은 생산시설의 간단한 수리와 제어, 농지 토양의 조건이나 작물 상태에 따라 경운 작업을 제어할 수 있도록 GPS 정보 설치와 활용 기술까지 확장된 훈련을 받을 수 있어야겠죠. 그런데도 현재 농업은 일부 작물과 재배 위주의 내용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 다음 세대를 위한 농업교육을 생각하며

인구 및 사회 구조 변화로 대학 진학률이 낮아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농업계 학과 진학생 감소는 농업 교양 교육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강대구 교수는 “농업계 학과에 지원한 학생들도 농업직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탐색 없이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각 대학의 학과 설치 역시 농업 분야의 인력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인기를 끄는 학과 위주로 개편하는 경향이 크다.
한편으로 그는 특기자 선발을 입시에 악용한 일부 사례때문에 FFK*대회와 전국기능경기대회 같은 전국대회 입상자들을 특기자로 선발할 경로가 사라진 점을 아쉬워했다. 농업에 관심과 역량을 지닌 청소년들이 지속해서 농업계 진로를 밟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 관련 전국대회 입상자들은 이미 농업 분야에 열정도 크고 기초 지식도 갖추고 있습니다. 농업계 고등학교 상위권 학생들은 대학 공부를 따라갈 기본기도 갖추고 있고요. 실력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면 장기적으로 세대를 넘어 좋은 농업교육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 역시 농업 전문 직무 확대를 위한 연구를 놓지 않고 있다. 2017년에는 농촌진흥청 공동연구 사업의 하나로 도시농업 모델 및 치유농업 기반 기술 개발 과제를 수행하면서 ‘치유농업 창업 모델’을 설계하고 전문가 직무 모형을 개발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그는 더 많은 청소년이 농업에 대한 고급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자신의 진로를 설계할 때 다양한 선택지를 참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적어도 인생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기회 가운데 농업이라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
*FFK : 한국영농학생연합회 (Future Farmers of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