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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23 Vol.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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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상 수상자 인터뷰

안드레이, 막심, 투이링, 나데즈다, 미연. 미술실 벽면을 가득 채운 작품 속 이름에서 저마다 다른 나라가 그려진다. 중국어, 러시아어, 한국어 등 각자 쓰는 문자도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한 벽에 그림을 걸 수 있는, 대한민국에 살며 관산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교실 안에는 국경이 없다. 사랑받을 존재이며, 학교의 주인인 학생이 있을 뿐. 그 믿음을 실천하는 관산중학교 신경아 교사를 만났다.

이성미 / 사진 김수

이주 배경 청소년이 처음 만나는 한국 ‘학교’

안산은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특히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은 2009년 다문화특구로 지정되었고, 다문화음식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그 안에 자리한 관산중학교도 학생의 약 90%가 타국에 연고를 둔 이주 배경청소년이다. 한국,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콩고민주공화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20여 개 나라의 문화가 한 학교 안에 있다.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 학생은 한 반에 두세 명뿐이다.
대부분 학생에게 관산중학교는 ‘처음 만나는 한국’이다. 또 교사는 낯설고 어색한 타국에서 만나는 ‘첫 어른’이다. 신경아 교사는 늘 이 사실을 명심하며 수업에 임한다.
“저는 한국에서 자랐지만 태어난 곳은 일본이에요. 해외 여러 국가에 거주하는 가족의 영향으로 20년 전에는 ‘다문화미술교육’을 대학원 논문 주제로 삼았고요. 하지만 처음 관산중학교에 왔을 땐 저도 놀랐어요. 그전까지 대입을 목표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여기에선 의사소통조차 자유롭지 못하니 당황했죠. 하지만 그만큼 미술의 역할이 클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예술에는 언어도, 국적도 뛰어넘는 힘이 있으니까요. 또 카자흐스탄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언니에게 고려인들이 한국에 얼마나 가고 싶어 하는지 들은 후로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첫인상을 좋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신경아 교사는 다문화 학생을 위해 다양한 미술 수업 자료를 개발하고 동영상을 제작해 언어·문화적 소통을 끌어내려고 한다. 학생들이 직접 ‘과일’, ‘식물’ 등 주제를 정해 그림을 그리고 한국, 중국, 러시아어로 적은 낱말 카드 ‘관산말모이’를 만들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시간을 자주 선물한다. 일례로 ‘가족의 식탁’을 주제로 수업을 하는데, 이때는 가족이 즐겨 먹는 음식을 작품으로 그리고 만들며 소개한다. 친구의 작품을 감상하며 학생들은 타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다름을 받아들이며 다문화 감수성을 키운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나와 친구를 배우고, 세상을 배운다. 과목은 ‘미술’이지만 이 시간은 국어, 문화, 세계, 친구 등 어떤 단어로도 대체될 수 있다.

학생의 자존감을 높이는 전시

관산중학교에 부임하자마자 신경아 교사는 십시일반 예산을 모으고 외부 지원을 받아 방치되어 있던 미술실을 리모델링했다. 노랑, 파랑, 초록으로 벽을 칠하고 단장해 학교 미술관 ‘예술공감터’도 만들었다. 자투리 공간, 벽 어디에나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학생들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신경아 교사가 학교 안에 전시 공간을 늘리게 된 사건이 있었다. 부임한 첫해, 그는 학생 몇 명이 미술실로 몰래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장난을 치려나 싶어 놀란 마음에 뒤따라갔는데, 아이들은 불 꺼진 미술실에 얌전히 앉아 벽에 걸린 자기 그림을 서로 자랑하고 있었다. 작품을 설명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수줍음과 자랑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전시는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잘하고 있어”라는 격려와 칭찬이었다. 학교 미술관을 만든 데 그치지 않고, 신경아 교사는 유튜브 채널 ‘국경 없는 미술실’을 운영하고, 교육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학생들의 일상과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대폭 늘렸다. 이러한 활동은 타 학교에서 다문화 학생을 만나는 교사들에게, 다문화교육에 관심을 둔 사람들에게 좋은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신경아 교사에게도 학생들의 입시가 가장 중요한 목표인 때가 있었다. 하지만 관산중학교에서 그는 교육의 방향을 달리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공교육이 인정받으려면 사교육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잘 가르쳐 명문대에 진학시키는 것이 목표였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교육이란 학생을 ‘어느 학교에 보내는 일’이 아니라 ‘그들 삶으로 찾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너는 사랑받는 존재’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 학교 밖으로 나가서도 ‘세상에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것이 공교육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게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니까요.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니까요.(정현종시인의 ‘방문객’ 중)”
다문화 미술교육의 개척자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신경아 교사는 “대한민국 스승상은 학교가 받을 것을 내가 대표로 받은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부임 첫해에 모자란 미술 수업 예산을 메워주기 위해 다른 수업 예산을 쪼개 모아주던 동료 선생님들, 아이들 작품을 건다고 하니 못을 300개나 박으며 일손을 덜어준 교직원, 교사의 교육 철학을 지지하고 도와준 교감·교장 선생님, 이 모든 이가 참된 스승이고 수상자다. 더불어 대한민국 스승상 수상자이자 세계인이 인정할 스승상의 주인공이다. 신경아 교사와 동료 교직원들이 다문화교육 현장에서 그려놓은 그림이 훗날 다양성 존중의 사회로 가는 지도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