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매거진(더케이매거진) Magazine
Monthly Magazine
June 2023 Vol.70
생각 나누기 아이콘 이미지

배움 더하기

인생 이모작

내 인생은 이차함수!
그래서 인생 2막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색소폰 연주 재능기부로 행복 전하는 '국민 스승' 전근배 회원



전근배 회원은 자신의 삶을 ‘이차함수 인생’이라고 정의한다. x=y로 똑 떨어지듯 나에게 주어진 일만 해내는 일차함수 인생이 아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고, 이왕 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이차함수 인생이다. 그렇게 살았더니, 정말 그의 인생은 그래프를 그려놓은 듯 오목한 그릇 모양이 되었다. 삶 안에 많은 것이 담기기도 했다. 제자들이 담기고, 사랑과 행복도 담겼다. 그리고 지금 그는 삶의 그릇 안에 색소폰 소리를 담으며 살고 있다.

이성미 / 사진 성민하

봉사와 교육으로 평생 헌신하며 살아온 인생

경기도 이천 해강전원마을에 있는 단독주택. 전근배 회원이 최근 새롭게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이다. 철마다 서로 다른 얼굴의 꽃이 피고, 창 너머 푸른 산자락이 액자에 담아놓은 듯 보이는 평화로운 마을. 그는 아름다운 곳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비결로 ‘봉사’를 꼽는다. 봉사로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 아니다. 평생 교육에 헌신하고, 퇴직 후에도 ‘국민 스승’ 으로서 봉사한 것이 자신에게 큰 복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믿음 덕에 그는 여전히 봉사하러 가는 날이면 신이 난다.
봉사가 있는 날이면 색소폰과 스피커, 보조기구 등을 차에 싣고 나간다. 사람들에게 색소폰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인근 요양병원, 경로당 등 그를 찾는 곳이 많다. 매달, 많게는 매주 찾아가는데도 “또 언제 오느냐”라고 묻는 어르신들이 있어 잠시도 걸음을 늦출 수 없다. 공연에서는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섬마을 선생님’, ‘해변의 여인’, ‘찔레꽃’, ‘내 나이가 어때서’ 등을 연주하고, 인생 2막 이야기도 들려드린다 .
어르신들에게는 ‘색소폰 교장 선생님’으로 익숙하지만, 13년 전 퇴직하기 전까지 42년 5개월간 교사, 교장, 장학관, 광주하남교육장을 역임했다. 그러고는 지금, 그는 학생들만의 선생님이 아닌, 국민의 스승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전국 최초로 사랑의 종을 울린 산골 마을 총각 선생님

인천교육대학교를 졸업한 전근배 회원은 1968년 4월 경기도 용인 장평초등학교에 처음 부임해 2010년 8월 수원 신성초등학교 교장으로 교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교사가 되기까지 삶은 순탄치 않았다. 가난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재건 학교(야간학교)에 다니며 검정고시를 치렀다. 뭐든 혼자 힘으로 해내야 했다. 당시 재건학교 교장인 전영준 선생님만이 하루에도 열 번씩 “할 수 있다”라고 외치며 그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 외침은 전근배 회원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첫 부임한 장평초등학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 마을에 있었다. 학교 가까이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그는 일부러 걸어서 40분 이상 가야 나오는 마을로 하숙을 옮겼다. 학생들 가까이에 머물기 위해서였다.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가 큰절을 올리고, 학부모들에게 자신이 교사로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물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놀지만 말고 저녁에 공부하도록 도와주면 좋겠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하면 마을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저녁 공부 시간을 알리는 종을 치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장에게 징을 빌려달라고 했으나 깨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징 하나도 귀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어 저녁 7시면 호루라기를 불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입이 아프고 구경거리가 되는 것 같아 창피하기도 했지만, 집 밖으로 들리는 책 읽는 소리에 용기를 얻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집마다 돌아다니며 개별 지도도 했다. 밤 10시에는 다시 호루라기를 불어 ‘잘 시간’을 알려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세운 종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되는 정성에 감동한 마을 이장은 징을 건네주었다. 이어서 동네 청년과 함께 통나무로 종각을 세우고 종을 울리게 했다. 이것이 새마을운동 이전부터 시작된 ‘사랑의 종소리’였다. 종소리의 효과는 대단했다. 그후 KBS 방송에서는 밤 10시마다 “땡땡땡~ 청소년 여러분, 밤이 늦었습니다” 하고 사랑의 종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지게 했다. 또 새마을운동의 모티브가 되어 청와대 육영수 여사의 격려 편지도 받았다. 신문, 방송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이 외에도 전근배 회원은 등하굣길 인사 습관 들이기, 마을 청소하기, 국경일 태극기 달기 등 봉사와 애국정신 함양에 필요한 자료를 개발하고 또 실천했다. 물자 절약, 인성 교육, 환경 교육도 꾸준히 이어갔다.
우측통행 캠페인 우측통행 캠페인 색소폰 연주 봉사

학생들의 스승에서 ‘국민 스승’으로

교사 시절 전근배 회원은 급훈으로 “하면 된다. 안 되면 다시 하자”를 외쳤다. 교장이 되고부터는 성실을 강조했다. “누군가 할 일이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할 일이면 지금 하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수원 신성초등 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할 때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인사하며 아이들이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했다. 그는 매일 등교 시간에 교문 앞에 나가 “굿모닝(Good Morning), 오하이요 고자이마스(おはようございます), 니-하오(你好)” 하고 인사하며 아이들을 맞이했다. 교직원들도 함께했다.
이차함수 인생은 퇴직 후에도 계속되었다. 전근배 회원은 퇴직 후 요양원 어르신들을 위해 색소폰 공연을 다녔다. 현직에 있을 때 독학으로 배운 재능을 사회에 나누기 위해서다. 그는 지금도 경기도 수원, 양평, 광주 등에 있는 요양원, 경로당, 노인대학과 지하철역, 각종 행사에 공연 봉사를 다니고 있다. 2019년에는 ‘전국 논개 시낭송퍼포먼스대회’에 (사)한국스토리예술연합회 팀과 함께 참가해 당당히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교직에 있는 동안 수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한 재능을 살려 국민 스승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말 그대로 퇴직 교직원들이 “온 국민의 스승이 되자”라는 것이다. 국민 스승 운동의 골자는 ‘애국’이다.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게 하고, 태극기와 애국가 바로 알고, 독도를 사랑하자는 캠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는 건널목 우측통행 캠페인이다.
1905년 고종 황제는 우측통행을 법으로 정해 실천했다. 그러나 1921년 조선총독부가 총독부령으로 이를 일본과 같은 좌측통행으로 전환했다. 해방 이후 유엔이 차량은 우측통행, 사람은 그대로 좌측통행을 유지해 오다가 2010년에서야 도로교통법으로 건널목 좌측통행을 우측통행으로 바꿨다. 일제의 잔재인 줄도 모르고 89년간 좌측통행을 지켜온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근배 회원은 삼락회 회원들과 함께 건널목, 지하철역, 시장, 교차로, 공원 등에서 꾸준히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누군가 할 일이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할 일이면 지금 하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담기는 것이 많은 이차함수 인생

전근배 회원이 이토록 봉사에 열정인 이유는 자신이 베푼 사랑과 봉사는 반드시 더 큰 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집 2층에 개인 교육 연구소를 두고 신문, 방송에 소개된 기록을 모아 전시해 두고 있다. ‘종소리에 깨어난 마을’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1970년 8월 12일), 청와대에서 육영수 여사가 보내온 편지(1970년 9월 11일), 물자 절약 운동을 다룬 TBC 방송 ‘인간만세’(1976년 10월 29일), 은퇴 후 ‘성교육예방지원단’을 발족한 일을 다룬 경기신문 기사(2011년 1월 19일) 등은 살면서 받은 훈장(勳章)과 같다. 벽을 따라 걷기만 해도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저는 먹고 살 것이 아주 많습니다. 교사로서 해온 활동과 성과, 학생들과 쌓은 추억, 주위의 응원과 격려, 이 모두를 나열하려면 하루가 부족 하거든요. 추억만 먹고 산다고 해도 배가 부를 거예요.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추억을 많이 만드십시오. 주어진 일만 해내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내십시오. 이차함수 인생이 되십시오. 그러면 은퇴 후 노후 인생이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봉사가 힘에 부치는 건 사실이다. 전근배 회원은 “색소폰을 연주하려면 들고 다닐 것이 많아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어요. 여든까지만 봉사하고 그만둘 것”이라며 손을 젓는다. 그러나 조심히 예견하건대, 아마 그는 힘이 닿는 한 평생 자신이 가진 것을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며 살 것 같다. 이차함수 인생의 재미를 아는 그가 어떻게 직선으로만 걸을 수 있을까. 아마 그는 평생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해낼 것이다. 사람을 계속 담아낼 것 이다. 퇴직 후에도 제자들에게 가르친 대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정원에 피어난 꽃처럼 아름답다.케이 로고 이미지
'인생 이모작'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재능을 기부하며 역동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의미 있는 인생 이모작을 실현하고 있는 회원님을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The-K 매거진」 지면에 담아 많은 회원님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전해드리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 보내실 곳 : 「The-K 매거진」 편집실 (thekmagazine@ktcu.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