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쉬어가기
아름다운 동행

선선한 바람, 부서지는 파도가 가져다준 행복
유쾌한 자매들의 ‘가을 바다 여행기!’

김경원 시흥중학교 주무관과 자매 김순옥, 김순남 회원 여자에게 자매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나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속속 꿰고 있는 존재이자,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친구로, 때로는 인생의 매순간을 함께한 나의 역사가 되기도 하고,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준 스승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주인공인 자매들의 대화 속에는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표현이 많았다. 오롯이 하나가 된 자매들의 시간! 그 즐거운 순간을 따라가 보자.
  • 글. 김유리
  • 사진. 권대홍

김순옥 김순남 김경원
세월이 쌓일수록 더해지는 애틋함

가을장마 예고로 뒤숭숭한 아침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여행에서 맑은 날을 기대하는 것이 사람 마음인데 출발지인 서울의 아침은 매우 흐리기만 했다. 8남매 중 막내라는 사연 의뢰자 김경원 시흥중학교 주무관은 모처럼 언니들과 하는 여행이 얄궂은 날씨 때문에 어그러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녀는 <The–K 매거진>에 보낸 사연에서 “8남매 중 네 자매가 교직원공제회 회원입니다. 교육기관에 몸담은 공통점 때문인지 대화도 잘 통하고 만나면 즐거운 사이인데 각각 강원도, 전라도, 경기도에 살고 있어 자주 보지 못하네요”라며 언니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전했다. 울고 웃으며 함께 성장한 자매들이라 모르는 게 없는 사이지만, 각자 가정을 꾸리고 지역을 달리해 살다보니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절한 막내 동생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KTX를 타고 도착한 오늘의 여행지 부산은 태풍의 영향권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다. 함께 출발한 셋째 언니 김순옥 씨의 얼굴도 한결 밝아졌다. 원주에서 고속버스로 부산에 도착한 넷째 언니 김순남 씨 역시 언니와 동생을 보자마자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갑작스런 태풍 때문에 군산에 사는 다섯째 언니는 합류하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세 자매는 첫 번째 목적지를 향해 차에 올랐다. 자매들이 찾은 곳은 해동용궁사였다.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이곳은 바닷가 바위 위에 세워진 해안가 사찰로 김경원 주무관이 고른 여행지였다. 십이지신상을 지나 입구에 다다르자 춘원 이광수의 시비가 보였다. 시를 읽고 나자 기대감이 한층 커졌다. 동해바다의 풍광을 칭송한 그의 시만큼 용궁사의 감동을 적절히 드러내는 문장은 없어보였다.

바다도 좋다하고 청산도 좋다거늘
바다와 청산이 한곳에 뫼단 말가
하물며 청풍명월이 있으니
여기 곳 선경인가 하노라.

어두운 용문석굴을 지나 108 돌계단을 딛는 발걸음에 묘한 설렘이 전해졌다. 귀에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드디어 탁 트인 풍광이 자매들을 맞이했다. 상상 속 용궁을 본 듯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가족

세 자매는 산책을 하듯 용궁사 곳곳을 거닐었다. “용궁사는 처음이네요. 부산에 몇 번 와보긴 했지만 여긴 일정이 맞지 않아서 오지 못했거든요.” 김경원 주무관이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들 역시 동생이 바라보는 넓은 바다를 함께 바라봤다. 기암괴석 위로 밀려오는 파도와 대웅전의 알록달록한 처마가 조화롭게 어울리며 절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때맞춰 흐릿했던 하늘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다음 코스는 바닷가 도시 부산을 대표하는 해운대 해수욕장이었다. 바다에 도착한 자매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모래 감촉에 추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어릴 때 셋째 언니는 제 롤모델이었어요.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언니의 영향이었죠. 간호대학을 다니는 언니가 저는 그렇게 멋있더라고요.” 넷째 언니 김순남 씨가 말했다. 배턴을 넘겨받듯 셋째 언니 김순옥 씨가 말을 이었다. “저는 교사였던 둘째 언니의 영향을 받았어요. 우리 형제는 어려서부터 서로를 챙기는 데 익숙했어요. 너나 할 거 없이 아래 동생을 챙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죠.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사랑받은 건 우리 막내였고요.”
언니의 얘기에 김경원 주무관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리사랑이랄까요. 생업에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첫째 언니와 둘째 언니가 우리를 자식처럼 돌봤어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해야 한다며 둘째 언니는 전주 시내에 있는 학교로 동생들을 전학시키기도 했죠.”
자매들의 수다엔 자리에 없는 다른 자매들의 이야기도 더해졌다. 8남매의 역사는 누구 하나를 빼놓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막내의 언니들 자랑은 계속됐다.
“나이 차가 큰 언니들이 있다 보니 전 학창시절이 늘 풍요로웠어요. 언니들이 사주는 옷이나 물건들은 서울에서 유행하는 최신 상품들이었거든요. 언니들 덕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고 항상 재미있었어요.”
자매들의 대화는 늘 고마움으로 마무리됐다. 누구 때문이 아닌 덕분에가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시골이었지만 부모님이 남달랐어요. 자식들이 공부하는 걸 좋아하셨거든요.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을 만큼 깨어있는 분이셨어요.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도 없으셨고요. 매 한번 들지 않고 8남매를 키우신 분들이에요. 어릴 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보니 우리 부모님이 대단한 분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자매들의 넉넉한 미소와 여유의 원천은 역시 부모님이었다. 베토벤이 말한 ‘훌륭한 부모의 슬하에 있다면 사랑이 넘치는 체험을 하게 되고, 그것은 먼 훗날 노년이 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 가족이었다.

여자 셋이 모이면? 뭐든지 즐겁다!

세 자매는 다음 장소로 부산의 명소인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을 찾았다. 영화 속 배경이기도 했던 국제시장은 전시 물자를 팔기 위해 사람들이 장터로 몰리면서 시장이 형성되었다. 이른바 ‘도떼기시장’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현재는 기계 공구·전기 전자류·주방 기구·의류가 주요 품목인 도·소매 시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미로처럼 얽힌 골목에 식용품·농수축산품·공산품 점포들이 들어서 있다. 근처에는 관광 명소인 광복로, 용두산공원, 보수동 책방골목, 임시수도 기념관, 근대역사박물관 등이 소재한다. 세 자매는 옛 추억을 따라가듯 시장 곳곳을 구석구석 누볐다. 가장 활기를 띠고 시장을 구경한 사람은 넷째 언니 김순남 씨였다.
“은퇴를 했지만 여러 사회활동을 하다 보니 장을 보러 갈 시간이 없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시장을 가게 되면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죠.”
알찬 일정을 소화한 자매들은 시장 구경 후 달맞이 고개에 위치한 횟집을 찾았다. 분위기 있는 야경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횟집은 어디에나 있지만 바다를 보며 도란도란 대화하는 자매들의 저녁식사는 감회가 새로웠다. 이들은 모처럼 함께한 자리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시간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제는 누군가의 부인이 되어 엄마로, 며느리로, 사회인으로 지내다 보니 자매들만의 시간을 갖기가 어려워진 까닭이었다.
“1년에 몇 번은 꼭 보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가족들을 동반하고 모이는 일이 많죠. 오늘처럼 자매들만 모인 적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막내가 참 고맙네요.”
동생의 예쁜 마음을 헤아린 셋째 언니 김순옥 씨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식사를 마친 자매들은 마지막 일정으로 부산의 야경 명소를 택했다. 최근 부산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인기 만점의 ‘더 베이 101’이었다. 해운대구 우동에 위치한 이곳은 부산 야경 필수코스로 고층의 마린시티 빌딩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또, 인생사진을 건질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빌딩 숲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이색적인 장소에서 유쾌한 자매들의 추억이 더해졌다.

자매의 시간은 계속된다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호텔에서 간단히 조식을 해결한 자매들은 1박 2일 일정의 마지막 코스로 향했다. 목적지는 최근 부산에서 문을 연 미디어 전문 미술관 ‘뮤지엄 다’였다. 초고화질 LED 발광 다이오드를 바닥과 천장, 벽면에 설치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독특한 미술관이었다.
자매들은 입구에서부터 감탄을 터트렸다. 황홀한 미디어 작품을 보는 세 자매의 미소에서 천진한 소녀가 보였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감사, 사랑이 넘치는 어여쁜 소녀들의 모습이었다. 셋째 언니 김순옥 씨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작고하신 소설가 최명희 선생이 여고시절 국어선생님이었는데 그분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종종 생각나요. 어디에서든 배울 것이 있고 느낄 것이 있다고 하셨어요. 사람이 말하는 입모양 하나도 잘 살피면 각기 다른 느낌이 전해지고. 하찮게 여기는 잡지에서도 내가 배울 것이 있다고요.”
자매들은 그렇게 성장했다. 서로에게 배우고 베풀며 함께 느끼고 공감했다. 견고한 유대감과 믿음 속에 자리 잡은 ‘동근연지(同根連枝, 같은 뿌리와 잇닿은 나뭇가지, 즉 형제자매를 일컬음)’의 정처럼. 일방통행 없는 인간사에 서로를 위하며 우애하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것을 세 자매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감사와 행복이 가득한 자매들의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가을 오롯이 기억될 특별한 부산여행의 추억과 함께.

1박 2일
여행을 마치고
“잠깐의 여행이 큰 힐링으로” 셋째 김순옥(부일여중 보건교사 은퇴)

손자를 돌봐주며 정신없이 지내던 중에 동생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여행을 가자고. 처음에는 걱정 반 기대 반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잘 왔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동료들 모임을 나가면 이번 여행 이야기를 하려고요. 우리 아이들도 모두 교사인데 아름다운 동행의 문을 두드려 보라고 꼭 전하고 싶어요.

“우리끼리 수다 삼매경, 태풍을 뚫고 온 보람이 있네요” 넷째 김순남(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간호사 은퇴)

가을장마에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이 많았어요. 원주에서 출발하는 전날까지도 갈팡질팡 했었지요. 하지만 막상 와서 언니 동생을 보니 역시나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번 모여 수다를 떨다 보면 밤을 샐 만큼 할 말이 많은 사이인데, 자리 한번 만드는 게 쉽지 않거든요.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동생에게 고맙네요. 짧은 여행이었지만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크게 받은 사랑, 더 크게 돌려주고 싶어요” 막내 김경원(시흥중학교 주무관)

엄마가 되고 아이들을 키워보니 언니들이 제게 준 사랑이 어마어마했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요즘 제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 드려야 하나 자주 생각하던 중에 이런 소중한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언니들과 함께해서 더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어요. 교직원공제회 덕분에 예쁜 추억을 만들게 되어 고맙습니다.

자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 해동용궁사

    해동용궁사는 1376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대사의 창건으로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중 한 곳이라 불린다.

    051-722-7744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용궁길 86
  • 해운대 해수욕장

    부산의 대표 해수욕장. 통일신라시대의 문인 최치원이 소나무와 백사장이 어우러진 이곳의 경치에 감탄해 자신의 호인 ‘해운’에서 따서 이름 지었다. 조선팔경 중 하나로도 꼽히기도 한다.

    051-749-7601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달맞이길 62번길 47
  • 뮤지엄 다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미디어 전문 미술관. 부산, 경남 지역 문화 예술 전파의 초석이 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051-731-3302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센텀서로 20
  • 선창횟집

    부산의 다양하고 신선한 활어를 맛볼 수 있는 회 전문점. 해운대 바닷가 멋진 전망을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다. 넓은 공간의 홀과 내실이 층별로 나누어져 있어 모임 장소로도 인기다.

    051-747-7470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달맞이길 62번길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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