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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화가’ 모네를
만나러 가는 길
프랑스

FRANCE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야 하는 예술가의 삶은 고단하다. ‘수련의 화가’라 불리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년)의 삶도 그러했다. 순탄치 못한 결혼, 극심한 가난, 아내의 죽음 등은 젊은 시절의 모네를 몹시 힘들게 했다. 하지만 모네는 자신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림을 향해 강한 열정을 불태웠다. 훗날 모네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에 약 43년간 머물며 수련 연작을 비롯한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가 작품 활동을 했던 정원과 연못은 지금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은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 글_사진. 송일봉(여행작가)
*송일봉 작가는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해외여행전문지 ‘코리안 트레블러’ 편집부장과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 편집장을 지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길 위의 인문학’ 기획위원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국립공원 대표경관 100경’ 선정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문화답사 프로그램 ‘송일봉의 감성여행’을 24년째 진행하고 있으며, 매주 KBS, MBC, 교통방송 등에 출연하고 있다.

  • 01 지베르니의 한적한 주택가
  • 02 ‘지베르니 인상파 미술관’ 옆의 작은 양귀비 꽃밭
  • 03 모네의 작품인 ‘아르장퇴유 근처의 양귀비’
  • 04 기념품 판매장 한쪽에 있는 모네의 흑백사진
한적하고 아름다운 마을, 지베르니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0km쯤 떨어져 있는 한적한 마을(사진 1)이다. 모네는 여행을 하다가 ‘베르농 지베르니역’ 근처에 있는 이 마을의 풍광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1883년부터 1926년까지 43년 동안 지베르니에 머물며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모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수련 연작의 대부분도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모네가 지베르니에 정착하자 그의 화풍을 따르던 미국 화가들도 앞다퉈 지베르니로 모여들었다. 1887년부터 약 30년 동안 100여 명의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이 지베르니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모네의 집 근처에는 ‘지베르니 인상파 미술관’이 있다. 2009년 이전에는 ‘아메리칸 지베르니 미술관’으로 불렸던 곳이다.
미술관 주변에는 자그마한 양귀비 꽃밭(사진 2)도 조성되어 있다. 양귀비는 모네의 작품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꽃이다. 모네가 1873년에 그린 ‘아르장퇴유 근처의 양귀비(Poppies, Near Argenteuil)’(사진 3)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은 모네의 첫 번째 아내인 까미유(Camille Monet)다. 그 옆에 있는 어린아이는 모네의 아들인 장(Jean)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까미유는 1878년 둘째 아들 미셸(Michel)을 낳은 후 이듬해인 1879년에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딘 아내를 먼저 보낸 모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선 지인에게 부탁해 전당포에 맡긴 아내의 목걸이를 되찾아왔다. 그리고 목걸이를 숨을 멈춘 아내의 목에 걸어주었다. 모네는 아내의 임종 모습도 그림에 담았다.
그림을 완성한 후에는 오른쪽 하단에 친필로 사인을 하고, 그 끝에 하트를 그렸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하트가 아닐까 싶다. 현재 이 그림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05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꽃의 정원’ 06 07 (왼쪽)‘꽃의 정원’에서 정담을 나누는 방문객들 (오른쪽)‘꽃의 정원’을 찾은 단체 방문객들
각양각색의 꽃들이 조화를 이루는 ‘꽃의 정원’

모네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94년. 많은 사람들은 ‘모네의 집’ 곳곳에서 그의 흔적과 숨결을 느낀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은 크게 주거공간 및 전시공간, 꽃의 정원, 물의 정원(수련 연못), 기념품 판매장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매표소와 연결된 기념품 판매장을 가장 먼저 지나게 된다. 판매장 한쪽 구석에는 밀짚모자를 쓴 모네의 흑백사진(사진 4)이 하나 놓여 있다. 인자하고 편안해 보이는 모네의 상반신이 찍힌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 허름한 밀짚모자를 쓴 그의 사진에서 방문객들은 ‘인상주의의 거장’ 모네가 아닌 평범한 시골 농부 모네의 모습을 떠올린다.
기념품 판매장의 문을 나서면 눈앞에 멋진 꽃밭이 펼쳐진다. 바로 이곳이 ‘꽃의 정원’(사진 5)이다.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꽃의 색깔과 크기, 높이, 간격 등이 공식에 의해 잘 정돈된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영국의 코티지 가든 여러 개를 옮겨 놓은듯하다. 화가이자 훌륭한 정원사였던 모네는 이 정원을 가꾸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날에는 직접 전지가위를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꽃의 정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종류의 유실수들이 아네모네, 수선화, 튤립, 장미, 히아신스를 비롯한 많은 꽃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유실수들은 좋은 그늘막 역할도 한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사진 6)가 놓여 있다. 15명 내외의 단체 방문객들을 위한 휴식공간(사진 7)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꽃의 정원’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좋은 곳은 주거공간과 전시공간이 있는 2층 벽돌집(사진 8)이다. 이곳은 일반적으로 ‘모네의 집’이라 불리기도 한다. 실내에서의 사진 촬영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나 2층의 창문 한 개는 늘 개방되어 있다. 이 창문을 통해 ‘꽃의 정원’을 내려다보거나 사진을 찍으라는 일종의 배려다.
2층 벽돌집에는 모네가 그림을 그리던 아틀리에와 함께 침실, 일본그림 전시장 등이 있다. 우리나라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다소 의아해하는 공간은 2층에 있는 일본 그림 전시장이다. 이 그림들은 대략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본에서 유행하던 유키요에(목판화) 작품들이다. 모네는 이 그림들을 수집해서 직접 전시할 공간까지 만들 정도로 유키요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유키요에는 훗날 모네를 비롯한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08 주거공간과 전시공간이 있는 2층 벽돌집 09 10 (왼쪽)‘모네의 집’의 상징적인 공간인 ‘물의 정원’ (오른쪽)연못가에 조성되어 있는 호젓한 산책로
  • 09 이제 막 등나무 꽃이 피기 시작하는 일본식 다리
  • 10 일본식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
모네의 분신과도 같은 공간, 수련 연못

‘수련 연못’이라 불리는 ‘물의 정원’(사진 9)은 지하 보도를 통해 ‘꽃의 정원’과 연결되어 있다. 수련 연못에는 모네의 그림에서 낯이 익은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울창한 숲 한가운데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물 위에는 수련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연못 주위에는 호젓한 산책로(사진 10)가 이어져 있다. 연못 중간쯤에는 수양버드나 무들을 배경으로 아치형의 일본식 다리(사진 11)가 놓여 있다.
모네는 이 다리에도 꽃이 피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낸 방법이 다리 양쪽에 등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고, 지금도 해마다 여름이 되면 다리 위에서는 보라색 등나무꽃이 만발한다. 일본식 다리 근처에는 사진을 찍기에 좋은 포토 포인트(사진 12)가 있다. 등나무꽃이 만개할 무렵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 다리는 모네의 작품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일본식 다리와 수련이 함께 그려진 작품(사진 13)을 감상할 수 있다.
모네는 수련 연못을 가꾸는 일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연못의 물을 채우기 위해 인근의 엡트 강 물줄기를 끌어들이고 습지에 어울리는 많은 나무와 꽃을 심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연못가에 앉아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수련과 주위의 사물들을 화폭에 담았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이른바 ‘수련 연작’이라 불리는 그의 대표작들이다.

13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네의 작품
프랑스 지베르니 위치 영국해협 벨기에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파리 지베르니 루앙 리옹 툴루즈 보르도 아를 마르세이유 안시 모나코 몽셀미셀 베르농 르아브르 대서양 스페인 지중해

*찾아가는 길 : 파리의 생 라자르역에서 출발하는 루앙(Rouen) 또는 르 아브르(Le Havre)행 기차를 타고 가다 베르농 지베르니(Vernon Giverny)역에서 내린다. 약 50분 소요. 베르농 지베르니역에서 ‘모네의 집’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약 15분 소요. 셔틀버스의 경우 운행 편수가 많지 않으므로 베르농을 거쳐 파리로 돌아오는 시간표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tip 모네와 인상주의의 태동
인상주의 화풍의 효시로 간주되고 있는 작품인 ‘인상, 해돋이’
1874년의 어느 날. 프랑스 파리에서 클로드 모네를 비롯한 30여 명의 무명예술가가 참여한 전람회가 열렸다. 하지만 이 전람회에 참석한 평론가와 기자, 미술 애호가들은 크게 실망했다. 그동안 그들이 익숙하게 접해왔던 것과는 다른, 전혀 딴판의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다수의 미술 애호가들은 뚜렷하게 묘사된 풍경화와 인물화에 매료되어 있었다.
미술 평론가이자 기자인 루이 르루와는 ‘인상주의자들의 전람회’라는 기사를 통해 “벽지의 그림도 이보다는 낫겠다”, “예술의 본질은 찾아볼 수 없고 표면적인 인상만 남아있다”라고 혹평했다. 그리고는 이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인상주의 화가’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인상파’ 또는 ‘인상주의’라는 명칭은 바로 이 기사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인상파’ 또는 ‘인상주의’라 불리는 화풍은 미술사의 중요한 영역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림의 대상을 뚜렷하게 묘사하지 않는 인상파 화풍에 많은 사람이 낯설어했다. 인상주의 화풍의 가장 큰 특징은 움직이는 풍경, 다시 말해 빛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사물을 찍는 것처럼 정지된 풍경을 담는 것이 아니라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실체를 화폭에 옮기는 기법이다.
당시 미술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혹평을 받았던 작품 가운데 하나인 ‘인상, 해돋이’(사진 14)는 모네가 1872년에 그린 작품이다. 인상주의 화풍의 효시로 간주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일출의 아름다움보다는 일출이 주는 순간적인 인상을 잘 표현한 수작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현재 이 작품은 파리의 고급주택가에 위치한 마르모탕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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