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으로 한 달 살기 여행을 다녀왔다. 속도와 효율성의 여행 관점에서 보면 한 달 동안 유럽 여행을 떠나도 좋고, 미국 횡단을 해도 되는 시간이다. 하지만 한 달간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 같은 사이판에서 지냈다. 특별한 건축물이나 예술품, 멋진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이판은 알 수 없는 끌림처럼 마음속의 고향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태국,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 여행을 다녀보아도 사이판처럼 깨끗한 바다는 없었던 것 같다. 아침 일찍 해변의 모래까지 쓸면서 청소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했던 여행에서 스킨스쿠버 자격증 따기, 현지학교 체험, 요가수업과 농장 체험 등은 유익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사이판은 유럽의 탐험가 마젤란이 1521년 발견한 섬으로, 17세기부터는 스페인의 식민지가 됐다. 19세기에는 독일이 점령했고,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일본이 지배했다. 당시 일본은 사이판을 사탕수수재배 농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오키나와의 원주민을 이주시켰다. 그 후 사이판을 군사요충지로 개발하여 태평양 전쟁의 중심지가 되었고, 일본과 미국의 전쟁이 극에 달하여 종국엔 사이판 옆의 섬 티니안에서부터 일본 나가사키로 핵폭탄이 투하되고 전쟁이 종결되었다. 한국 여행객에게 사이판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곳이다. 전쟁의 아픔을 마주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는 한국인 위령탑과 자살절벽이 있다. 강제징용으로 한국인들이 사이판에 끌려왔고, 희생당한 한국인을 추모하는 곳이 한국인 위령탑이다. 풍광은 숨 막히도록 아름답지만,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항공권 예약이 우선이다.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짧은 비행거리에다가 한국과 비슷한 물가이다. 렌터카를 이용해 섬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고, 초·중학생 정도의 자녀가 있다면 3개월(90일)까지 현지학교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숙소인데, 사이판은 규모가 작은 섬이기 때문에 미리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두면 편하다. 한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도 많고,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거나 SNS에서 사이판 숙박 등을 찾아봐도 좋다.
숙박 비용은 월 1,000~2,000불 정도가 적당한 선이다. 그러나 호텔에서 한 달 살기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특히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 단위 한 달 살기의 경우는 세탁기와 주방조리시설 등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현지 마트에서 식자재를 구해서 밥을 해 먹을 경우에는 경비도 절감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두어 군데의 호텔을 체험해보는 것도 대안이다. 사이판은 작은 섬이라 대중교통이 없으며 렌터카를 이용해야 한다. 제주도와 금액이 비슷하고, 운전하기는 더욱 편하다. 신호등이 거의 없고, 양쪽에서 차가 오지 않을 때 유턴과 좌·우회전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한국보다 운전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이판에서 매일 물놀이를 즐겼던 아이들 때문에 빨래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햇빛이 쨍쨍하고 바람도 살랑 부는 사이판의 기후는 빨래 말리기에 최적이다. 사이판의 아침저녁은 에어컨이 필요 없다. 낮에도 통풍 잘 되는 곳의 창문을 열어 놓으면 쾌적하기까지 하다. 햇빛은 눈이 부시도록 따갑지만, 바람은 시원하다. 그래서 사이판에서의 한 달은 매일 매일이 빨래하기 좋은 날이었다. 빨래방을 이용하거나 게스트하우스의 세탁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미리 가루 세제와 고무줄로 된 빨랫줄을 가지고 가서 유용하게 썼다.
사이판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바로 매일 다른 바다를 찾아가서 즐겼던 것이다. 마이크로비치, 파우파우비치, 윙비치, 마린비치, 탱크비치, 라우라우비치, 오비얀비치, 래더비치, 슈가덕비치 등 서로 가까이 있지만 느낌은 제각각 다른 바다들을 탐험하듯이 즐겼다. 바다마다 특색 있는 호텔 수영장이나 리조트의 워터파크도 한 번씩 이용했다.
또한, 현지 학교에서 단기 스쿨링을 통해 영어 공부 및 학교 체험을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사이판은 미국령이기 때문에 미국 학교 시스템을 체험할 수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고, 유흥가가 없으며, 치안이 좋아 사건·사고가 거의 없어서 엄마와 아이 단 둘의 한 달 살기도 어렵지 않다. 현지 학교 체험은 직접 학교에 찾아가 등록하거나 미리 인터넷으로 정보를 구해 이메일로 문의하여 예약할 수 있다. 아이가 다녔던 SDA(Sipan Seventh School)의 경우 3주(15일간) 수업료가 500불 정도였다. 스킨 스쿠버의 경우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스킨스쿠버 PADI 어드밴스드코스 자격증’을 3일 만에 취득할 수 있다. 한화 35만원이면 배울 수 있는 스킨스쿠버는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체험이었다. 또한 바다거북을 만나고, 니모와 같은 물고기, 수만 마리의 은빛 물고기와 헤엄친 일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아이들이 자연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금상첨화다.
사이판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근처에 있는 ‘티니안 섬(서태평양 북마리아나제도의 일부인 섬으로 사이판섬에서 남쪽으로 5㎞, 괌섬에서 북쪽으로 160㎞ 떨어진 곳에 있다)’을 가보는 것도 한 달 살기의 색다른 일이 될 것이다. ‘뽀로로’ 만화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4명 탑승) 10분이면 도착하는 작은 섬 티니안. 사이판도 아름답지만 티니안의 자연은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숨이 막힌다. 전체 주민이 3,000명밖에 되지 않고, 여행사를 하는 한국인 한 가족이 살고 있다. 스페인과 일본, 독일 등에 식민 지배를 거친 시절과 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티니안의 시그니처 장소인 ‘타가비치’는 사이판보다도 하얀빛이 맴도는 옥색을 자랑하고, 모래알 하나하나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깨끗함이 놀랍다. 여유가 된다면 티니안에서 1박을 하며 사이판보다 고즈넉한 밤하늘과 해변을 감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