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25] 그 쌤의 이중생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그 틈으로 파고드는
용기다

창원 양곡중학교 이선경 교사

동경(憧憬). 간절히 그리며 오롯이 생각하는 마음. 이선경 교사에게 ‘연극’이란 이 두 글자로 정의된다. 연극은 이선경 교사에게 곁에 두어도 애가 닳는 대상이기에, 그는 항상 타는 목마름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창원 양곡중학교 국어 교사 이선경과 극단 「예도」 소속 극작가 이선경의 다양한 활동이 계속되는 이유다.
  • 글. 이성미
  • 사진. 김도형

Teacher & Dramatist
그리워하는 삶에서, 쓰고야 마는 삶으로

연극과의 가슴 떨리는 첫 만남은 고등학생 때 이뤄졌다. 교내 연극 동아리의 공연을 보고 ‘나도 무대에 서고 싶다’라는 강한 바람이 일었다. 그러나 당시 IMF 금융위기 사태 직후 입시를 준비하던 수험생에게 연극은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하는 존재였다. ‘대학에 가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학업에 매진했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자신과의 약속대로 ‘극예술연구회’라는 동아리에 들어갔다. 진주에 있는 극단 「현장」에서 객원 배우로도 잠시 활동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 배우들과 한 무대에 서며, ‘작품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연기했다. 대학 졸업 후 거제로 첫 발령을 받고 극단 「예도」에 입단했지만, 교사와 배우를 병행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연기 연습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갔던 것. 무엇보다 연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는 현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교사로 살면서 연극을 계속할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의 끝이 ‘희곡’이란 글자에 닿았다. 글을 쓰는 일은 교직 생활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희곡을 쓰게 되었는데 참 재미있었어요. 2012년 이삼우 연출가의 소설 「선녀씨 이야기」를 각색하게 되었죠. 그 작품으로 대통령상도 받게 됐고요. 너무 겁먹지 말고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이후 그는 극작가로서 날개를 활짝 펴고 무대 위를 날았다. 「사랑은 룸바를 타고」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쩌다보니」 「나르는 원더우먼」 「꽃을 피게 하는 것은」 「아이 라이크 유」 「크라켄을 만난다면」 등 매년 거르지 않고 작품을 써냈다. 제37회 경상남도연극제 희곡상,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 희곡상 등 굵직한 대회에서 수상의 기쁨을 안기도 했다. 평소 존경해왔던 극작가, 평론가의 호평이 ‘극작가로 살아가도 된다’라는 허락처럼 느껴졌다고. 오늘날 이선경 교사는 경남 연극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작가로 완전히 전향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요?
교사로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삶이 너무나 재미있고 행복해요.
또 하나는 교사로서의 시간도,
엄마로서의 시간도 모두 극작가로서 제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학교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꽃을 피게 하는 것은」이라는 작품이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교사, 엄마, 모두 연극의 주인공이 되다

그는 교사로서, 엄마로서, 현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경험을 작품에 기민하게 녹여낸다. 세상은 언제든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내 이야기, 내 이웃의 이야기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최근작인 「크라켄을 만난다면」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던 대사는 딸과 나누었던 실제 대화에서 따왔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딸의 죽음을 예감한다. 그리고 함께 떠난 마지막 여행에서 딸에게 묻는다. “만약 내일 말야, 대왕 거대 문어가 우릴 삼킨다면 오늘 뭘 할까?”
그러자 딸은 이렇게 답한다.
“음… 나는 하루 동안… 엄마·아빠가 그동안 나한테 해준 거 다 갚아줄 거야. 엄마·아빠가 나 키우느라 못 해본 거, 그거 다 해줄 거야. 엄마는 내가 갓난아기 때 너무 울보라서 밤에 네 번이나 깨고 겨우 출근했다며, 그러니까 푹 쉬게 해줄 거야.”
지난해 경남연극제와 대한민국연극제에서 희곡상을 받은 「꽃을 피게 하는 것은」 작품도 교사가 학교에서 겪는 고충을 극적으로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관객들은 연극을 지켜보며 가슴 찌르르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증언한다. 학교에서 이선경 교사가 얻은 교훈과 감동 역시 작품을 통해 되살아나고, 다시 관객에게 옮아간 것이다. 그에게 ‘교사’ 라는 직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가로 완전히 전향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요? 교사로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삶이 너무나 재미있고 행복해요. 또 하나는 교사로서의 시간도, 엄마로서의 시간도 모두 극작가로서 제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학교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꽃을 피게 하는 것은」이라는 작품이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극작가로서의 삶은 학교에서도 좋은 영향을 준다. 지난해에는 학생들과 함께 쓰고 고친 작품으로 작품집 「낭독의 기쁨」을 펴내기도 했다. 글을 지도했던 학생이 성인이 되어 극작가가 되기도 했다. 희곡 수업 시간에는 배우이자 극작가로서의 경험을 녹여내 작품 내용을 설명하기도 한다.

나는 연극을 사랑하고, 연극은 나를 사랑한다

이선경 교사는 일련의 사건들을 종합해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고, 그 안에 인물의 삶을 녹여내는 능력과 한 인물에 이입해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연극 「나르는 원더우먼」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철저한 자료 조사와 인물 구성을 통해 마치 그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낸 것처럼 글을 써냈다.
그리고 철저한 조사와 관찰을 거쳐 완성된 이선경 교사의 작품은 재미있다. 분명 심각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미간을 찌푸리며 분석하려 들지 않아도 편안하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전문가들 역시 그의 작품들에 대해 “삶에 대한 작가의 예민한 관찰력과 특유의 유머가 돋보인다”고 평가한다.
무대 위 인물들의 삶은 절대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작가는 그 간극을 유머로 메운다. 한 예로, 연극 「선녀씨 이야기」에서 주인공 어머니인 선녀는 죽으려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와 대화하며 어머니의 과거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이 왜 다시 나오냐고 묻자 “겨울이었다. 너그 낳고 몸조리를 못해서 뼈가 너무 쑤셔서”라고 말한다. 관객들은 작품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짓다가도 예상 밖의 상황에 웃음을 빵 터뜨린다.
그는 작품에 특유의 유머를 가미하는 것에 대해 “재미없는 작품을 내놓는 것은 관객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한 작품이 완성된 후에도 관객 속에 섞여 함께 극을 바라보며, 그들의 반응에 따라 펜을 고쳐 쥐기도 한다. 어쩌면 이선경 교사에게 재미란 작품과 관객에 대한 예의 이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동경의 다른 표현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경의 마음은 계속 작품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아도 다시 펜을 드는 이유는 연극에 대한 경외심이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관객의 호응과 웃음도 저를 다시 일어서게 하고요. 그 불씨가 모두 사라지지 않는 한 저는 계속 희곡을 쓸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젠가 ‘연극’이라고 하면 저절로 연상될법한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극작가로서의 목표입니다.”
학생 그리고 관객과 항상 공감하며 함께하는 사람으로 머무 르고 싶다고 말하는 이선경 교사. 그가 극작가로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현실에 굴하지 않고, 그 틈으로 뛰어든 용기 때문일 것이다. 이선경 교사가 피워낸 그의 인생을 지켜보며 학생과 관객들은 환호하고, 또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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