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25] 그 쌤의 이중생활

아이들의 마음 담아
꿈을 채색하다

서울성산초등학교 김해선 교사

색연필로 그린 학생들의 모습이 정겹다. 등굣길에 꽃을 보다 지각한 학생도, 급식에 든 콩이 싫은 학생도 김해선 교사의 따스한 시선과 만나면 한 장의 그림이 된다. 그저 그림이 좋아서 꾸준히 그렸을 뿐인데, 진짜 삽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김해선 교사를 만났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Teacher & &Illustator
그림과 함께하는 가슴 뛰는 삶

김해선 교사에게 그림은 일생의 꿈이자, 매일 살게 하는 힘이다. 학기 중에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퇴근 후면 틈날 때마다 색연필을 꺼내 들고 그림을 그린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과의 일상은 그 자체로 빛나는 소재다. 어른과 다른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학생의 시선을 담은 그의 그림은 많은 사람에게 따스한 기운을 전하고 있다.
창작자들이 작품을 올리는 온라인 플랫폼인 그라폴리오(Grafolio)에서 ‘해sun’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인 김해선 교사의 계정을 팔로우하는 사람만도 약 3,000명. 혼자서만 그리던 그림을 처음 온라인에 올렸을 때, 누군가 자신의 그림을 봐준다는 생각에 설레었던 기분이 새삼 떠오른다.
“그라폴리오가 처음 생겼을 때는 지금에 비해 그라폴리오에서 활동하는 프로 작가들이 많지 않았어요. 저처럼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요. 어느 날,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메인에 제 그림이 걸린 걸 봤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어요. 마치 꿈을 이룬 기분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무척 좋아해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김해선 교사. 그에게 그림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하는 재미있는 놀이였다. 그림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그랬듯 한때는 미대 진학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미대 입시를 준비하며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혀, 많은 고민 끝에 조심스레 그 꿈을 내려놓았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당시에는 교사가 되면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교대에 진학해 세부 전공으로 미술교육을 선택했고, 그림을 그리며 좋은 교사로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2010년 9월에 첫 발령을 받고 교사가 된 지 올해로 10년째. 막상 교사가 되고 보니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학생들과 체력과 감정을 나누는 교사 업무 특성상 퇴근 후 책상 앞에 진득하게 앉아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물감 대신 준비가 간소한 색연필을 택해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색연필의 따스한 질감은 학생들의 모습을 담아내기도 좋았다.
“처음에는 저 자신을 무언가에 빗대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 저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학생들의 말과 표정이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그 귀엽고 재미있는 느낌을 그려보고 싶었죠. 제가 제일 많이 만나고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우리 반 학생들이니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습니다.”
퇴근 후 낮에 학생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그림으로 그리다 보면 그때는 스쳐 갔던 학생들의 감정이 새삼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한 번은 한 학생이 밥을 먹다가 바닥에 콩을 다 떨어뜨려 놓았다. 학교에서는 교사로서 학생들을 지도하지만, 집에 돌아와 그림을 그리면서 학생들의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라폴리오에 올린 149점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꽃보다 지각생’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그림이다. 평소 말수가 적은 한 학생이 어느 날 조금 늦게 교실에 들어왔다. 그날 일기 속에는 학생이 학교에 늦은 이유가 적혀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김해선 교사는 단 세 문장으로 된 그 일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학교 가는 길에 나무에 핀 꽃을 봤다. 너무 예뻐서 한참 보다가 지각을 했다. 봄에는 꽃이 핀다.’
학생이 꽃을 보는 모습이 떠올라 사랑스러운 마음을 가득 담아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림의 주인공이 된 학생들은 선생님이 자신을 그렸다는 생각만으로도 즐거워한다. 지난해에는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 크게 출력해 게시판에 걸었는데, 학생들이 이 그림을 무척 좋아해 엽서로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예쁘지 않은 학생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는 시의 한 구절을 급훈으로 썼어요. 올해는 급훈을 바꾸었지만, 지금도 그 글귀를 떠올리면서 학생들을 존중하려고 해요. 학생들의 장점을 발견하면 칭찬을 많이 해주려고 하고요. 저 역시 어릴 때 칭찬을 받아서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교사 일러스트레이터, 진짜 삽화를 그리다

지난해에는 실제 시중에 출간되는 책의 삽화 의뢰를 받았다. 아마추어를 넘어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국어 교사인 복효근 선생님께서 쓰신 「선생님 마음사전」의 삽화 의뢰가 들어왔을 때는 조금 자신이 없었어요. 이 책은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교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다시 정의하고 있는데요. 환희나 기쁨, 보람 등의 긍정적인 단어도 있지만, 환멸이나 모멸감 같은 어두운 감정을 담은 단어도 함께 있어요. 밝은 학생들만 그리던 저에게는 어려운 숙제였죠. 편집자분이 저에게 이 작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격려해주셔서 용기를 내서 도전했습니다. 삽화 작업을 하면서 저보다 경력이 풍부한 선배 교사분도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기도 했어요.”
나태주 시인이 학생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우리 시를 엮은 「저 여리고 부드러운 것이」의 삽화도 맡았다. 거장들의 시가 실린 출판물에 삽화를 그리는 일이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매일 퇴근 후 그림을 그리면서 남다른 보람을 느꼈다.
올해는 그동안 그라폴리오에 「참 잘하지 않아도」라는 제목으로 몇 년간 연재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낼 예정이다. 당시 어른의 시점으로 쓴 글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새롭게 고쳐 쓰는 중이다. 김해선 교사는 이 책을 통해 입학을 앞둔 예비 1학년 친구들과 학부모들이 걱정을 덜고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새롭게 쓰고 그린 그림책을 출간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김해선 교사는 하루하루 더 좋은 선생님으로, 더 좋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성장해 나가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는
시의 한 구절을 급훈으로 썼어요.
올해는 급훈을 바꾸었지만, 지금도 그 글귀를 떠올리면서
학생들을 존중하려고 해요. 학생들의 장점을 발견하면
칭찬을 많이 해주려고 하고요.
저 역시 어릴 때 칭찬을 받아서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 쌤의 이중생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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