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이렇게 바꿔요

이렇게 바꿔요

| 맛국물 다지기 샤부샤부 맑은탕 | 우리가 먹는 음식과 관련해서도 일본어를 비롯한 외래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거나 알게 모르게 많이 쓰는 일본어식 표현을 살펴보고, 이러한 말들을 대체할 적당한 우리말이 있는 지 살펴보자. 이번 1월호에서 다룰 주제는 ‘먹거리’와 관련된 말들이다. 국숫집이나 설렁탕집, 횟집이나 일식집에서도 심심찮게 쓰고, 집에서도 무심코 쓰는 일본어식 표현을 새해에는 우리말로 바꿔 쓰는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 소중한 회원 의견을 기반으로 기획된 「이렇게 바꿔요」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일본어식 표현 등 외래어를 올바른 우리말로 바로잡고자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 글. 이승훈(동아일보 어문연구팀 차장)

다시물 말고 ‘맛국물’을 내자!

칼국수와 설렁탕, 잔치국수의 맛은 국물이 결정한다. 흔히들 멸치와 다시마, 무, 조개 따위를 넣고 푹 우려내어 맛을 낸 국물을 ‘다시’, ‘다시물’, ‘다시국물’이라고 하는데, ‘다시(dashi)’는 일본에서 온 말이다. ‘다시’와 같은 뜻을 가진 우리말은 없을까? 맛과 국물이 만나 합성어가 된 ‘맛국물’이 있다. 설날 아침에 고명을 얹어 먹는 떡국도, 구수한 된장찌개도 이 맛국물로 끓여 내기에 깊은 맛이 난다.
덧붙이자면 횟집이나 일식집에 가면 회를 내놓기 전에 내놓는 안주를 스키다시(스끼다시, 찌깨다시)라고 하는데, ‘곁들이 안주’나 ‘밑반찬’으로 쓰면 충분하다.
또한 일본말 ‘사라(접시)’와 비슷해 억울한 오해를 사는 말도 있다. ‘사리’라는 말이 그러하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 어느 날 신문사로 독자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친구와 김치찌개를 먹다가 ‘사리’가 우리말이냐 일본말이냐를 놓고 내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자꾸만 사리는 일본말이라고 우기는데 아니라고 이야기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냉면 사리, 국수 사리, 고구마 사리, 쫄면 사리의 ‘사리’는 국수나 새끼, 실 따위의 뭉치를 세는 순우리말이다.

칼국수엔 ‘다지기’를 넣어 보자!

‘오늘 점심, 칼국수 어때?’ 하고 회사 동료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면이라면 사족을 못 쓰기에 얼른 ‘좋은 생각!’이라고 답글을 보냈다. 칼국숫집은 비교적 한산했다. 식당 한쪽에 앉은 한 남성이 “이모, 여기 다대기 좀 줘요”라고 했다. “이모, 양념장 좀 줘요”라거나 “이모, 칼국수에 넣을 다지기없나요”라고 했다면 “저 사람은 우리말을 참 반듯하게 쓰는구나”라고 여겼을 텐데, 아쉬움이 들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다대기’라는 말이 버젓이 올라 있다. ‘양념의 하나. 끓는 간장이나 소금물에 마늘, 생강 따위를 다져 넣고 고춧가루를 뿌려 끓인 다음, 기름을 쳐서 볶은 것으로, 얼큰한 맛을 내는 데 쓴다’라는 뜻풀이와 ‘순댓국에 다대기 좀 많이 넣어 주세요’, ‘설렁탕을 먹을 때는 입맛에 따라 다대기 양을 조절하면 된다’는 예문까지 실려 있다.
한편, 국립국어원은 일본어 ‘다대기’를 다듬은 말로 ‘다짐’과 ‘다진 양념’을 권장했는데, 누리꾼(네티즌)들은 우리말 ‘다지기’나 ‘양념장’을 쓰자고 제안했다. 마늘이나 쇠고기 따위를 칼로 다질 때 ‘다지다’라는 동사를 많이 쓰는데 ‘다지기’라는 명사는 적게 쓰고 있다. ‘고기, 채소 따위를 여러 번 칼질해 잘게 만드는 일이나 파, 고추, 마늘 따위를 함께 섞어 다진 양념’이란 뜻을 지닌 ‘다지기’는 ‘다대기’를 대신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말이다.

샤브샤브 말고 ‘샤부샤부’ 먹자!

‘다양한 육수와 신선한 샤브야채’, ‘1인 샤브샤브 전문점’, ‘소고기샤브샤브’, ‘버섯샤브샤브’…. 아주 얇게 썬 고기와 갖은 채소, 버섯, 해산물 따위를 끓는 육수에 넣어 살짝 익혀 양념장에 찍어 먹는 요리를 ‘샤브샤브’라고 하는데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쓰면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 shabushabu)’다. 이 샤부샤부를 대신할 우리말로 ‘토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토렴은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이란 뜻이니 샤부샤부와는 다르다.
우리가 새참이나 밤참으로 종종 먹는 라면에도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는 말이 있다. ‘건더기스프’와 ‘분말스프’의 ‘스프’가 그러하다. 스프가 아닌 수프가 올바른 표현이다. 애초에 ‘건더기수프(soup)’, ‘가루수프’, ‘분말수프’로 지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지리는 ‘맑은탕’으로!

횟집이나 복국집에 가면 차림표에 ‘복지리, 복지리탕’이라써 놓은 곳이 많다. ‘복지리탕’은 깨끗이 잘 손질한 복어와 함께 두부, 콩나물, 마늘, 미나리 따위를 넣고 팔팔 끓여낸 맑은 생선국으로 맛이 시원하고 깔끔해 쓰린 속을 풀거나 추위를 녹이는 데 그만이다. 복지리탕의 ‘지리(ちり)’는 민어지리탕, 생태지리탕, 대구지리탕, 우럭지리탕, 아구지리탕(표준어는 ‘아귀’) 등으로 두루 쓰이고 있다. 이 말은 흰살 생선을 잘라 두부, 채소 등과 함께 냄비에 넣고 끓여서 초간장에 찍어 먹는 일본 냄비요리 ‘지리나베(ちり鍋)’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국립국어원은 일본어 ‘지리’를 ‘맑은탕’이나 ‘맑은국’, ‘싱건탕’(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긴 하지만)으로 다듬어 놓았다. 복맑은탕, 민어맑은탕, 생태맑은탕, 대구맑은탕, 우럭맑은탕, 아귀맑은탕 등등. 앞으로 속풀이할때나 담백한 게 당길 때는 맑은탕을 찾아 드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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