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이렇게 바꿔요

이렇게 바꿔요

| 마침표 잔액 지급 거래처 |
새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하루빨리 코로나19 치료제가 나와 ‘비대면(언택트) 수업’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마침표를 찍었으면 좋겠다. 이번 호에서는 인터넷 뉴스를 비롯한 언론과 누리집(홈페이지)에서 자주 보이는 일본식 한자어를 골라 봤다. ‘종지부, 잔고, 지불, 거래선’ 같은 말들이 그러한데, 낯설고 어렵다. 우리말 ‘마침표, 잔액, 지급, 거래처’로 바꾸어 쓰면 쉽고 분명하지 않을까? 소중한 회원 의견을 기반으로 기획된 「이렇게 바꿔요」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일본어식 표현 등 외래어를 올바른 우리말로 바로잡고자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 글. 이승훈(동아일보 어문연구팀 차장)

‘종지부’ 대신 ‘마침표’를
‘내일이면 모든 군인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최인호 「지구인」 중에서

‘종지부(終止符)’란 말은 ‘문장 부호 규정에서 온점(.), 고리점(。), 물음표(?), 느낌표(!)를 아울러 이르던 말’이다. 2015년 1월 1일부터 이 조항이 삭제된 개정 문장 부호가 시행되고 있는데, ‘종지부를 찍다’라는 관용구는 아직도 많이 쓰고있다. ‘소용없는 분란에 먼저 종지부를 찍은 건 엄마였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처럼 ‘어떤 일이 끝장이 나거나 끝장을 내다’는 뜻으로 쓰인다. ‘공수처법 위헌 의견, 정족수 절반에 그쳐… 논란 종지부’「연합뉴스」처럼 인터넷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맞닥뜨리는 표현이다.
하지만 ‘종지부’와 ‘종지부를 찍다’는 일본식 한자어와 관용구다. 우리말 ‘마침표’와 ‘마침표를 찍다, 결말을 내다, 끝내다’로 바꾸어 쓰면 알아듣기 쉽다. ‘일의 끝을 단단히 단속해 마무리하는 일’을 뜻하는 순우리말로는 ‘매조지’와 ‘매조지다’가 있다.

‘잔고’는 없애고 ‘잔액’을 취하자
‘돈은 없다가도 생길 수 있으나 시간은 그저 줄어들 뿐 늘어나는 법이 없다는, 앞으로의 삶이란 더 이상의 추가 수입 없이 통장 잔고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최인아 칼럼 「길을 잃었거든 홀로 오래 걸어 보시라!」 중에서

통장 잔고, 잔고증명서, 공매도 잔고 등으로 많이 쓰고 있는 ‘잔고(殘高, ざんだか)’도 일본식 한자어다. ‘남은 돈, 나머지 금액, 잔액(殘額)’으로 쓰면 뜻이 분명하게 전해지고, 알기 쉽다. 우리는 접사 ‘고(高)–’를 고품질, 고혈압처럼 ‘높은, 훌륭한, 뛰어난’이라는 뜻으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양 또는 액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고(高)–’가 없진 않지만, 용례로 든 ‘생산고, 수출고, 판매고’가 모두 일본식 한자어다. 일본에선 양이나 액수의 뜻을 더하는 접사 ‘고–(高, 다카, だか)’를 붙여 ‘수확고, 어획고, 판매고, 수출고’ 등으로 쓴다. 이 말들은 ‘고(高)–’ 자리에 ‘–량’이나 ‘–액’을 넣어 ‘수확량, 어획량, 판매액, 수출량(액)’으로 바꾸어 쓰면 자연스럽다. 순수 일본어인 ‘매상, 매상고’는 ‘판매, 판매액’으로, ‘외환 보유고’의 ‘보유고’는 ‘보유량(액)’으로 쓰는 게 좋다.

‘지불’하지 말고 ‘지급’하자
‘올해 국채 이자로 지불해야 할 돈이 사상 처음으로 20조 원을 넘어서게 된다.’ ‘WHO 복귀한 미국 “이달 말까지 2억 달러 이상 분담금 지불”’

인터넷 뉴스의 기사문과 제목이다. 돈을 내어 주거나 값을 치를 때 ‘지불’이란 말을 쓰곤 하는데, 이는 일본어 ‘시하라이(しはらい)’를 한자음 그대로 읽은 말이다. ‘올해 국채 이자로 내야 할 돈이…’, ‘WHO 복귀한 미국 “이달 말까지 2억 달러 이상 분담금 지급”’처럼 서술형 ‘내다, 지급하다’나 명사형 ‘냄, 지급’으로 바꿔쓰면 좋겠다.
행정안전부는 2019년 공문서에 쓰이는 어려운 한자어와 일본어투 한자어 80개를 우리말이나 쉬운 말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공문서를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돕겠다는 취지에서다.
내용을 보면 불입(拂入→납입), 공여(供與→제공), 내역(內譯→내용, 명세), 잔여(殘餘→남은, 나머지) 등이 있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보다 쉽고 익숙한 말을 찾아 써 나간다면 우리말이 더 아름답게 빛나지 않을까.

‘거래선’이 아니라 ‘거래처’다
‘○○전자, 추가 거래선 확보 나섰다’,
‘○○물산, 국내 거래선 확대로 업계 경쟁력 강화 방안 논의’’

인터넷 뉴스 제목에 나오는 ‘거래선’은 우리 한자어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돈이나 물건 따위를 계속 거래하는 곳’으로 풀이해 놓고, ‘거래선을 개척하다, 거래선을 뚫다, 거래선을 트다’라는 예문도 실어 놨다. 사전을 보면 우리식 한자어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이 말도 일본식 한자어다. ‘거래’를 나타내는 일본어 ‘취인(取引, とりひき)’에다 ‘장사나 교섭 상대’를 나타내는 ‘선(先, さき)’을 붙인 게 ‘취인선(取引先)’인데, 이 말을 본떠 우리가 ‘거래(去來)’에다 접사 ‘선(先)’을 붙여 만들었다.
우리말에 없는 접사 ‘–선(先)’을 갖다 붙인 ‘구매선, 구입선, 도입선, 판매선, 수입선, 수출선’ 같은 말들도 일본식 한자어다. 우리말로 ‘살 곳, 사들일 곳, 끌어들일 곳, 팔 곳, 내다 팔 곳’이나 ‘구매처, 구입처, 도입처, 판매처, 수입처(수입국), 수출국’ 등으로 바꿔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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