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혁신 인터뷰

밤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언제나 환자 곁을 지킵니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 김민경 파트장 한밤의 대형병원 응급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전쟁터와 다름없다. 여기에 여전히 끝나지 않은, 언제 어디서 밀고 들어올지 알 수 없는 코로나19는 이 전쟁터에 심어진 뇌관과도 같다. 그 소용돌이 안에서 불철주야 한결같이 환자들을 지켜온 인물,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 김민경 파트장을 만나러 이른 아침 병원을 찾았다.
  • 글. 이경희
  • 사진. 김도형

#고마워요 의료인여러분
처음부터 끝까지 응급실에서

구급차가 숨 돌릴 틈 없이 드나든다. 종종걸음을 치는 의료진들 또한 바쁘게 오고 간다. 365일 잠들지 못하는 응급의료센터를 둘러싼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달라진 모습이 있다면 작년부터 창궐한 코로나19로 인해 방호복과 마스크, 페이스실드(얼굴 가림막)로 완전히 무장한 의료진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또한 1년 6개월이 넘어가니 평범한 일상처럼 무심히 스며든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의 김민경 파트장은 올해로 16년 차 간호사다. 간호대를 졸업하자마자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한 번도 근무처를 옮겨본 적이 없는, 말 그대로 응급의료센터의 베테랑 간호사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응급실에 실습을 나갔습니다. 필수 실습 과목은 아니었는데 응급실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원해서 갔어요. 그때 의식을 잃은 저혈당 환자가 왔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조치하자 환자가 5분 만에 눈을 딱 뜨곤 고맙다고 얘기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선생님도 멋있었고, 응급실도 매력 있는 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응급실은 기피 대상인 과였는데 저는 그때 응급실 간호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응급실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준 인물이 이국종 교수라는 데 특별히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김민경 파트장이 들려주는 응급실 간호사들의 얘기까지 더해진다면 응급실 이야기는 몇 달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만취한 보호자,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팔다리를 휘두 르는 환자들한테 정말 많이 맞았어요. 응급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가 힘든 곳이기도 하고요. 환자와 간호사들이 분리된 일반 병동과 달리 앞, 뒤, 옆에 모두 환자와 보호자가 있어 개인 공간이나 시간을 전혀 가질 수 없는 것 또한 굉장히 힘든 부분입니다.”

환자에게 받은 상처, 환자에게 치유 받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김민경 파트장은 응급실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힘든 마음은 다음 날이면 물 탄 듯 희미하게 희석되고, 반대로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거나 회복되는 좋은 결과는 오랫동안 자신을 행복하고 기쁘게 만들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듣는 고맙다는 인사는 일하면서 생채기 난 마음에 발라지는 빨간약이었다.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저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응급실은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온 환자에게 왜 진료를 빨리 해주지 않는지에 대한 민원이 가장 큰 곳인데 처음에 저는 그런 분들에게 저쪽에 더 급한 환자가 있다고 설명하고, 설득하려 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밤, 허우대가 번듯한 젊은 남자가 혼자서 쭈뼛거리며 응급실을 찾아왔다. 아무리 봐도 별로 아파 보이지 않는, 대체 여기에 왜 왔는지 궁금해지는 사람이었다. “이마를 보여주면서 여드름을 짜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본인이 배우 지망생인데 내일 중요한 오디션이 있다고요. 행여 집에서 짰다가 내일 카메라 테스트에 문제가 생길까 봐 너무 걱정돼서 왔다고 말해 굉장히 당황했지요. 훗날 돌이켜 보니 오죽 절박했으면 여드름을 짜러 응급실에 왔을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저는 응급실 환자를 설득하지 않고 있어요. 대신 얘기를 다 들어 드리고, 죄송하다며 최대한 빨리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리지요.”
이는 응급실 근무 5년여 만에 얻은 김민경 파트장의 깨달음이자 성장이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인내와 노력 덕분에
저희가 영웅, 천사라는 수식어를 받으며 인식
개선도 많이 이루어졌지만, 사실 이런 일들은
전국의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해오시던 일이에요. 이런 기회를 빌려 감히 제가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모두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응원합니다!”
헌신과 열정으로 코로나19와 맞선 시간들

간호사로 일해 온 긴 시간 안에서 코로나19는 김민경 파트장이 겪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사건이었다. 작년 1월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으로 뉴스에 막 나오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 전혀 짐작하지 못 했던 것.
“본격적으로 확산이 시작되기 전에 병원에서 감염 회의를 한 번 했습니다. 저도 응급의료센터 파트장으로 참석했는데 명절을 지내고 왔더니 말 그대로 응급실로 물밀듯 환자들이 밀려들기 시작했어요. 인천이 입국 관문이다 보니 기침하는 사람, 미열이 있는 사람들이 죄다 응급실로 보내진 거죠.”
나라에서도 아직 세부 대책이 나오기 전이라 의료진들 모두가 홍역이나 수두, 메르스, 신종플루를 경험 삼아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리고 그렇게 대응했던 경험들과 개인적인 공부가 합쳐지면서 김민경 파트장은 코로나19 관련 전문가가 되어갔다. 그러나 인천시에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가면서 그에게는 새로운 숙제가 주어졌다. 경증 생활치료센터를 맡아 준비하라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생활치료센터는 전국에 서너 개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라 의논하거나 물어볼 사람이 부족했고, 개소는 불과 열흘 뒤였다.
“병원은 사실 모든 기반이 다 갖춰져 있고 저만 열심히 하면 되는 시스템이잖아요. 하지만 당시 생활치료센터는 방과 복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라에서 매뉴얼을 주긴 했지만, 큼직한 가이드라인만 있었지, 세부 사항은 전부 제가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환자가 오면 어떤 동선으로 이동할지, 누가 맞이할지, 어떤 부분을 비대면·대면으로 할지, 방에 필요한 물품은 뭐가 있을지, 쓰레기는 어떻게 치워야 할지 모든 상황을 분 단위로 정리해가며 세부 지침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그의 노력과 경험은 이후 생활치료센터의 담당자들과 간호사, 관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인천시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김민경 파트장에게 인천시장상을 수여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삶은 언제나 봉사에 대한 열망과 희열을 지향했던 삶이었다. 중학교 시절 학교 봉사 활동으로 인천시장상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고, 지금도 바쁜 일정을 쪼개 교회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 선교를 하고 있다. 응급실 근무에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16년째 일하고 있는 것도 환자를 간호하고 책임지겠다는 헌신의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만연된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의 모든 의료진 선생님들께서 여전히 고생하고 계십니다. 방호복에 마스크, 페이스 실드, 장갑까지 낀 채 한여름에 일하다가 쓰러지시는 선생님들도 많고 한겨울에 얼어붙은 몸을 핫팩 몇 개로 녹이면서 거리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이런 간호사 선생님들의 인내와 노력 덕분에 저희가 영웅, 천사라는 수식어를 받으며 인식 개선도 많이 이루어졌지만, 사실 이런 일들은 전국의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해오시던 일이에요. 이런 기회를 빌려 감히 제가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모두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응원합니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응급실로 돌아가는 그. 김민경 파트장의 잰걸음에서 우리 시대 ‘참 간호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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