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Magazine
Monthly Magazine
April 2022 Vol.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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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누기

에세이

버스에서 나누는 제자들과의 소중한 情

이우진 회원(안성 양진중학교 교사)

버스정류장 이미지
지난해 이맘때쯤 나는 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로 배정되었다. 담임 배정이 된 날 사진과 이름을 비교해 가며 학생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려고 노력했다. 며칠이 지나고 상담을 하며 학생의 이름과 성격 등을 대략 파악해 가고 있었다.
사춘기 무렵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면 쑥스러워 대답도 잘 안 하고 슬쩍 피하곤 한다. 정말로 제대로 마음먹지 않으면 대화 자체가 힘들다.
버스로 출퇴근하는 나에게 이런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일이 생겼다. 어느 날 내가 탄 버스에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올라탔다. 상담할 때도 질문에 조용히 “네···”만 연발하던 아이였다. 그 후 출근길에 만나는 아이를 며칠간 그냥 지켜보고 있다가 어느 날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선생님도 이 버스 타는데 너도 이 버스 타나 보네?” “네···.” 우리 반 아이와 버스에서 나누는 대화 겸 인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버스 몇 분 간격이야?” “선생님이 다음 주에 주번 교사라서 학교에 빨리 가야 하거든.”
“네···, 20분 전에도 버스가 있어요.” “이 아파트 사나 보네. 선생님은 저 아파트 사는데 앞으로 자주 보겠다.” “네···.”
이런 식으로 담임교사와 학생의 의미 없는 대화가 며칠 동안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오늘 영어 시간에 단어 시험 보잖아요. 몇 문제 내실 거예요?” “응, 20문제 정도.” 그렇게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오니 조금은 친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그때부터 아이는 나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매일 버스에서 보는 학생과 말을 해야 하니 대화거리도 생각해 보게 되었고, 아이의 일상생활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사실 그 학생은 가정형편이 어렵지 않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 아마도 자존심 때문에 가정형편을 쉽게 말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버스에서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그 학생의 어려운 생활 환경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외부 장학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신청해 주었고, 남는 문제집 여러 권을 챙겨주기도 했다. 물론 다른 학생의 눈에 띄지 않도록 버스에서 내리면서 슬쩍 전해주었다.
학교에서 만나면 머뭇거리며 말도 잘 못 하는 아이가 버스에서는 대답 잘하는 아이로 변해가는 모습이 담임교사로서 참 고마웠다.
어느 날은 아이가 “선생님, 영어 문제집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영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학교 가는 하루하루가 즐거워요”라는 반가운 문자메시지를 보내와 너무나 기뻤다.
버스를 타면 다른 반 학생과 다른 학년 학생도 많이 만난다. 버스에서 만날 때마다 밝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학생들이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넘도록 버스로 출퇴근하면서 여러 학생과 가까워지며,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제자에 대한 사랑과 애착을 조금 더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우리 학교에서 버스로 출퇴근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하지만 나처럼 소중한 경험이 점점 세상에 퍼져나가 버스를 통해 아름다운 제자 사랑을 전하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 진정으로 아름답고 돈독한 정을 나누는 장면이 점점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보듬어주어서 더불어 살아가는 가슴 따뜻한 세상을 꿈꿔본다. 나는 오늘도 밝고 해맑게 웃으며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버스 안에서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케이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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