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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3 Vol.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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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누기

좋은 사람 좋은 생각

배움에는 적기가 있다고 한다. 물론이다. 배움에는 적기가 있고, 그 시기는 지금이다. 모든 인간의 평생 직업은 바로 학생이다. 우리는 평생, 다시 배워야 한다. 스탠퍼드대학교 교육대학원 폴 김 부학장 겸 최고기술경영자도 예외일 수 없다. 그는 언제나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학생이다.

이성미 / 사진 김수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꼴찌 학생에서 명문대 부학장으로, 국경 없는 교육을 펼치다

대한민국 하위 1% 학생에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육대 학원 부학장이 된 사람. 폴 김 부학장을 설명하는 말이다. 초·중·고등학교를 지나는 동안 그는 성적순으로 세워둔 줄의 맨 끝자리를 벗어난 적 없는 학생이었다.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네가 잘하는 것을 찾아봐”, “너는 할 수 있어”라는 응원과 격려가 아닌 체벌과 꾸짖음이었다.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여긴 폴 김 부학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TV 브라운관 속에서 만나던 나라, 미국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컴퓨터공학과 교육공학을 차례로 전공하고 미국 최대 온라인 대학교인 피닉스대학교 최고기술 경영자를 거쳐, 스탠퍼드대학교 교육대학원 부학장이자 최고기술경영자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21년째 그곳에서 교육혁신에 필요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2012년 개발한 온라인 수업 무크(Massive Open Online Courses, MOOC)는 전 세계 170여 개국, 2만 명이 참여하며 혁신 학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과거 한국의 교실안에서 교육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이던 그가 지금은 교육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 것이다.
폴 김 부학장의 시선은 항상 학교 밖 수많은 학생을 향한다. 그는 비영리 국제교육재단 ‘시즈 오브 임파워먼트(Seeds of Empowerment)’를 설립해 전 세계 봉사자와 함께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발한 열악한 교육 환경의 아이들에게 ‘질문’을 통한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는 학습 솔루션 ‘SMILE(Stanford Mobile Inquirybased Learning Environment)’은 2016년 유엔 미래 혁신 학습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멕시코를 시작으로 개발도 상국 아이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교육 봉사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골동품 비행기로 장거리 훈련 중인 모습 The-K 매거진 편집실과 12월 8일 인터뷰

경비행기 조종을 배우며 학생 입장에서 다시 얻은 깨달음

쉰 살의 나이에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유도 교육 때문이다. 오지로 교육 봉사를 다니려면 육로보다 하늘길이 수월했다. 그리고 2018년 훈련을 시작해 2021년 계기비행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그는 교육자로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훈련받는 동안 학생 신분으로 3명의 교관을 만나면서 학생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또 좋은 교육자는 학생에게 어떤 피드백을 주어야 하는지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경비행기 조종술을 배우며 3명의 교관을 거쳤는데, 흥미롭게도 모두 다른 교육 방식을 취하고 있었어요. 첫 번째 교관은 신참이지만 제게 늘 ‘잘한다’라며 긍정적 피드백을 줬어요. 칭찬은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제게 큰 힘이 되었죠. 두 번째 교관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자주 줬어요. ‘그 것밖에 못 하느냐’, ‘그래선 시험에서 떨어진다’ 하는 식이었죠.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 주눅이 들더라고요. 세 번째 만난 교관은 노련한 사람으로, 제게 정확한 피드백을 줬어요.
어떤 부분을 고치면 될지 짚어주고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죠. 정리하면, 첫 번째 교관과 세 번째 교관의 긍정적 피드백과 구성적 피드백은 제게 큰 도움이 된 반면, 부정적인 피드백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이미 깨닫고 있었지만, 학생이 되어보니 더욱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죠.”

탄자니아에서의 스마일 프로젝트
르완다에서의 모바일 교육 프로젝트

교육은 재능을 발굴하고 키워주는, ‘티칭’이 아닌 ‘코칭’

안타깝게도 폴 김 부학장이 학창 시절 자주 들은 것은 부정적 피드백이다. 발명을 잘하고 불합리를 발견할 만큼 영민했지만, 교실에서는 ‘공부 못하는 아이’일 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미국에서 그는 학생의 장점을 먼저 발견하고 끌어낼 줄 아는 좋은 코치들을 만났다. 그리고 덕분에 “교육은 ‘티칭(teaching)’이 아닌 ‘코칭(coaching)’”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티칭은 교사가 교육 주체자로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코칭은 학생이 주도적으로 잠재력과 능력을 끌어내고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폴 김 부학장은 학생들에게 “나는 무대 뒤 스태프(staff )일 뿐이다. 주인공은 너다”라고 말한다. 주인공인 학생은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교사, 부모가 무대의 주인공이 되면 아이는 질문도 도전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 또 이미 세워져 있는 하나의 기준에 자신을 맞춰가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우리는 4C, 즉 의사소통 능력(Communication), 협업 능력(Collaboration), 비판적 사고 능력(Critical thinking), 창의력(Creativity)을 꼽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비판적 사고가 아닌 단순 비판만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르다는 것 또한 인정하지 않는다. 폴 김 부학장이 생각하기에 대한민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다양성을 무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대한민국, 또 우리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학생의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워주고, 다양성을 존중할 줄 알게 해야 한다. 인종, 성별, 배경 등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넘어 ‘다양성이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희망까지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공공의 선(善)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그럼 교육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다양성을 존중하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발전적 생각을 끌어내고, 이를 통해 공공의 선을 지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사회가 원하는 참교육이고, 이런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학교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교사, 좋은 코치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기다림이 필요하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나’를 찾는 동안 묵묵히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먼저 강점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끌어낼 수 있도록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스탠퍼드대학교 교정에서의 폴 김 부학장 모습
베이징 인공지능학회에서 기조연설하는 모습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폴 김 부학장은 질문 없는 교실, 적성보다 성적이 중요한 한국의 교육 현실이 안타깝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는 법은 무엇일까? ‘좋은’ 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지면 된다.
“만약 제게 한국 교육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저는 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을 바꿀 것입니다. 성적을 얼마나 잘 받았는지, 취업률이 얼마나 높은지는 중요하지 않은것 같아요. 대신 초·중·고등학교는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고, 즐겁게 자기 역량을 찾고 개발하는 데 학교가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가?’를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는 ‘학생이 세계와 지역사회(glocal*)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는가?’를 판단하고 그 결실을 기초로 평가해야 하고요. 이처럼 기준이 바뀐다면, 학교는 그 기준에 맞춰 자연스럽게 변화할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교육생태계가 조성될 것 같고요.”
실제로 전 세계 많은 이가 폴 김 부학장의 생각을 지지하고, 행동을 함께하고 있다. 그의 생각을 두고 “너무 이상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폴 김 부학장은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분명 올 거라고 믿는다. 소신을 지키며 거듭 도전하면 그것이 곧 혁신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있다.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다시, 배우다 Re: learn」 등을 펴내 한국 독자들을 만나고, 여러 방송과 강연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어떤 모습으로 생을 마무리할 것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아도 자신의 길은 옳다.
“예전부터 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마치면 좋을지 생각하면, 그러기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얻을 수 있거든요. 만약 지금 내가 학생이라면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전공으로 삼을지 답을 구할 수 있을 테고요. 커다란 질문에서 작은 가지를 뻗어나가다 보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답을 구하는 일도 더 수월해질 것입니다.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저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구해왔습니다. 여러분도 자기 자신에게 먼저 물으세요. 그럼 인생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은 유연하게 넘어가되, 더욱 의미 있는 일을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또 한 가지 질문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다. 우리는 평생 학생이어야 한다. 교육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학생이 되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타인을 존중하게 되며, 교실과 사회와 세상을 바꿀 수 있게된다. 이것이 폴 김 부학장과 우리가 생애 마지막에라도 꼭 보고 싶은 교육의 모습이 아닐까? 케이 로고 이미지
* 글로컬 glocal: 국제(global)와 현지(local)의 합성어로 세계성과 지역성을 동시에 일컬음
인도네시아 시골에서의 교육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