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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3 Vol.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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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너머 꿈

'두둠칫' 흥겨운 움직임 속
커지는 행복 줄어드는 학교폭력

파평초등학교 이현길 교사
‘스스로 행복한 사람은 저절로 주위를 행복하게 한다.’ 막연히 품고 있던 그 생각을 이현길 교사는 이제 확실히 믿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오랜 취미이자 특기인 춤을 추면서 생기 없던 교실에 활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유튜브 채널 ‘현길쌤의 두둠칫’을 개설해 반 아이들과 댄스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지난해 가을. 교사의 행복이 교실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는 오늘도 말이 아닌 몸으로 증명해 보인다.

박미경 / 사진 이용기

수요일 오후의 ‘댄스 활력소’

뒷산의 새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지저귄다. 학교 밖이 그 자체로 ‘자연’인 파주 파평초등학교. 일주일 중 수업이 가장 일찍 끝나는 수요일 오후가 되면, 이 학교 6학년 1반 교실은 댄스 교습소로 변모한다. 아니 교습소가 아니라 ‘활력소’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부대끼며 함께 익혀가는 까닭이다. 동작이 틀리면 틀려서, 율동이 맞으면 맞아서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다. 쉴 새 없이 까르르 웃어대니 스트레스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우리 학교는 한 학년이 한 반만 있어요. 그래서 전 학년이 1반만 있습니다. 제가 맡은 6학년은 모두 열다섯 명이에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이라 서로 아주 애틋해요. 이루 말할 수 없이 순수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춤을 아이들이 함께 춰주는 거라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한 가지 믿을 수 없는 것은 이토록 쾌활한 아이들이 학기 초만 해도 매우 수줍고 조용했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그가 “좀 떠들어 달라”라고 부탁했을까. 그러던 아이들이 불과 석 달 만에 조잘대고 깔깔대며 학교생활을 한다. 그동안 함께 춰온 춤 덕분이다. 잘 못 춰도 아무 문제가 없다. 리듬에 몸을 맡긴 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같이 즐기는 것, 중요한 건 오직 그것뿐이다. 정식 연습은 수요일 방과 후에 있지만 아이들은 틈틈이 동작을 익히며 논다. 춤이 물처럼 삶에 흐른다.
“열다섯 명 가운데 두 명은 그 분위기를 좋아할 뿐 춤추는 걸 좋아하진 않아요. 그래서 다른 걸 부탁했어요. 한 친구는 촬영을, 또 한 친구는 DJ를 맡아요. 두 아이는 자신들의 역할을 참 좋아합니다.”

수백만 명의 마음을 훔친 ‘댄스 챌린지’

이현길 교사의 ‘춤 생활’은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유아기부터 댄스 가수들의 춤을 곧잘 따라 추던 그는 청소년기는 물론 교대 재학 중일 때도, 교사가 된 이후에도 언제나 춤과 함께였다. 하지만 춤을 교육과 연결할 확신은 없었다. 댄스를 교실로 끌어오려면 학교 관리자, 학부모, 동료 교사들의 지지가 두루 뒷받침되어야 했다. 꿈만 같았던 그 일이 이 학교에서 가능해졌다. 부천 상도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그는 2021년 3월 작은 학교에 대한 로망을 품고 파평초등학교로 지원해 왔다. 춤을 교육에 활용하고 싶다는 그의 포부를 ‘기다렸다는 듯’ 모두 환영해 줬다.
“한 학년에 학급이 하나뿐이라는 게 주효했어요. 한 학년 전체를 가르치니 누구도 소외되지 않잖아요. 환경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가 아이들과 함께 춘 춤을 동영상 플랫폼에 올리기 시작한 건 지난해 9월부터다. 6학년 아이들의 졸업 영상을 ‘의미 있게’ 담아주고 싶어서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에 공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10월에 업로드한 ‘6학년 담임이 힙합을 좋아하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의 짧은 동영상이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빗자루를 들고 교실을 청소하던 교사가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댄스 가수를 방불케 하는 춤 실력을 선보이는 것이 여간 신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회수가 무려 777만 회를 기록한 이 영상을 비롯해 ‘현길쌤의 두둠칫’에는 조회수 100만이 넘는 춤 영상이 꽤 많다. 보고 있으면 절로 입가에 절로 미소가 돌아 한 번만 보게 되지 않는 까닭이다.
‘6학년 담임이 힙합을 좋아하면 생기는 일’ (출처 - 현길쌤의 두둠칫유튜브)
“교사가 춤을 춘다는 것에 대해 너그럽지 않은 시선이 있을 줄 알았어요. 각오하고 시작했는데 칭찬 댓글을 과분하게 달아주셔서 아주 큰 힘이 돼요. 간혹 ‘악플’을 발견하면 그걸 수업에 활용해요. 그 댓글을 도덕 시간에 같이 읽으면서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의견이 있다고 말해주죠. 자기와 다른 생각을 수용할 줄 알되 자기만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라고요. ‘이분은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를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 보기도 해요. 살아 있는 교육자료예요.”

춤이 학교폭력 예방으로 이어지는 이유

동영상 플랫폼에 춤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뒤로 그는 아이들이 보여주는 변화를 실시간으로 목격해 왔다. ‘댄스 챌린지’는 순서대로 동작을 따라 하는 일이다. 새로운 안무에 도전하고 성공할 때마다 아이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각을 꾸준히 갖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내심과 성취감이 길러진다. 인내로 쌓은 성취들이 차곡차곡 쌓이니 자존감이 높아지고, 친구들과 ‘합’을 맞춰본 경험이 늘어나니 배려심이 커진다. 경쟁 대신 협동을 가르치는 일. 그것이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데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따뜻한 반응들도 아이들의 변화를 이끈 요인 중 하나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자신들의 동영상을 보고 응원과 지지를 보내온다는 것. 그 사실이 아이들의 정서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저도 달라졌어요. 아이들에게 제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괜찮아’더라고요. 서로 부대끼며 춤을 추다 보면 서로 발도 밟고 어깨를 부딪치기도 해요. 그때마다 괜찮다고 말해줘요. 동작이 맘대로 되지 않아 예민해진 아이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주고요. 교과로 가르칠 때보다 몸으로 가르칠 때, 긍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주고받는 것 같아요.”
그가 아이들과 춤을 같이 추면서 확신하게 된 것 중 하나는 ‘교사의 행복이 곧 학생의 행복’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니 그의 얼굴은 늘 햇살처럼 환하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선생님이 좋아하는 걸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하게 된다. 그게 출발점이다. 같이 즐기며 웃다 보면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게 된다. 별것 아닌 일에도 웃음이 난다. 선순환이 그렇게 가능해진다.

행복한 교사가 ‘좋은 교사’다

“다른 교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이들과 어떤 활동을 함께하려면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을 먼저 선택하시라고. 아이들에 맞춰서 활동을 선택하다보면 교사가 즐기면서 하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면 교사도 아이들도 활동의 효과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행복한 교사가 되는 것이 ‘좋은 교사’로 가는 길이라 믿어요.”
그에게는 춤을 함께 추는 교사 동료들이 있다. 팀 이름이 ‘BJS(부장소년단)’다. 교대 재학 시절 함께 댄스 동아리를 했고, 지금은 각 학교에서 ‘부장’을 맡고 있는 20년 지기들이다. 지난 5월 말 그는 BJS 멤버들과 아주 뜻깊은 행사에 참여했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별별캠프’(경기도교육청 주관)에서 학교폭력 피해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학생들을 위한 댄스 공연을 선보인 것이다. 취지가 좋아 뿌듯했고, 호흡이 잘 맞아 흐뭇했다.
“춤도 같이 추고 교사로서의 고민도 나눠요. 각종 정보도 공유하고요. 일과 놀이를 함께하면서 같이 나이 들어가는 벗들이 있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지난 스승의 날엔 경기도 교사 댄스 동아리 D.O.T와 함께 동료 교사들을 응원하는 댄스 동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교육부의 의뢰로 진행한 일인데 H.O.T.의 ‘빛’을 선곡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늘 함께 있어 소중한 걸 몰랐던 거죠.” 가사 첫 마디부터 새삼 뭉클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춤으로 응원하는 행복. 그가 요즘 누리는 최고의 기쁨이다.
“2007년 오산고현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때 제 꿈은 ‘친구 같은 교사’가 되는 거였는데, 돌아보면 대책 없이 놀아주기만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놀아주되 수업이 우선이에요. 놀이와 교육을 접목할 줄 알죠.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비로소 되어가는 것 같아요.” 교사로서의 첫 꿈을 이룬 그는 이제 새로운 꿈을 꾼다. 동료 교사들이 행복하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그것이다. 춤추듯 꿈꾸고, 꿈꾸듯 춤춘다. 삶이 그 자체로 ‘흥’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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