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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새싹 > 생생지락(生生之樂)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즐기는 이들의 이야기

생생지락(生生之樂)

든든한 꽃받침이 되어줄게,
꽃처럼 환히 피어나렴!

충북교육삼락회 다문화교육봉사단
차별의 벽 허무는 반편견 교육
온종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건 아니더라도 늘 그 자리에 서서 빛을 밝혀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사그라지던 꿈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지친 몸과 마음을 북돋워 주는 사람, 내 안에 잠재된 에너지를 끌어내 주는 멘토···. 다문화 아이들에게 충북교육삼락회 선생님들은 그런 존재다. 할아버지·할머니 선생님에게서 배운 희망가(希望歌)와 함께 아이들의 꿈이 힘차게 움트고 있다.

글 윤진아 / 사진 이용기

할아버지·할머니 선생님의
즐거운 교육 품앗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 중심에 전문성과 연륜을 겸비한 퇴직 교원들이 있었다. 정규교육 과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문화 학생들에게 충북교육삼락회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부모를 따라 낯선 땅에 온 아이들에게 이들은 교사 그 이상의 존재다. 충북교육삼락회 사무실에서 만난 선생님 네 분의 교육 경력을 합치면 무려 165년! 43년간 교단을 지켰던 오병익 회장(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을 비롯해 남순화 전 원봉초교장(교육 경력 41년), 민병석 전 진천교육지원청장(교육 경력 41년), 김심경 전 한벌초교장(교육 경력 40년)은 “다문화 멘토링을 통해 새삼 느낀 건 이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만큼 아름다운 꽃은 없다는 겁니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청주 봉명초등학교는 전교생 460명 중 무려 66%가 다문화 학생으로, 절반을 훌쩍 넘어요. 이 아이들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키워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충북교육삼락회의 다문화 멘토링 사업은 2019년 충청북도국제교육원의 의뢰로 시작됐다. 대상 학교는 현재 다문화중점학교를 운영 중인 봉명초등학교와 한벌초등학교. 퇴직 교원 30명이 다문화 학생과 일대일 멘토-멘티 매칭으로 맞춤형 기초 학습을 돕는다. 오병익 회장은 몽골에서 온 술데(3학년)를 2년째 지도하고 있다. 수업 시간뿐 아니라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도 함께하며 서로 마음의 문을 열어왔다. “얼마 전 종업식 땐 잠시 떨어지는 건데도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섭섭해하길래 손잡고 집까지 데려다주고 왔어요. ‘방학 동안 잘 먹고 잘 놀고 쑥쑥 커서 다시 만나자!’라고 약속했는데, 숙제 잘했는지 검사해 봐야죠.”(웃음)
남순화 전 교장은 러시아에서 온 알리나(3학년)와 알렉세이(3학년)를 지도하고 있다. 남 전 교장은 “한 명 한 명의 수준에 맞춰 가르치다 보니 지금은 나도 즐겁고 학생도 배워서 즐거운 교육을 하게 된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올해 제 멘티들은 한국말을 거의 못 해서 ‘손’, ‘발’ 같은 기본 단어와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얼마예요?’, ‘병원에 가야 해요’ 같은 생활 언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번역기나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몇 번이고 반복시키니 몇 달 만에 의사소통을 곧잘 하게 됐죠. 혼자만 잘하지 말고 친구들한테도 하루 한 단어씩 알려주라고 했더니 그날그날 친구에게 알려준 걸 자랑하더군요.”

가르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집중하지 못하면 같이 숨바꼭질도 하고, 시험 기간이면 같이 공부도 하는 할아버지·할머니 선생님들의 진심은 ‘글로벌 손주’들의 마음에 가닿았다. 김심경 전 교장의 노력 끝에 베트남에서 온 당떤팥(4학년)도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잊거나 부끄러워하지 마라. 모국어가 있어야 한국어와 한국 전통도 이해할 수 있다’고도 말해 주죠. 유난히 목소리가 작은 당떤팥을 만날 때마다 ‘안녕~ 너도 크게 ‘신짜오!’라고 인사해 봐!’ 독려했더니, 나날이 더 큰 소리로 인사하는 자신감 넘치는 아이로 변했어요. 얼마 전엔 한국어로 쓴 손편지도 받았죠.”(웃음)
러시아에서 온 특수반 학생 티무르(5학년)에게는 무한한 격려를 해주었다. “조금만 잘해도 최고 잘한 것처럼 칭찬해 주니 좋았나 봐요. 주 2회 수업인데 월화수목금 매일 와요. 늘 미리 와서 기다리는 티무르가 ‘배우는 게 재밌어졌다’고 말하는데,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충북교육삼락회의 다문화 멘토링 사업도 어느덧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오병익 회장은 “교육이든 삶이든 정답은 없지만, 길은 있다”라며 “부모 따라 낯선 땅에 정착한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뿌리내리게 하려면 바른길로 이끌어주는 어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땅에 남는다면 한국의 자산이 되고, 모국으로 돌아간다면 그곳에서 한국을 긍정적으로 알리는 가교 역할을 하도록 키워야 합니다. 이 아이들을 사회의 문제아로 키울지, 미래의 동력으로 키울지는 전적으로 교육에 달렸습니다.”

가르칠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교육 경력 도합 165년,
퇴직 교원들의 새로운 꿈

두 팔 걷어붙이고 뛰어든 할아버지·할머니 선생님들의 내공도 날로 강해지고 있다. 민병석 전 진천교육장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샤샤(2학년)를 지도하며 전통 놀이 전문가가 됐다. “명석한 학생인데 한국어에 통 관심이 없었어요. 수업 시간을 다 채우는 것보다 단 10분만 공부하더라도 우리 말과 문화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뒀죠. 대개 초등학생은 10~20분이 지나면 흐트러져요. 그땐 함께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전통 놀이를 합니다. 샤샤는 제기차기와 딱지치기를 참 잘해요. 현직에 있을 땐 딴짓하면 바로 제재하는 선생님이었는데, 지금은 함께 놀아주는 어른이 됐어요. 충분히 기다려주고 쓰다듬어주며 내 손자 키우듯 지도하고 있습니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더욱 빛나게 할 방법을 찾아나가며, 어느덧 이들은 없어서는 안 될 또 한 명의 부모가 됐다. “아이들 곁에 있으면 우리도 여전히 배울 게 많다는 걸 매 순간 깨달아요.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니까요. 한평생 교단을 지켰는데 인생 2막도 교육 봉사로 잇고 있네요. 공교육이 충분한 여건을 갖추기 전까지 원로들이 든든한 길잡이가 돼줄게요!”
다문화 아이들의 성장에 자양분이 될 배움의 씨앗을 심으며 선생님들에게도 새로운 꿈이 생겼다. 제자들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는 꿈, 언제고 찾고 싶은 멘토가 되는 꿈, 더 겸손한 자세로 초심을 지키며 사는 꿈···. 새록새록 늘어나는 꿈을 보듬으며, 할아버지·할머니 선생님들의 눈빛이 앞으로 더욱 깊어질 듯하다.케이 로고 이미지

다양한 교과와 연계 지도할 수 있는 반편견 교육
다양한 교과와 연계 지도할 수 있는 반편견 교육 다양한 교과와 연계 지도할 수 있는 반편견 교육 다양한 교과와 연계 지도할 수 있는 반편견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