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매거진(더케이매거진)

배움의 새싹 > 생생지락(生生之樂)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즐기는 이들의 이야기

생생지락(生生之樂)

22년 경력 물리교사,
더 즐거운 교육을 실험하다

이재복 렙톤소프트 대표
차별의 벽 허무는 반편견 교육
세상 곳곳에 숨은 패턴과 규칙을 찾던 소년이 교사가 됐다. 어느덧 중년이 되어 새로운 교단에 올라선 그의 인생 키워드는 여전히 ‘즐거운 교육’이다. 긴 시간 그를 쉼 없이 달리게 했던 교문을 나서자, 비로소 평범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글 윤진아 l 사진 이용기

그의 삶의 이유는 ‘과학교육’이다

재미있는 만화를 보는 것만으로 교육과정의 핵심 내용을 익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재복 렙톤소프트(LeptonSoft) 대표는 과학을 좀 더 쉽게 알려주려고 애쓰던 교사였다.
“제가 경험한 과학 수업은 이론을 중심으로 기껏해야 비디오 시청이 전부였어요. 그런데 당시 과학 담당이셨던 이철훈 선생님께서는 중요한 실험만큼은 꼭 직접 경험하게 하셨죠. 그 중에서 특히 간섭무늬 간격으로부터 빛의 파장을 측정하는 ‘이중 슬릿(Double-silt) 간섭 실험’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두 개의 길고 가는 좁은 틈을 통해 각각의 빛이 서로 간섭해 나타난 무늬를 발견하는 건데, 잘 찾았다고 칭찬도 받았죠.”
자신의 은사가 그랬듯, 이재복 대표는 교직에 있는 동안 실험을 많이 하게 해주는 교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해마다 완수할 실험목록을 뽑아놓고, 계측기 사용법부터 시작해 다양한 응용 실험들로 발전시켜 나갔다. 덕분에 과학을 어려워하거나 관심 없던 아이들도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졸업 후 물리 전공으로 진학한 학생들도 생겼다.
“제 전공은 광학이었어요. 어려서부터 계절마다 느껴지는 빛의 변화를 관찰하는 게 재미있었죠. 빛도 봄과 가을, 춘분과 추분의 광량이 다 달라요. 해의 높이는 똑같아도 지구의 공존 등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생기거든요. 그런 현상들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멋있지만, 규칙성을 찾아내 기술적으로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그래밍에 한창 빠져 있던 학창 시절엔 영국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Wallace and Gromit)’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발명가 월레스의 반려견 그로밋은 전자공학에서 도스토옙스키까지 섭렵한 영리한 개죠. 이 만화를 통해 골드버그 장치(도미노나 도르래, 톱니바퀴 등의 연쇄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장치)를 처음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만화와 교육 콘텐츠의 접목을 꿈꾼 것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2007 개정 교육과정 당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면서 중단원 하나를 만화 8컷으로 압축해 보자 아이디어를 냈어요. 빛이 서로 다른 물질을 통과할 때의 진행경로 같은 걸 만화로 구성했는데, 학생들이 재미있게 보고 쉽게 이해했다고 해 뿌듯했습니다.”

1932년 경성약학전문학교 본교사 신축공사 설계도
1949년 「약우」 창간호를 제작한 학생들의 모습
1932년 경성약학전문학교 본교사 신축공사 설계도
1949년 「약우」 창간호를 제작한 학생들의 모습
아이캔 아이두! 웹툰 한편으로 교육과정 익혀요

이재복 대표는 2000년 중등교사로 임용돼 22년간 충남 지역 중·고등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쳤다.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할 만큼 열정이 넘쳤던 그는 새로운 교육 콘텐츠의 필요성을 느꼈고, 지난해 2월 퇴직 후 차세대 교육 콘텐츠&솔루션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 사실 사범대 1학년 시절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해 교내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다. 교직에 있을 때도 좀 더 재미있는 과학 수업을 위해 늘 골몰했다. 학생, 동료교사들과 손잡고 ‘매그메이커’라는 과학 웹진도 출간했다. 어려운 과학지식을 학생 수준에 맞춰 쉽고 재밌게 편집한 콘텐츠였다. 텍스트를 입력하면 녹음할 필요 없이 듣기평가 자료를 만들 수 있는 디지털음성방송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을 땐 학생들의 교육용 PC 보급을 위해 자비를 들여 리눅스 기반의 PC 시제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연구에 따르면, Z세대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8분 내외라고 합니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볼 수 있는 교육용 웹툰을 개발하고, 8분 분량의 짧은 만화를 통해 한 주간 학교에서 배운 핵심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웹툰을 보는 것만으로 적어도 ‘과포자’나 ‘수포자’는 되지 않게 돕고 싶어요.”
렙톤소프트가 개발한 교육용 웹툰 ‘아이캔아이두(iCan&iDo)’ 는 현재 과학·수학 두 과목을 180회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 시즌1의 도입부에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이 제작한 자격루(물시계)가 시간여행이 가능한 장치로 등장한다.
“세종대왕 ‘이도(iDo)’가 실험을 위해 자격루에 탑승했다가 오작동으로 십이간지의 첫 번째 동물인 쥐의 모습으로 변해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이후 다양한 교육 원리를 활용해 각종 위기를 모면하는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지죠. 학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학습하길 바라며 중간중간 교육적인 활동도 숨겨놓았는데, 선생님의 진심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네요.(웃음)”
아이캔아이두는 시즌 1 과학, 시즌 2 수학, 시즌 3 정보통신을 시작으로 세계사, 경제 등 다양한 과목의 스토리로 확장된다. 다문화 학생들을 위해 베트남어와 영어 버전도 동시 개발한다. 기본 핵심개념을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익히고 싶은 학생들, 사교육비 걱정 없이 자녀에게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보여주고 싶은 학부모들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싶다는 말에 힘이 실렸다.
“웹툰에 이어 동영상으로도 제작했고,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추가해 나갈 계획입니다. 학교에서도 수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학생용 활동지와 교사용 안내서도 제작했죠. 교사들이 매년 새로운 교육방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Z세대를 위한 교육 콘텐츠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에요.”

차세대 교육 솔루션으로 공교육 지원한다

창업가로, 늦깎이 대학생으로 그리고 여전히 교육자로, 숨 돌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이재복 대표는 올해 3월부터는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서 창업 관련 강의도 하고 있다. 본업 역시 멈추지 않고 진행 중이다. 차세대 그룹웨어 ‘그룹팟(GroupPot)’도 오는 12월 정식 버전 출시를 앞두고 있고, 지문 인식 정보 유출을 막아 개인정보 보안을 강화하는 알고리즘도 개발했다.
이재복 대표는 지난해 11월 충남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으로부터 우수창업기업 표창을 받은 데 이어, 12월에는 R&D혁신 부문 대한민국기업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22년간 잡았던 교편을 내려놓고 교육 콘텐츠 스타트업을 시작한 지 7개월만의 성과물이다. 용기가 확신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과학은 수많은 가설과 실험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더 나은 논의로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제가 22년간 몸담았던 학교를 나와 도전한 창업 역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새로운 형태의 교재가 필요하다고 느껴 시작한 일인 만큼 사명감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방법론이 조금 달라졌을 뿐 여전히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모쪼록 저의 끈기 있는 도전으로 인해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며 더 많은 상상과 시도를 하길 바랍니다.
오랫동안 그는 교사이면서 과학자였다. 궤도는 살짝 벗어났지만, 뼛속까지 교육자가 된 이재복 대표는 여전히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 안에서 느끼는 희열이 어떤 건지 정확히는 몰라도, 그의 표정을 통해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새로운 교육의 장에서 즐거운 대안을 내놓겠다는 이재복 대표의 에너지가 주변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이유다. 케이 로고 이미지

1960년 분석학교실에서 수업 중인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