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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속 세상

오펜하이머의 고뇌와
핵무기의 양면성
고현정
핵폭탄은 인류를 절멸로 몰고 갈 수 있는 대량 살상 무기다. 핵폭탄이 터지면서 생기는 엄청난 열폭풍과 방사능, 충격파는 주변 수십 킬로미터를 초토화시킨다. 의도적이든, 실수든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인류 최후의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북핵 사태에 직면한 우리에게 핵무기의 의미는 남다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가 정치적 상황에서 마주하는 고뇌와 대량 살상 무기가 개발되는 전후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내며 전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두 발의 원자폭탄은 한국을 일제 식민 통치에서 해방시켰다. 한국전쟁의 참담한 비극과 미·소 냉전시대를 거치며 한국인에게 강한 군사력은 절대적 가치로 여겨졌다. 여기에 북한의 핵실험과 실전배치는 힘에 의한 평화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여론을 형성하며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이 대두되었다.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2022년에 공개한 한국의 핵무기 태도 관련 여론조사(한국의 18세 이상 1,500명 대상)를 보면 응답자의 71%는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답했다. 2013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답변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역내국가에 대한 위협인식 등이 한국인의 핵무장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만큼 원자폭탄의 아버지 J.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에 대해 대중이 궁금해한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비밀리에 원자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이름하여 맨해튼 프로젝트. 이론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인셉션’, ‘인터스텔라’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를 주목했고 마침내 그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오펜하이머’를 세상에 선보였다. 원작은 오펜하이머의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다.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무려 1,0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또 하나의 불, 원자폭탄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신들의 전유물인 불을 인간에게 건네준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평생을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에 시달린다. 프로메테우스처럼 오펜하이머도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이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했다.

1960년 분석학교실에서 수업 중인 학생들
1980년 관악캠퍼스의 약학대학(21동)의 모습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두 발의 원자폭탄은 한국을 일제 식민 통치에서 해방시켰다. 한국전쟁의 참담한 비극과 미·소 냉전시대를 거치며 한국인에게 강한 군사력은 절대적 가치로 여겨졌다. 여기에 북한의 핵실험과 실전배치는 힘에 의한 평화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여론을 형성하며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이 대두되었다.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2022년에 공개한 한국의 핵무기 태도 관련 여론조사(한국의 18세 이상 1,500명 대상)를 보면 응답자의 71%는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답했다. 2013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답변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역내국가에 대한 위협인식 등이 한국인의 핵무장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만큼 원자폭탄의 아버지 J.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 1967)에 대해 대중이 궁금해한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비밀리에 원자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이름하여 맨해튼 프로젝트. 이론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인셉션’, ‘인터스텔라’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를 주목했고 마침내 그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오펜하이머’를 세상에 선보였다. 원작은 오펜하이머의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다.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무려 1,0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또 하나의 불, 원자폭탄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신들의 전유물인 불을 인간에게 건네준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평생을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에 시달린다. 프로메테우스처럼 오펜하이머도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이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했다.

1960년 분석학교실에서 수업 중인 학생들
1980년 관악캠퍼스의 약학대학(21동)의 모습

오펜하이머의 삶은 굵직한 현대사를 지난다. 스페인내전,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는 반나치즘과 반파시즘에 선다. 당시 나치즘과 파시즘에 저항하는 선봉에 섰던 주요 세력은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이었다. 오펜하이머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캘리포니아주는 특히 진보적인 목소리가 강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많은 공산주의자와 교류했다. 약혼녀 진 태트록, 아내 키티는 공산 당원 경력이 있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을 휩쓴 매카시 광풍 때 그를 곤란에 빠뜨리는 근거가 된다.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것은 나치의 독일보다 먼저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핵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였다.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우수한 인재를 대거 영입하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마침내 인류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에 성공하고 미국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일본에 원폭을 결정한다. 일본에 투하된 2개의 원자폭탄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종전됐다. 하지만 힘에 의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단속한다고 했지만 경쟁국인 소련이 금세 따라왔다. 미국은 더 강한 폭탄이 필요했다. 그게 수소폭탄이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한다. 원자폭탄보다 더 큰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오펜하이머의 수소 폭탄 개발 반대는 그를 소련 스파이로 의심하던 정적들에게 좋은 빌미가 됐다. 이들은 소련에 원자폭탄 기술을 넘긴 혐의로 오펜하이머를 청문회에 세운다. 오펜하이머는 “나는 뉴딜 민주 당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원자력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낙인찍는다. 그리고 ‘비밀 취급 인가’ 권리를 박탈당하고 정부 요직에서 쫓겨났다. 이때가 1954년이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러 1954년 결정을 완전히 취소한다. 오펜하이머가 간첩 혐의를 벗는 데 무려 68년이 걸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며 “좋았든, 나빴든 그의 행동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남한의 전술 핵무기 재배치 논란, 한반도 비핵화 등 한반도는 핵과 관련해 가장 첨예한 지역이 됐다. 만약 미국이 원자폭탄을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니 당장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3시간짜리 영화 ‘오펜하이머’가 미국 한 과학자의 오래된 이야기가 아닌 한국 현대사의 가까운 뒷얘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