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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인사이드

지도를 읽는 힘에서 나오는 리더십
미래를 위해 ‘지도력’을 키워야 합니다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김이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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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 김이재 교수는 “문자가 없던 시대에도 지도는 있었다”라고 말한다. 원시시대에도 인류는 본능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장소를 찾았다. 문명이 발달한 지금도 지리는 인문과 자연현상을 통합해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통로다. 그래서일까. 세계를 이끄는 리더들은 ‘지도(地圖)’를 통해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준비한다.

글 정라희 l 사진 김수

새로운 세상을 찾는다면, 지도력(地圖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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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에 달력을 보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지도를 펼치는 사람이 앞으로 100년을 이끌어간다.” 김이재 교수는 고(故) 이어령 교수가 강조한 이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 역시 30여 년 동안 지리학자로 살아오며 선생의 생각에 크게 공감한 까닭이다. 지리학자의 관점으로 역사를 돌아보면, 개인과 국가의 흥망성쇠에 ‘지리’가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폴레옹은 청년 시절부터 지도를 잘 읽는 군인이었으며, 미국 건국의 주역 중에는 토지 측량사 출신이 많았다. 18세기 유럽 귀족은 어린 시절에 가정교사와 유럽 구석구석을 다니며 현지 역사와 문화를 직접 보고 배우는 그랜드투어를 다녔다. 『국부론』을 쓴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역시 그랜드투어를 통해 견문을 넓혔다. 김이재 교수는 역사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인물 가운데 지도를 멀리한 사람이 있을까 반문한다. 지도를 보는 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글로벌 기업의 리더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지도를 가까이하고 지리적 상상력이 풍부했다는 거예요. 에디슨, 워런 버핏, 월마트 창업자 샘 월턴 등은 모두 어릴 때 신문 배달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왜 부자들은 모두 신문배달을 했을까』라는 책이 나올 정도예요. 신문 배달을 하려면 신문을 가장 빨리 배달할 수 있는 코스를 매일 생각하니 공간 전략에 능한 사람이 되죠. 실내에 가만히 있기보다 밖으로 나가 지도를 펼치고 공간 전략을 세우며 지리적 상상력을 키우면 큰 기업을 경영할 때도 유리한 거죠.”
지도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힘은 더욱 중요해졌다. 김이재 교수의 저서 『부와 권력의 비밀, 지도력』에서는 ‘지도력(地圖力)’을 ‘지도를 읽고 낯선 곳에서도 방향과 동선을 설정하는 능력’, ‘지리적 상상력으로 성공의 기회를 포착하고, 공간적 의사 결정으로 운명을 바꾸는 능력’, ‘공간 전략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지역·국가·도시를 다양한 스케일에서 조망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이는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를 판단하거나 일상의 경관을 새롭게 해석하고 발굴하는 창의력으로 연결된다. 현재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구글 지도나 배달 앱 등도 지도력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보는 렌즈, 지리학

김이재 교수는 “지리학이 다른 학문과 차별되는 점 중 하나는 현장성”이라고 말한다. 지리학의 전통이 강한 영국이나 독일의 지리학자들은 현지 조사를 중요하게 여기며 현장에서 연구와 교육을 병행했다. 한편으로 지리학은 이론의 틀에 갇혀 있지 않은 실용적인 학문이기도 하다. 김이재 교수도 지리학자로서 연구를 수행하며 100여 개 국가를 직접 방문했다. 현지에 도착해 그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파악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도 생겼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그만의 예측도 점점 정확해지고 있다.
“지리는 ‘세상을 보는 렌즈’입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안경을 끼면 주변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듯이, 지리 역시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정확한 렌즈를 갖는 것이 중요해요. 인터넷 자료는 공개된 것이기는 하지만 업데이트가 안 된 것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진짜 세상을 파악하는 데 오히려 방해되기도 합니다. 저개발국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기도 하고요. 동남아시아를 연구하면서 그곳에 자주 방문하는데, 갈 때마다 그 지역의 변화를 목격하게 되거든요. 집 안에 앉아 과거 자료만으로 해당 국가의 정보를 얻는 일 역시 업데이트되지 않은 지도를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지도를 꺼내 볼 수 있지만,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지도를 제대로 읽고 활용하는 능력은 오히려 쇠퇴하는 추세다. 어린 시절부터 지도나 지구본을 보며 전 세계를 생각하는 일은 개인의 역량을 펼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치열하게 경쟁하기보다, 저마다의 지도를 펼쳐 들고 각자의 진로를 다채롭게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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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더 큰 세상을 향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교육과정 개편으로 '지리' 교과가 필수과목에서 선택과정으로 변경되면서 지리 교육이 축소되었다. 사회과에 지리가 포함되기는 하지만, 일부만 다룰 뿐이다. 실내에 머물며 입시 위주 교육으로 지리를 배우다 보니 외울 것 많은 암기 과목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기초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무궁무진하게 응용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지리이기도 하다.
“균형 잡힌 정책으로 여러 나라에서 본보기로 삼는 북유럽 국가들은 지리 교육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핀란드 초등학생들은 ‘학교 근처 호수에서 수영하기’, ‘우리 마을 지도 그리기’ 같은 야외 활동을 하면서 창의력과 함께 생존 능력을 키우죠. 지리의 힘으로 열강에 올랐던 영국에서 지리학은 통섭을 주도하는 기초 학문으로 위상이 높습니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지리학을 배울 수 있고, 의대 다음으로 취업률이 높은 전공이 지리학과이기도 하고요.”
김이재 교수는 “지리를 배우면 인문과 자연을 통합해 볼 수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특히 평면 지도와 함께 지구본을 가까이 두고 틈틈이 살펴보라고 권유한다. 여러 대륙의 형태나 바다의 면적 등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세계를 보는 시야를 키워주는 까닭이다. 아울러 그는 각자 원하고 꿈꾸는 바를 세계지도에 표시해 볼 것을 권한다.
“내가 태어난 시간, 즉 사주팔자는 바꿀 수 없지만 지도력을 통해 운명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내가 행복한 곳, 꿈을 이루기에 유리한 곳으로 과감하게 이동하면 운명의 방향이 달라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려요. 저도 한자리에 안주했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경험을 한 지리학자가 되지 못했을 거예요.”
한국이라는 나라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리니 지리학자로서 할 일이 더 많아졌다. 현재 김이재 교수는 영국뿐 아니라 세계 4위의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 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다. 『부와 권력의 비밀, 지도력』을 비롯한 저서가 다국어로 출간된 것은 물론 국제적으로 활동 영역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세상이 빠르게 발전하며 국제 질서마저 급변하는 요즘, 김이재 교수는 “내 관심과 필요를 반영한 다양한 지도를 그려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공간의 한계를 넘어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인생은 물론 더불어 사는 모두의 미래도 한층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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