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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인사이드

시간을 정의할 순 없다
현재가 있을 뿐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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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교수의 연구실 한쪽 벽에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빛의 제국’을 비롯해 여러 점의 명화 포스터가 걸려 있다. 이유를 묻자 “즐거웠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라고 답했다. 우리는 과거를 떠올리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상상한다. 이처럼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시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는 어렵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라면 명쾌하게 답해 줄 수 있을까?

글 이성미 l 사진 성민하

사회의 변화가 시간 개념의 변화를 만들다

수업 시작을 앞두고, 강의실 문 앞에서 한 학생이 친구를 향해 외친다. “10초 남았어! 뛰어!” 같은 시각 지하철역에서 직장인들은 출근 1분 1초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은 매일 초, 분, 시 단위로 쪼개져 있다.
과거의 시간 개념은 오늘과 완전히 달랐다. 김상욱 교수는 “인류 역사상 인지혁명이 일어나면서,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대해 사고하게 되었다”라며,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쓴 책 『사피엔스(Sapiens)』를 토대로 설명했다.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 의사소통하게 되었으며, 추상적인 것에 대해서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도 그중 하나다.
이후 1만 2,000년 전에는 ‘농업혁명’이 발생했다. 이 혁명은 시간에 대한 개념을 점차 바꾸어 놓았다. 그전까지 하루하루 먹고살던 수렵채집인에게는 오직 현재만이 중요했다. 하지만 정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시간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인지했으며, 미래를 의식하고 그에 맞춰 씨를 뿌리고 작물을 관리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200여 년 전부터는 전통적 농업사회의 사이클이 기계적인 생산 시스템의 획일적인 스케줄로 변화했다. 시간을 정확히 준수해야만 기계를 계속 돌릴 수 있고, 열차가 제시간에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할 수 있었다. 기계적이며 수학적인 시간이 탄생한 것이다. 인류는 점차 필요에 의해 시간의 단위를 정밀하게 설정했고, 어디서든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했다.
오늘날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자원이고, 누군가에게는 탐구의 대상이다.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박사가 1988년 펴낸 『시간의 역사』는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팔렸다.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과학서 중 하나로 누구나 시간에 관심을 두고, 또 알고 싶어 한다는 증거다. 실제로 많은 물리학자가 시간을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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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이 남을 뿐

빅뱅(Big Bang)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138억 년 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생겨났다. 이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rincipia)』에서 “수학적이며 진리적인 절대시간은 외부의 그 어떤 것과 상관없이 그것 자체로 흐른다”라고 썼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발표한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다. 또 현대물리학에서 1초는 세슘 원자가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러나 ‘시간이 무엇이다’라고 명확히 정의 내린 사람은 아직 없다.
김상욱 교수도 “시간은 정의 내릴 수 없다”라고 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존재하는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최신 이론 가운데는 시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때문에 어릴 적 한 번쯤 꿈꿔봤을 시간 여행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흘러, 지나간 것은 소멸하고 현재만이 존재한다. 과거가 존재한다고 믿는 이유는 단지 우리가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순서가 존재하고 우리는 그 순서를 시간이라고 부를 뿐이다. 마찬가지로 미래 역시 기대할 뿐이다.
시간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은 흘러 돌아오지 않는다. 생명이 유한하듯 주어진 시간 또한 유한하다. 또 사람마다 수명의 길이는 다르지만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는 같다. 지위, 재산과 상관없이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축복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을 내 것으로 잘 지켜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농경사회처럼 해 뜨면 일어나 활동하고, 해 질 때 잠들 수 있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인간은 더 행복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 삶은 어떤가요?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는 단 몇 초 사이에 나오고 들어갑니다. 빠른 속도에 익숙하죠. 마치 지하철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일부가 되어 함께 움직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아주 잘 지키게 되었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행복과 관련이 없습니다.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가 되었을 뿐이에요. 이제는 고민할 때입니다.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지, 과연 그것이 행복하기 위한 것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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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시간

시간은 무게도 질량도 값도 없지만, 청소년기의 시간은 유독 값지게 평가된다. 혹자는 책상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성인이 되어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김상욱 교수는 그의 책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통해 “교육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학교에서의 시간은 아이가 ‘독립’을 위해 써야 할 시간이라는 것이다.
“인간 외의 다른 생물도 교육을 합니다. 새는 비행을, 육식동물은 사냥을 가르치죠. 본능으로 갖고 태어났지만, 기술이 부족해 어려서부터 가르칩니다. 능력이 길러지면 독립시킵니다. 아주 단호하게 말이에요.
현대사회에서도 교육의 목적은 개인을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아이가 독립한 이후에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이 정의한 행복을 교육의 목표로 삼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날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능력을 갖추고, 독립해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는 것, 그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똑같은 시간을 부여받고, 그 속을 여행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의 여행에서 나는 그 주체로서 바로 서있는지, 독립해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마치 물리학자처럼 질문하고 의심하고 탐구해 보자.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일수록 질문하고, 납득할 답을 찾아야 한다.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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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인사이드05_1현대의 우리는 시간을 잘 지키며 살게 됐지만, 이것은 행복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제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그것이 행복한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