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이한솔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이한솔
이규배 교사의 하루는 새벽같이 시작된다. 24년의 교직 생활 동안, 그는 초임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오전 7시 30분 전에 학교에 도착해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왔다. 여유로운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7시 20분쯤 학교에 도착하지만, 처음 교단에 섰을 때는 7시에 출근해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수업 준비를 하면서 아이들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제 마음의 여유
공간을 확보하는 시간이지요.”
그의 이러한 작은 노력은 아이들과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매일 아침 밝은 미소로
먼저 인사하는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의 등굣길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그에게도 어린 시절
행복한 기억을 선물해 준 어른들이 있었다.
“저는 경상북도 울진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 떠올려보면 즐거운
추억들뿐입니다. 열 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에서 동짓날이면 부모님을 비롯한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작은 이벤트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동지팥죽에 넣을 새알심을 뒷동산 대나무밭에
미리 숨겨 놓고 형·누나들과 함께 자기 나이만큼 찾아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대파 농사를
지으셨던 부모님께서는 다 자란 대파를 장난감 삼아 놀도록 흔쾌히 허락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저도 어른이 되면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글쓰기와 사색을 즐기던 청소년 시절, 그는 담임교사에게 ‘천생 교사’라는 말을 들었다. 교사의
꿈을 품고 진학한 교육대학교에서 그는 무료 과외와 야학 등 봉사활동을 통해 교육자로서의
가치관을 정립해 나갔다.
때로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지만 어른의 세심한 배려와 보호가 절실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특히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만날 때면 이규배 교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헤아리고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부적응 학생이라는 용어는 어른의 시각으로
규정된 것일 수 있어요. 학생 입장에서 보면 어른에게서 받은 상처일 수 있죠”라고 말한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그가 변함없이 지키고자 하는 원칙은 바로 ‘아이 역시 존중받아야
할 온전한 인격체’라는 믿음이다. 편견 없는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그의 진심 덕분에 많은
아이가 마음을 열고 그를 따른다. 물론 아이들이 중심을 잡으려 할 때 주변 환경이 흔드는 어려움도
있지만, 졸업식 날 “선생님, 꼭 찾아뵐게요”라며 감사를 표하는 아이들의 작은 변화는 그의 진심을
향한 끊임없는 동력이 된다. 지금도 방과 후에 찾아오거나 SNS를 통해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제자가 많으며, 그를 본받아 교사의 꿈을 키우는 제자를 볼 때면 큰 보람과 책임감을 느낀다.
이규배 교사는 초임 시절부터 ‘담임(擔任)’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깊이 인식해 왔다. ‘담(擔)’자가
‘책임지다, 메다’라는 뜻이고, ‘임(任)’자가 ‘맡긴다’는 의미인 것처럼, 어른들에게 상처받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맡아주는 사람이 바로 담임교사라고 생각한다. 그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또한 그는 아름다운 학교 문화 조성과 학교폭력 예방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 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한편, 선진국의 학교폭력 예방 사례를 연구해 학교 현장에
적용할 방안을 모색했다. 특히 1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의 한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아침 등굣길에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는 활동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등교
시간 같은 기본적인 생활 습관 교육이 아이들의 인성 함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함께함’의 가치는 동료 교사와의 협력에서도 빛을 발한다. 이규배 교사는 대구미래학교와 대구시교육청
현장 지원 핵심 요원으로 활동하며 50여 개 학교 현장에 수업 혁신과 행복한 학급 경영 노하우를
전파해 왔다. 이러한 경험은 학급 경영 연구회 동료 교사들과 함께 쓴 『학급 경영 관계로 풀어가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학급 경영의 핵심을 ‘아이들의 자존감 회복’과 ‘소속감 심어주기’라고 믿는다.
아이들 스스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며 마음을 열고, ‘나는 우리 반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자부심을 느낄 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을 한배에 태우는 것’이다.
“아이들이 ‘우리 반이라서 정말 좋다’라고 느끼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공동의 목표를 강조하고,
개인적인 칭찬보다는 전체를 칭찬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합니다. 함께하는 활동과 배움을 통해 아이들이
더욱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은 안전한 실패를 경험하고 작은 성공에서
오는 성취감을 맛보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자들이 인생의 힘든 시기에 기댈 수 있는 그늘 같은 존재, 좌절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스승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그의 진심 덕분일까,
이규배 교사는 올해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그는 이 영광을 오롯이 자신의
공으로 돌리지 않는다. 교실 안에서 작은 기적들을 경험하게 해준 사랑스러운 제자들, 묵묵히 곁을
지켜준 동료 교사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을 보내준 학부모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함께’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사랑 또한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 하나
뒤처지거나 소외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랑을 실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