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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알프스의 심장’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AUSTRIA INNSBRUCK 유럽 지도를 보면 독일과 이탈리아 사이에 동서로 길게 알프스산맥이 이어져 있다. 서쪽 끄트머리는 지중해 쪽으로 휘어져 있고 이 휘어진 줄기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국경을 이룬다. 동쪽으로 뻗어 나간 줄기는 비엔나까지 이어지는데 이 산줄기의 중간쯤에 티롤 지방이 자리한다. 유럽 사람들은 이 지역을 가리켜 ‘티롤 알프스’라 부른다. 비엔나, 잘츠부르크 등과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인 인스브루크는 바로 이곳 티롤 알프스의 관광과 문화의 중심지다. 도시의 역사도 깊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문화 여행지로도 인기가 높다.
  • 글_사진. 송일봉(여행작가)
*송일봉 작가는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해외여행전문지 ‘코리안 트레블러’ 편집부장과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 편집장을 지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길 위의 인문학’ 기획위원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국립공원 대표경관 100경’ 선정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문화답사 프로그램 ‘송일봉의 감성여행’을 24년째 진행하고 있으며, 매주 KBS, MBC, 교통방송 등에 출연하고 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겨울 도시, 인스브루크

오래전부터 독일의 뮌헨에서 출발해 인스브루크를 거쳐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베로나까지 가는 기차 여행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 여행 코스 가운데 하나로 손꼽혀왔다. 초호화 열차인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도 이 구간을 통과한다. 이처럼 멋진 여행 코스의 한가운데에 인스브루크가 있다. 인스브루크 시내는 크게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뉜다. 신시가지 입구에 있는 개선문은 계몽을 통해 군주제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에 의해 세워진 기념물이다. 이 개선문의 북쪽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를, 남쪽은 아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1765년 인스브루크에서 치러진 둘째 아들 레오폴드 왕자의 결혼식 때 불행하게도 남편을 잃었기 때문이다.
개선문에서 구시가지를 향해 조금 걷다 보면 그림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거리가 눈 앞에 펼쳐진다. 바로 이 거리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아름답다는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다. 전형적인 바로크식 건물들과 거리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성 안나 기념탑, 그 뒤에 펼쳐진 만년설은 인스브루크를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감동하는 멋진 풍경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에서는 예쁘게 꾸민 마차를 타고서 시내 곳곳을 돌아보는 여행자들이 눈에 많이 띈다. 거리를 오가는 시내버스들은 휘발유 대신 천연가스나 전기로 움직이고 있다. 편리함보다 환경의 소중함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그들의 깊은 생각이 돋보인다.

  • 인스브루크의 크리스마스 마켓
  • 인스브루크 구시가지의 기념품 가게들
  • ‘작은 황금의 지붕’과 크리스마스 트리
인스브루크 여행의 중심지, ‘작은 황금의 지붕’

15세기 무렵.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3세에게는 ‘막시밀리안’이라는 총명한 아들이 있었다. 막시밀리안 왕자는 지금의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 있던 부르군트 왕국의 마리아 공주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이들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공주의 아버지인 부르군트 국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혼란을 틈타 부르군트의 영토를 탐낸 이웃 나라의 왕이 자신의 아들과 마리아 공주를 억지로 결혼시키려 했기 때문. 하지만 막시밀리안 왕자는 몇몇 부하와 함께 몰래 적진으로 들어가 공주를 구한 후 성대한 결혼식을 치렀다.
막시밀리안 왕자의 용감한 이야기는 금세 유럽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그는 ‘최후의 기사’라는 칭송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막시밀리안 왕자는 티롤의 영주를 거쳐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어 오랫동안 섭정을 베풀었다. 특히 그는 티롤 지방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지금도 막시밀리안과 관련된 많은 건축물들이 인스브루크 시내 곳곳에 남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1500년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작은 황금의 지붕’이다. 구시가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작은 황금의 지붕’은 인스브루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다.
지난 2000년에는 ‘작은 황금의 지붕’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지붕 보수를 위해 2,738개의 금화를 떼어낸 후 다시 붙였는데 1개의 금화가 사라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라진 금화의 행방에 관심이 쏠렸다.
이 일이 있은 며칠 후 신문에 금화 1개를 가지고 있다는 인스브루크 시민의 조그만 광고가 실렸다. 그는 이 광고를 통해 “나 같은 평범한 시민이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소홀히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금화는 다시 돌아왔고, 그 이후로 ‘작은 황금의 지붕’은 인스브루크를 대표하는 명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게 됐다.

인(Inn) 강변의 아름다운 건축물들 (왼쪽)예쁜 크리스마스 장식들 (오른쪽)골목길 입구에 세워 놓은 크리스마스 조형물
  • 인스브루크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구분하는 개선문
  • 인스브루크의 숨겨진 명물 가운데 하나인 ‘지혜의 분수’
인스브루크의 숨은 명물들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인스브루크에는 여행자들이 놓치기 쉬운 재미난 명물들이 숨겨져 있다.
첫 번째 명물은 인스브루크 시내에서 가장 작은 건축물이다. 마치 숨은 그림처럼 커다란 건축물 사이에 자리를 잡은 이 건축물은 언제부턴가 인스브루크의 새로운 명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막아서 지은 이 작은 집은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의 안나 상 근처에 있다. 입구는 작지만 건물 바깥의 길 한가운데에다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당당히 커피를 팔고 있다.
두 번째 명물은 수백 년 된 옛 골목길과 ‘지혜의 분수’다. 구시가지 ‘작은 황금의 집’ 근처에 있는 오래된 골목길에는 상점의 간판이 없다. 간판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빵, 안경, 맥주잔 모양 등 재미있는 조형물이 다양하게 걸려 있다. 이처럼 간판 대신 조형물을 걸어 놓은 것은 예전에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의 자그마한 공터에는 책 모양의 분수가 있다. 인스브루크의 신학교 학생들이 공부를 하다 졸리면 이 분수에 와서 머리를 적시며 정신을 차렸다고 해서 ‘지혜의 분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네 권의 책은 각각 신약성서를 의미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세 번째 명물은 구시가지의 상점 밀집지역에 있는 ‘사랑 고백 장소’다. 한 상점의 입구가 다른 상점과는 달리 입구의 기둥에 둥근 홈이 파여져 있다. 여기에 재미난 사연이 있다. 먼 옛날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왕자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었지만 가슴이 떨려 도저히 사랑 고백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돌기둥에 홈을 판 뒤 뒤돌아서서 사랑 고백을 하는 방법이었다. 지금도 돌기둥에 귀를 대고 있으면 반대편 돌기둥에서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다.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체험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주인아주머니는 늘 즐거운 표정이다.

  • 인스브루크 크리스마스 마켓 입구
  •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옛 간판
사랑고백 장소로 인기가 많은 한 상점의 출입구
인스브루크는 지금 크리스마스 시즌

유럽은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젖어있다. 11월 하순이 되면 유럽의 많은 도시는 개성을 살려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대표적인 상징물이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일반적으로 11월 넷째 토요일부터 성탄절 전까지 4주 동안 열린다. 도시의 중심이 되는 광장 한가운데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곳곳에 이동용 판매대가 들어서면서 크리스마스 마켓은 시작된다.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1300년대 무렵 독일에서 처음 시작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었다. 따라서 12월에 유럽을 여행하면 덤으로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다.
유럽의 많은 도시 가운데서도 독일의 로텐베르크와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특히 유명하다. 인스브루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규모는 크지 않아도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면에서 큰 점수를 따고 있다. 인스브루크를 대표하는 명물인 ‘작은 황금의 지붕’ 근처에 마련된 크리스마스 마켓뿐만 아니라 구시가지 골목길 곳곳에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인스브루크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인스브루크 사람들은 특별한 볼일이 없어도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아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즐길 준비를 한다. 예쁘고 앙증맞은 크리스마스 장식, 현관 앞에 세울 소형 크리스마스트리, 깔끔한 목재 수공예품 등을 둘러보며 애써 들뜬 마음을 달랜다.

인스브루크 위치 인스브루크(Innsbruck) 바젤 취리히 베른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아우크스부르크 뮌헨 인스브루크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tip 성가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고향, 오번도르프
해마다 12월이 되면 잘츠부르크 근교의 작은 마을인 오번도르프(Oberndorf)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곳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가곡 가운데 하나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에서 북쪽으로 20km쯤 떨어져있는 오번도르프는 잘자흐 강을 끼고 독일과 국경을 이루는 작은 마을이다. 1818년 12월 24일, 오번도르프에 있는 ‘성 니콜라우스 성당’의 신부였던 요제프모어(Joseph Mohr, 1792~1848년)와 이웃 마을인 안스도르프의 교사였던 프란츠 그루버(Franz Gruber, 1787~1863년)에 의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탄생했다. 매년 12월 24일에는 ‘성 니콜라우스 성당’에서 수많은 여행자가 모인 가운데 경건한 기념미사가 열리고, 모든 사람이 함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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