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45] 티처 & 티처

‘오늘’ 행복한 아이가
‘내일’ 성공한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기를 원하기에, 자녀의 현재 행복보다는 미래의 사회생활에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로써 사회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흔히 미래를 대비하는 확실한 전략으로 학벌 전쟁에 더 치열하게 뛰어든다.
  • 글. 박재원(사람과교육연구소 부모연구소장)

방황하는 20대가 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학벌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20대 사회생활의 출발이 안정적이기를 바라면서 그 수단으로 학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학벌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사회생활에서는 전리품을 챙기지 못하는 사례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한 대학병원 수간호사는 “신규 간호사가 오면 현장 적응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힘들게 교육하지만 힘들다고 따라오지 못하는 신규 간호사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결국, 3개월 뒤에 독립하여 환자를 볼 때가 되면 적성에 안 맞는다고 퇴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특히 철야 근무가 힘들다고 그만두는 경우도 많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취업이 확실한 사관학교의 경우도 비슷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합격했지만 장교로 임관되기 전에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2014년에 입학한 육사 74기의 경우 271명 중 47명, 17.3%). ‘가문의 영광’이라던 고시 합격자들도 흔들리고 있다. 2010년에는 단 한 명도 없었던 중도 퇴사자가 매년 늘어 2019년에는 10명을 기록했다. 일반 기업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한 취업중계 회사의 통계(2017년 기준)에 따르면, 1년간 직원 퇴사율이 평균 17%였는데 신입사원의 경우는 49%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자녀가 명문대에 합격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면 부모는 으쓱한다. 주변의 부러운 시선이 그간의 고생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남부끄러워 어디 가서 말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부모가 그리도 간절히 원했던 20대 사회생활을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자녀는 오래가지 못하고 방황을 시작한 것이다. 주변의 온갖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철부지 같은 소리를 하는 자녀를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성공을 위한 열쇠

지금 학벌 전쟁에서 열세인 학부모들은 나중에 자녀가 방황할지언정 고졸보다는 대졸, 전문대보다는 4년제, 지방대보다는 인서울을 간절히 원한다. 고졸과 대졸, 중소기업과 대기업,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이 심한 현실에서 부모들의 그런 바람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하지만 학벌 사회라는 불합리한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경우에 대입하는 순간, 소중한 자식이 들러리가 되고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고 자각하는 부모들이 있다.
필자는 그러한 부모들에게 ‘다른 시각으로 보기’를 제안했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조건, 고졸이지만 대졸보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경우와, 반대로 유리한 조건 즉 명문대 출신이지만 전문대 출신보다 어렵게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로써 행복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다시 할 수 있게 도왔다.
책 「행복의 기원」에서는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나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즉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는 행복이 의욕을 낳고, 의욕이 있어야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학벌 전쟁 승자들의 방황은 예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성공을 위해 오직 경쟁에만 매달려 스트레스를 견뎌온 사람은 막상 그 미래가 현재가 됐을 때,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방황할 수밖에 없다.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을까? 오늘 행복하지 않은 삶을, 또다시 내일의 성공을 위해 받아들이기 어렵다.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기가 쉽지 않은 셈이다. 반면 비록 불리한 조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꾸준히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불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누렸던 행복을 지키고 싶은 마음, 앞으로 더 많은 행복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바로 삶의 의지를 낳고, 결국 계속 성장하여 사회적 불리함을 극복하기에 이른다. 어린 시절부터 충분히 경험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누린 행복이 충분할수록 밝아지는 자녀의 미래

행복을 미루고 스트레스를 견뎌온 사람들이 대부분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는 것과 달리, 충분히 행복을 누린 사람들은 주변사람들에게 고마워한다. 불행을 오래 감수한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좌절하기 십상이지만, 행복을 누린 사람들은 오히려 도전하고 극복한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야 할 이유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행복감을 통해 충전한 에너지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자녀 본인 몫으로 맡기고 현재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부모 마음에 들기 위해 스트레스를 참으면서, 부모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지 못하면 오히려 자녀의 미래가 어려워진다.
이제 갓 20대 사회생활을 시작한 우리의 자녀들이 별다른 불만 없이 주어진 현실에 잘 적응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곁에서 더 힘껏 응원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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