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55] 인생 2모작

오직 춤을 향한
사랑과 희망으로 나빌레라

전통무용수 이숙경·박승준 부부

뒤늦게 취미로 시작한 춤이지만 춤을 대하는 자세는 결코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몸짓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며 넘치는 정열을 춤사위에 담았다. 살아가며 무슨 일을 하든 기본에 충실하고 이를 행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다고 믿었던 삶. 그 마음가짐으로 부부는 ‘플러스알파’의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몸 쓰는 일이 젊은 날처럼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춤을 배우고 공연을 하면서 평생 써왔던 몸을 새롭게 알아가기도 한다.
춤사위의 형식은 물론 몸을 쓰는 방법이나 몸의 자세, 춤이 지닌
감성과 의미까지도 새롭게 깨달아가는 것이다.
춤의 매력에 이끌린 인생 후반전

부부는 참 통하는 데가 많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으로 일평생 교육자로 살았다는 공통점을 빼놓더라도 문학을 좋아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마저 똑 닮았다. 50여 년 부부로 붙어 다녔으니 이제는 각자 취미를 찾아 즐겨도 좋을 법한데, 이 부부의 끈끈한 인연은 도무지 느슨해질 줄 모른다. 춤은 인생 후반전에 부부를 더욱더 단단히 엮어주는 귀한 사슬이다. 춤 공부를 하고 공연을 하러 다니면서 익히 아는 서로의 장점을 새삼스레 깨닫는 까닭이다.
“아내는 저보다 10여 년 이상 춤을 일찍 시작했습니다. 춤으로 보면 대선배인 셈이지요. 게다가 춤에 대한 감수성이 탁월한 편이라 제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때로는 춤사위에 대해 서로 평가해 주기도 하고 상호 보완하면서 연습을 합니다. 결국 부부애란 서로 보완하며 사는 것이라는 진리를 춤을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처음 춤의 매력에 빠진 이는 아내 이숙경 회원이었다. 어린 시절 배웠던 전통춤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등록한 국립국악원 산하 국악진흥회 문화학교. 그때만 해도 갓 시작한 춤 공부를 언제까지 할지 미처 생각도 못 했다. 그저 하루하루 춤추는 것이 좋았다.
학교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춤을 배우는 아내를 데리러 국악진흥회 문화학교를 오가던 남편 박승준 회원도 자연스럽게 전통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눈에 익으면서 몸으로 익혀보고 싶은 마음을 실행하다 보니 어느새 부부가 함께 춤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시작이 늦었다고 해서 열정이 덜하지는 않았다. 나이 들고 철이 들면서 배우는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박승준 회원은 “정년을 앞두고 남은 인생의 설계도를 그려보다가 한국 전통춤의 매력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대학교수로서 “그동안 ‘입’으로 살아왔으니 퇴임 이후에는 ‘몸’ 위주로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춤 공부였다.
“전통춤을 배우기 전에는 춤의 순서만 익히면 춤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춤이 춤 같아지려면, 보는 이에게도 감흥을 주는 춤을 추려면, 춤의 기본을 알아야 해요.”
처음에는 해마다 1년 공부를 결산하는 발표 공연에 함께 참여했다. 그러다 우연히 춤을 같이 추는 동료의 소개로 천주교 봉사단체인 ‘한마음 예술단’ 활동을 시작하면서 병원이나 요양원, 양로원 등을 찾아서 공연을 이어갔다. 봉사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봉사활동을 했던 십여 년 동안 오른 무대만도 50여 회. 다양한 관객 앞에서 자신들의 춤을 펼쳐 보인 경험은 부부의 춤 인생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춤추는 즐거움으로 가슴 뛰는 삶

차곡차곡 무대 경험을 쌓으면서 미숙한 춤태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출전한 경연대회. 큰 무대에 올라 춤 스승 앞에서 기량을 펼쳐 보이는 일은 그 자체로 부부에게 감동을 주었다. 더불어 무대에 오르는 훌륭한 춤꾼들의 춤사위를 보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배움이자, 즐거움이었다. 한 번 상을 받고 보니 제대로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운 춤꾼들이 힘을 모아 ‘바치울 무용단’을 창단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 받은 대상만 아홉 번. 최우수상과 금상, 은상, 우수상, 장려상 등을 합하면 부부의 수상 기록은 무려 서른 번이 넘는다. 그 가운데 10개의 상은 부부가 함께한 ‘한량무’로 탄 것이다. 그사이 잊을 수 없는 기억도 하나둘 쌓여갔다.
“아시안게임 축하 무대처럼 야외 공연도 있었고, 국악로 축제나 인사동 축제에서 거리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준인간문화재(인간문화재는 아니지만, 그에 비기는 무형의 문화적 자산을 보존하고 있는 사람)인 소리꾼을 따라서 창극 무대에서도 춤을 추었습니다. 심청이가 심 봉사 꿈에 나타난 장면에서 꿈속의 심청이와 왕으로 우리 부부가 함께 등장해 새로 안무한 춤을 선보였지요. 전국 순회공연이라 옛날 사당패의 정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생 써왔던 몸을 새롭게 알아가는 기쁨

몸 쓰는 일이 젊은 날처럼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춤을 배우고 공연을 하면서 평생 써왔던 몸을 새롭게 알아가기도 한다. 춤사위의 형식은 물론 몸을 쓰는 방법이나 몸의 자세, 춤이 지닌 감성과 의미까지도 새롭게 깨달아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춤은 몸의 예술입니다. 몸을 재료 삼아 빚고, 쪼고, 깎아낸 조각품과 같아요. 춤 동작에서도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읽을 수 있고, 그 속에는 함축된 시적 정서가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춤 공부를 하면서 제 몸을 스스로 연출하며 짤막한 한 편의 글을 쓴다는 생각도 해봅니다”라고 박승준 회원이 전했다.
아내는 고희(古稀), 남편은 희수(喜壽)를 넘긴 나이에도 부부는 어제보다 오늘의 춤사위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여전히 춤을 익히는 즐거움에 빠져 산다. 춤꾼들 사이에서는 “하루 춤을 안 추면 내가 알고, 이틀 춤을 안 추면 스승이 알고, 사흘 춤을 안 추면 관객이 안다”는 말을 금언처럼 말한다면서. 이숙경 회원은 춤의 매력을 강조했다.
“우리 춤에는 전통춤과 창작춤이 있고, 전통춤은 다시 궁중무용과 민속춤으로 나뉩니다. 흔히 우리가 즐겨 보는 춤은 살풀이춤이나 한량무, 진도북춤, 교방춤 같은 민속춤이 대부분이에요. 그 시절 어렵고 힘겨웠던 민중의 삶을 흥으로 북돋우던 춤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알 수 없는 이끌림을 주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춤을 출 때도 처음에는 쉬워 보이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요. 그러다 고비를 조금만 넘으면 그 흥취와 즐거움에 빠지게 되지요.”
춤을 배우면서 부부는 삶의 역설을 새롭게 찾아가고 있다. 아이돌의 춤 하나를 보아도 그 속에 담긴 땀과 오랜 연습의 고통이 보이고, 어떤 무대에서는 춤추는 사람의 내면을 고스란히 느끼기도 한다. 이숙경 회원은 “춤은 자신에 대한 가장 진솔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덕분에 춤을 추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부부는 말한다. “무언가를 배워가는 일은 감동 속에서 진리를 체험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부부는 춤을 추고 춤을 이야기하며 하루하루 삶의 기쁨을 수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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