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공간의 재구성

공간, 학생들이 변화의 주체가 될 때
진정한 혁신이 이루어진다

울산 천상중학교 학교에서의 공간혁신은 학교를 새로 짓거나 기존의 유휴공간을 활용하면서 추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울산 천상중학교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띤다. 과밀학급으로 학생들이 쉴 곳이 변변치 않았던 이곳에서 이루어진 공간혁신. 그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 글. 이경희
  • 사진. 김도형

(왼쪽)높은 층고와 푸른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가 인상적인 중앙현관. 쉬는 시간, 점심시간이면 아이들의 즉석 피아노 공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오른쪽)중앙현관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다. 흰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은 작은 소녀상들은 학생들이 직접 오리고, 접어서 만들었다.
공간혁신, 그 과정이 중요하다

울산광역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천상중학교는 요즘 보기 드문 큰 규모의 학교다. 총 학급수는 1학년 13반, 2학년 11반, 3학년 11반, 특수학급 2반으로 40학급에 근접하고, 전체 학생 숫자는 천여 명에 달한다. 지역 개발로 향후 몇 년간은 학생 숫자가 계속 늘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신승원 교장은 2년 전, 처음 부임해왔을 때 천상중학교의 첫인상을 두고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갈 데가 없어서 복도 여기저기서 서성거리던’ 모습을 회고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학생들이 마음 붙일 수 있는 교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라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학교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신승원 교장이 취재진에게 꽤 두툼한 책자를 하나 건넸다.
「천상중학교 학교공간혁신 사업백서 2019」라고 쓰인 책을 펼쳐보니 첫 장에 ‘①준비단계 ②개요 및 프로세스 ③워크숍 ④기본계획 ⑤설계 및 시공’ 등 일목요연한 목차가 보인다. 말 그대로 천상중학교가 이룬 공간혁신의 모든 것에 대해 기록한 책이었다. 놀랍게도 책에는 교사와 학생들의 회의일지, 학생들이 직접 그려서 만든 공간 디자인, 교사·학부모·학생들이 한데 어우러져 토론하는 사진까지, 새로운 공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꾸며졌는지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공간혁신은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이 바뀌기까지의 기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들이 언제든 찾아가 쉬고, 놀며 배울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느냐에 따라 교육적 효과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천상중학교의 공간혁신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타 학교들은 유휴교실과 여유 공간을 활용해 변화를 추구했지만, 천상중학교에는 그런 여유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공간혁신 사업에 참여시켰던 것이다.

  • 중앙현관 벽의 타공판에 붙어있는 메모지에는 학생들의 메시지가 자유롭게 담겨있다.
  • 학생들이 직접 그린 벽화. 천상중학교의 포토존이다.
5개의 새로운 공간, 5배의 행복

천상중학교는 공간혁신 사업을 통해 총 다섯 군데의 공간을 새롭게 만들었다. 방문객들이 가장 먼저 만나면서 동시에 감탄하는 곳은 중앙현관이다. 의자와 화분 하나만 놓여있던 황량했던 이곳은 소공연을 열고 전시를 할 수 있는 만남과 쉼의 공간으로 확 바뀌었다. 중앙에 놓인 커다란 나무를 중심으로 소파를 배치했고 한켠에는 학생들이 직접 꾸민 작은 소녀상이 놓여있다. 안쪽에는 단을 살짝 높여 학생들이 즉석에서 피아노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벽에 부착한 타공판에 빼곡하게 붙여놓은 메모지들은 이곳에 대한 학생들의 애정도를 짐작케 했다.
3층에 있는 교무실 앞 복도 역시 완전히 탈바꿈했다. 원래 분리수거를 하는 자리였던 이곳을 소통과 공감의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화사한 색의 벽면과 은은한 조명이 설치된 이곳은 학생들과 교사,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부모들이 보다 적극적인 상담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도록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신승원 교장은 공사를 할 때 예산을 절약해서 1980년대 느낌이었던 교무실도 쾌적하게 바꿨다고 전했다. “교사들이 행복해야 학생들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이 명쾌하게 울린다.
급식실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썬큰(Sunken, 지하에 자연광을 유도하기 위해 대지를 파내고 조성한 곳)’도 감탄사가 나오긴 매한가지다. 점심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휴식을 취하고 야외수업도 할 수 있는 이 공간은 뻥 뚫린 파란 하늘과 햇빛을 만끽할 수 있는 다목적 휴식공간 겸 학습공간, 놀이공간이다. 접고 펼 수 있는 그늘막, 작은 무대, 대형거울, 흔들의자 벤치 등은 학생들이 각자의 목적에 따라 마음껏 이용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4층의 옥상은 죽은 공간을 살려낸 대표적인 경우다. 안전을 위해 쉬는 시간에만 열리는 이 공간에 들어서자 절로 입이 벌어진다.
바로 앞에 문수산의 짙푸른 녹음이 펼쳐져 있고,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가 폐부 가득 안겨드는 느낌 때문이다. 또한, 야외 공간 역시 천상중학교의 자연친화적인 명소다. 예전에는 구석진 곳에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출입을 금했지만, 지금은 벤치와 그네를 설치하고 바닥에 놀이 그림을 그려 놓아 음지였던 이 공간을 양지로 이끌어낸 것이 이채롭다. 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이면 색색으로 물든 단풍을 볼 수 있는 이곳을 통해 학생들은 사계절을 온몸으로 만끽하게 될 것이다.

(왼쪽)교무실 앞 복도를 카페처럼 꾸몄다. 소통의 공간이자 기다림의 공간으로 이용객들로 항상 북적인다. (오른쪽)급식실 바로 옆 공간인 ‘썬큰’에서는 야외수업, 공연 등이 열린다.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조성된 옥상에서는 아름다운 풍경이 학생들을 반긴다.
“공간혁신은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이 바뀌기까지의 기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들이 언제든 찾아가 쉬고, 놀며
배울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느냐에 따라
교육적 효과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왼쪽)학생들이 직접 쓴 글과 예쁜 손 글씨로 꾸민 벽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른쪽)공간혁신으로 새롭게 꾸며진 천상중학교가 어서 빨리 학생들을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
내가 직접 꾸미는 우리의 공간

천상중학교의 공간혁신 사업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교사·학부모·학생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이 중심 역할을 했고 1학년 자유학기 주제 탐구반 학생들과 본교 담당 건축사가 함께 교육과정 속에서 매주 1회 공간혁신에 관해 토의를 하며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공간 활용 아이디어 공모전, 워크숍, 디자인 설명회, 교직원 협의회 등의 과정을 거쳐 공사를 시작했죠.”
학생들은 교내 벽화디자인 공모전, 공간활용 아이디어 공모전에 참가해 자신들이 꿈꾸는 학교의 이미지를 아낌없이 내놓았고, 교사와 학부모들은 공간혁신 설문조사에 참여해서 각자가 원하는 학교상을 내놓았다.
“학생들은 예비 장소 리스트 중에서 선호하는 5곳을 각자 추천했고, 토론을 통해 조별로 각각 5곳을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6개 조에서 추천한 장소 중 가장 선호도가 높은 5곳을 학교공간혁신 장소로 선정했어요.”
그 장소를 어떻게 꾸밀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직접 나누었다. 번뜩이는 생각도, 다소 과한 생각도 있었지만 학생들은 자신이 내놓은 의견이 현실이 된다는 사실에 신기해하고 흥분했다.
“공간뿐만 아니라 모든 사안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학생들이 주인의식을 갖습니다. 공간혁신의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죠. 공간혁신 사업 외에도 교실에 옷걸이를 만들고, 복도에 의자를 설치하고, 칸막이 탈의실을 만든 것도 모두 학생들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지금 시기의 학생들에게는 만들고 도전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간혁신 사업 자체를 학생들을 위한 또 다른 교육과정으로 인식해 적극적으로 그 과정을 활용했다는 신승원 교장.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진 개학을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이 공간들에 학생들이 직접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만든 공간에 달려가 즐기는 환한 미소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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