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는 급변한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바로 학벌효과의 쇠퇴다. 대부분 학벌효과가 예전만 못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대입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처음 직업을 구하는 신입사원의 경우에는 학벌 외에 마땅히 볼 게 없다. 하지만 1년만 지나면 경력사원이다. ‘신입사원’에게 학벌이 중요하다면 ‘경력사원’에게는 무엇이 중요할까?
경력사원 채용에는 ‘평판조회’가 결정으로 작용한다. 전통적인 채용과정,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과했더라도 평판조회 결과 때문에 채용하지 않는 경우가 빠르게 늘고 있다. 기업에서는 학교를 나와 사회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알고 싶을 때, 주로 평판조회 방법을 쓴다. 한 취업중개회사에서 기업들에게 평판조회를 통해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인성과 성격(55.6%), 대인관계(48.1%), 업무능력(46.7%) 등이 높게 나왔다. 채용을 거의 확정했지만 평판조회 결과 때문에 불합격 처리하는 이유도 여러가지다.
‘인성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아서(39.8%)’, ‘전 직장 이직 시 태도가 좋지 않아서(31.2%)’, ‘직장 상사 및 동료와의 불화가 잦아서(28%)’등으로 확인됐는데, 역시 사람 됨됨이가 중요한 판단기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직은 학벌이 좋으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유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이기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인성’에 문제가 생긴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1년 차 이하 신입사원의 퇴사율이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비뚤어진 인성 때문에 단체생활에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미국의 로봇 공학자인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이 표현한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 인공지능에게는 쉽고, 사람에게 쉬운 일이 인공지능에게는 어렵다는 의미다. 문제를 풀어 정답을 맞혀야 하는, 학벌을 얻는 데 필요한 요소들은 인공지능이 월등하다. 반면 공감하고, 양보하고, 협력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감당할 수 있을까? 학벌경쟁에 유리하지만 사회생활에는 불리하고, 학벌경쟁에는 불리하지만 사회생활에는 유리한 경우를 생각해본다. 예전처럼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정년퇴직하는 경우가 많다면 어쩔 수 없이 학벌에 매달려야 한다. 하지만 경력사원으로 계속 직장을 옮겨 다녀야 한다면 ‘인성’도 함께 챙겨야 한다. 평판에 따라 자칫 인성이 나쁜 사람으로 결정된다면 헤어 나올 길이 없는 것은 아닐까? SNS와 같은 디지털 세계에 남는 흔적들이 미래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올바른 인성과 미래 역량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OECD 교육 2030: 미래 교육과 역량(OECD Education 2030:The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프로젝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비롯한 29개 국가가 참여하는 교육사업으로, OECD가 2015년부터 학교 교육 혁신을 위한 방향 설정을 염두에 두고 출범된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사람들이 함께 모였을 때, 인공지능에 의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즉, 기업에서 ‘평판조회’를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것들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 공교육이 추구하는 핵심 역량에도 공동체 역량이 있다. 공동체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당연히 공동체 생활을 경험해야 하는데 현실은 어떠한가?
대가족공동체, 마을공동체, 이웃공동체, 골목공동체, 또래공동체에서 살았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현재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학교와 가정 정도다. 그러나 만약 학교생활의 목적을 성적 경쟁에 두고 있다면 공동체성을 경험하는 일은 물 건너간다. 남는 것은 가정인데, 비록 핵가족인 가정이 많지만 평판조회의 핵심인 ‘인성’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면 매우 소중하다.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가족이 함께 모여 있는 시간이 늘고 있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일들이 정말 중요한데 서로 존중하고, 양보하고, 협력하는 경험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기적인 것보다는 이타적인 생활이 더 좋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경험해야 한다.
핀란드의 경쟁력 중 하나로 자리한 것으로, 핀란드가 사회적으로 창안한 ‘이야기 대화법’을 자녀들과 연습하며 존중하고 공감하는 대화법부터 실천해보자.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고로, 집에서 먼저 ‘인성’을 길러야 한다.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경험하는 일들이 미래 역량의 토대가 될 것이다. 공감하고, 양보하고, 협력하는 공동체 생활은 지금의 행복뿐만 아니라 내일도 환하게 밝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