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55] 인생 2모작

선생님은 퇴직 후에도
개학을 기다린다

재능기부 활동가 김광학 회원

37년 교직 생활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데, 신기하게도 서운하지 않았다. 서운함이 전혀 없을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헛헛함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다음 수업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물리 교사에서 방과 후 수업 교사이자 사서 도우미로 그는 다시 선생님이 되어 돌아왔다. 학교 종이 울리면, 김광학 회원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린다.
  • 글. 이성미
  • 사진. 김도형

37년 차 물리 교사에서 신입 교사로

2018년 8월, 부산 남구 동천고등학교를 마지막으로 김광학 회원은 37년간 교직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아니, 쉼표를 찍었다. 퇴직 후 그가 곧장 향한 곳은 부산퇴직교직원센터. 퇴직 교직원의 재능기부, 봉사활동 등 사회참여 기회를 돕는 기관이었다. 다행히 집 가까이에 있는 동백초등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하는 저학년 학력증진반 학생들의 학습 도우미를 찾고 있었고, 곧장 2학기부터 출근을 결정했다.
“퇴직 후 여행을 할 수도 있고, 쉬면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할 수 있는 한 일을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매사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마른 땅에 물이 스미듯 가르치는 내용을 흡수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신입 교사 시절 느꼈던 설렘이 다시 찾아오는 듯했다. 이듬해인 작년 1학기부터는 중학교 방과 후 수업의 과학반도 맡게 되었다. 오전 수업이 있는 해운대구 동백초등학교에서 오후 수업이 있는 사하구 장평중학교까지 거리는 약 27km.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먼 곳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내가 필요하다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느냐”라며 단번에 수락했다. 물리 교사로서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학생들이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도록 핵심 내용을 친근한 동요 멜로디에 실어 ‘과학송’을 만들어 가르치곤 했습니다. 중학교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주요 이론을 동요로 만들어 가르쳤더니 잘 따라서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노래를 제법 합니다. 허허허.”
금요일 저녁 귀갓길, 다시 오랜 시간이 걸려 집에 돌아오면서도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생각하면 절로 힘이 난다. 앞으로 20년은 끄떡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2모작 무대에서 꿈을 펼치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남는 시간에는 김광학 회원도 학생이 되어 공부했다. 더 많은 것을 배워서 더 오래 가르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퇴직 후 3개월 만인 2018년 11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60+ 직업소양교육 시니어 전문 강사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복지관, 시니어클럽 등을 찾아가 어르신 일자리 직업소양교육도 하게 되었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데에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더 좋은 강의를 들려드리기 위해 저도 늘 공부를 합니다.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한국교육인증평가원에서 주관하는 노인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도 취득했고요.”
2019년 1월에는 중학교 무한상상교실에서 봉사할 수 있는 부산형 메이커교육 프로그램 과정, 11월에는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실시하는 정보보호지킴이 교육 과정도 수료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어르신들의 금전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불법 스팸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리고자 복지관을 방문할 예정이다.
퇴직 후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그는 8세 어린아이부터 80세 어르신까지 전 연령층을 가르칠 수 있는 만능 교사가 되었다. 더욱더 좋은 것은 이토록 바쁘게 살아도 남는 시간이 생긴다는 것. 스케치북의 여백에 어떤 그림을 그릴까 고민하듯, 일주일 일정을 수첩에 적으며 그는 여가에 할 일을 찾아낸다. 주말에는 가끔 부산광역시 무료급식봉사센터에 나가 배식 봉사도 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며 ‘홍길동’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세상에 작은 일은 없습니다. 내가 왕년에 무엇을 했고,
그러니 지금은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공식도 없고요.
많은 사람들이 퇴직 후 소소하지만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을 하면 좋겠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더라고요.”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지난해 2학기부터 그는 해운대구 송정초등학교에서 오전 시간에 도서관 사서 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웃음 많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도서관으로 달려와 그의 옆을 따라다니며 쉴 새 없이 재잘재잘 떠들어댄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1학년 학생들이 제게 쪼르르 달려와서 묻더라고요. ‘선생님, 방학 끝나도 계속 여기 계실 거죠?’라고요. ‘그래, 할 수 있다면 너희 졸업할 때까지 있으마’ 했더니 까르르 웃으며 또 교실로 달려가요. 선생님 한 마디에 호호 깔깔 웃는 그 모습이 참 좋아요. 바라만 봐도 좋아요.”
매일 웃던 아이가 어느 날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슬쩍 다가가 고민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잠시 짬이 날 땐 학생들과 연날리기 등의 전통 놀이도 함께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일찍 출근해 길가를 청소하고 화단 잡초도 뽑는다. 등굣길에 학생들이 고개를 돌려 학교를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 예쁜 꽃이 있기를,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는 매일 소매를 걷어붙인다.
“세상에 작은 일은 없습니다. 내가 왕년에 무엇을 했고, 그러니 지금은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공식도 없고요. 많은 사람들이 퇴직 후 소소하지만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을 하면 좋겠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더라고요.”
퇴직 후 생긴 여유 시간을 그는 작지만 보람찬 행복으로 채우고 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그의 마음이 그것을 따르자고 말한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특히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우리말·우리글을 가르치면서 그 아이들에게 자존감과 희망을 듬뿍 안겨주는 것이에요.”
더러 학생들이 그에게 나이를 물어 올 때면 그는 “글쎄, 나도 내 나이를 잘 모르겠는 걸” 하고 답한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 열정이 식지 않는 한 나이를 잊고 산다고 한다. 여전히 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귀와 ‘과학송’을 잘 부를 수 있는 목청을 지녔다. 교문이 가까워져 올수록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가까이 들리고, 그곳에 자신의 행복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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