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55] 인생 2모작

인생의 박자를 찾는
도전이 시작되다

루비 밴드 리더 박혜홍 회원

인생에도 박자가 있다면, 박혜홍 회원은 자신만의 박자를 찾아가는 사람이다. 도덕 교사에서 록밴드의 리더로, 드러머로 변신한 그는 자신의 뜻에 따라 선택하고 즐기는 삶을 살아간다. 기본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박혜홍 회원이 찾는 인생의 비트. 그 박자가 궁금하다.
  • 글. 차지은
  • 사진. 김도형

소통의 바탕을 만들어 준 밴드 활동

“비트와 도덕은 모든 것의 ‘기본’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 묵직함에 끌렸던 것 같아요.”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박혜홍 회원은 드럼 스틱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쿵쿵’, 박자를 찾아가는 드럼 소리에 한 겹 두 겹 선율을 얹으면 어느덧 흥겨운 리듬이 완성된다. 환갑이 되던 6년 전, 서울 신동중학교를 끝으로 교직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박혜홍 회원은 시니어 밴드 ‘루비 밴드’의 리더로 인생 2막을 열었다.
루비 밴드 이름은 신선함(Refresh), 비범함(Uncommon), 아름다움(Beautiful), 젊음(Young)의 앞글자를 딴 ‘루비족’ 에서 빌려왔다. 지난 38년간 오롯이 도덕 교사의 길을 걸어온 박혜홍 회원의 삶과 루비 밴드.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다른 삶이지만, 그 바탕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도덕이 기본 소양이 되잖아요? 드럼은 모든 음악의 기본을 만들어준다는 점이 같더라고요. 그리고 심장 소리와 비슷한 드럼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고요. 저는 기본을 갖추고 있다면 표현방식은 조금 자유로워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든, 무대에서든 기본기가 탄탄하면 언젠가는 알아주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처음 밴드에 눈을 뜬 건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서였다. 교편을 처음 잡았을 때만 해도 재미있고, 친구 같은 선생님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과 멀어지는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고.
“맡은 과목이 도덕이기도 하고 퇴직 즈음에는 학생부장이라는 악역도 맡았었거든요. 학생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무섭고 답답했겠어요. 그런 장벽을 허물고 학생들과 다시 편하게 소통하고 싶었죠.”
밴드의 ‘밴’ 자도 모르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같이 밴드를 하자고 제안하니 학생들은 당황할 수 밖에. 그래도 잘 따라와 준 학생들 덕분에 학교 축제에서 사제밴드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 추억은 박혜홍 회원이 새로운 삶을 찾게 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나이 많은 선생님인 나도 했는데, 주변의 제 친구들도 얼마 든지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은퇴 후에 재미없게 집에만 있지 말고 같이 음악하자고 여고 동창들을 모았어요. 그렇게 루비 밴드가 결성됐죠.”

“ 학생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세요?
학생들과 함께하는 생활은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여전히 제가 가르치던 학생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했다는 아주 큰 자부심도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어요.
그간의 경험을 잘 살려서 앞으로 한국의 윤리와 도덕적인 생활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일에 이바지하려 합니다.”
도전으로 배우고 성장하다

박혜홍 회원은 ‘밴드’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학생들과 다시 즐겁게 소통했을 뿐 아니라, 오랜만에 고교 동창들을 하나로 엮게 하는 값진 수확을 얻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밴드를 하면서 ‘모든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어요. 그동안 교사의 위치에서 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었는데, 밴드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결국, 밴드 활동은 서로 통하는 것이 있어야 가능하더라고요. 밴드를 통해 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어요.”
루비 밴드는 드럼의 박혜홍 회원을 리더로 해 기타, 베이스, 키보드, 보컬로 이루어진 록밴드다. 이화여고 동창생들이 모인 아마추어 밴드로 출발했지만, 다양한 무대에 오르며 자신들만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우연히 오른 무대를 계기로 TV 뉴스에 출연하기도 했고, 이를 통해 tvN 예능프로그램 음악동창회 「좋은가요」에서 47년 우정을 이어온 60대 밴드로 소개되며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 듯해요. 루비 밴드가 실력이 뛰어나지 않지만, 저희 이야기에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집중해 주셔서 연습과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게 되었죠.”
60대 시니어 밴드라고 해서 어설픈 무대를 보여줄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 박혜홍 회원의 인생 2막은 계속되는 도전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전통이나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싶어요. 선생님이 록밴드를 한다고 하면 얼마나 파격적인가요. 우리 여고 동창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시선은 있었어요. 하지만 전 밴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중이죠.”

은퇴, 새로운 여행의 시간

그에게 밴드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자신만의 색으로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삶. 밴드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 또한 박혜홍 회원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다.
“밴드를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5명의 각기 다른 사람이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면서 서로 화합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으니까요. 안그래도 요즘 코로나19로 연습하기가 마땅치 않은데 이번 시간을 기회 삼아 재정비하려고 해요. 많은 분들이 여전히 관심 갖고 집중하고 계시기에 저희 스스로 준비를 더 잘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박혜홍 회원의 인생 2막은 아직 시작 단계다. 시니어 밴드 외에도 다양한 꿈이 내면 깊숙한 곳에서 뜨겁게 꿈틀댄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일은 계속하고 싶어요. 가족밴드를 만들거나 제자들과 다시 모여서 사제밴드를 부활시키고 싶기도 해요. 일본이나 미국에서 공연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작은 마을에서 할머니 밴드를 하는 거죠.”
그런 그의 마지막 꿈은 책을 집필하는 것이다. 집필을 위해 윤리교육 박사학위도 목표로 하고 있다. 박혜홍 회원은 학생들이 보낸 편지와 선물을 주섬주섬 꺼내 보이며 말했다.
“학생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세요? 학생들과 함께하는 생활은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여전히 제가 가르치던 학생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했다는 아주 큰 자부심도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어요. 그간의 경험을 잘 살려서 앞으로 한국의 윤리와 도덕적인 생활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일에 이바지하려 합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달리는 박혜홍 회원. 그는 시간에 따라 저절로 늙는 노인이 아닌 스스로를 갈고 닦아 완성된 ‘어른’이 되려 한다.
“날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타인을 감싸 안을 줄 아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은퇴 후에도 배움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죠. 늦은게 어디 있나요? 꿈은 실현하라고 있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선 체력 관리가 필수예요. 그리고 현직에 있을 때부터 자신을 위한 취미를 꼭 갖길 바라요.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하며 그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가는 박혜홍 회원. ‘진정한 나’를 찾아준 은퇴 후의 시간에 감사하며, 그는 오늘도 드럼 앞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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