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55] 인생 2모작

일상을 채우는
은은한 커피 향기

바리스타 이평기 & 허영이 부부

노랗게 무르익은 가을 들판이 따사로운 햇살에 반짝인다.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풍경 가운데 자리 잡은 한 카페. 이곳에서 이평기·허영이 부부는 매일같이 커피를 볶고 내린다. 누군가는 오래도록 꿈꿔왔던 평화로운 일상이라고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부에게 카페 운영은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다. 앞으로도 50년은 더 살아야 하는 100세 시대. 두 사람은 이제 겨우 새로운 도전의 첫 장을 넘겼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서

바라만 봐도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이평기·허영이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는 자리는 그 유명한 동요 ‘노을’의 배경이 된 곳이다. 덕분에 부부는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요즘, 저녁마다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는 장면을 바라보곤 한다. 평택시내에서도 차를 타고 한참 들어와야 하는 자리에 두 사람이 카페를 차린 까닭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평택은 제 고향입니다. 근처에서 교직 생활을 하기도 했고요.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아내와 상의하고 평택 주변을 비롯해 강원도까지 땅을 알아보다가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제가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한 곳이 근처에 있는 오성중학교여서, 예전에 한두 번 와본 기억도 있고요.”
이평기 회원이 평택시 오성면 창내리에 카페를 연 배경을 이야기했다. 카페는 부부에게 집이자 일터다. 실제로 1층은 카페로 운영하고, 2층에서 부부가 생활한다. 코로나19로 손님이 예전처럼 많지는 않지만, 부부가 내린 커피를 좋아하는 단골들이 꾸준히 카페의 문을 두드린다. 두 사람을 아끼는 지인들도 인근을 오가다 카페에 들르고는 한다. 집만 있으면 선뜻 찾아오기 어려운 사람들도 ‘카페에 간다’는 마음으로 편히 이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부부가 함께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도 나뉘었다. 커피 맛에 조예가 깊은 이평기 회원이 로스팅을 전담하고, 허영이 회원이 커피를 내린다. 매주 수요일이면 이곳에서 커피 동호회 모임이 열린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취향과 커피 경험을 이야기하며 교류하는 자리다.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근무하는 미군들도 가끔 이곳을 찾는다.

“남편이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돌아보니 커피처럼 사람과 친해지기 좋은 도구가 없어요.
손님이 왔을 때 커피를 내놓으면
‘커피 드실래요?’ 하고 말문을 틀 수 있고,
‘커피가 맛있네요’ 하고 대화를 이어갈 수도 있죠.
카페를 하니까 지인들도 편안하게 우리집에 찾아옵니다.”
끝없는 도전으로 빛나는 인생 2막

카페 운영은 갑작스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허영이 회원이 교직에 있는 동안 이평기 회원은 혼자 평택대학교 근처에서 몇 년 동안 작은 카페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중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이평기 회원이 사업가에서 다시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국회보좌관을 지내고 마지막에 선택한 직업이 바로 바리스타였다.
“교사는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래서 교직에 몸담으면 외길을 걷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저는 거의 5년 단위로 직업을 바꾸었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는 삶에도 배울 거리가 분명히 있지만, 그보다 저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서 굳이 한 가지 직업만 가지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시골 학교 선생님’으로 교직에 몸담았을 시절, 이평기 회원은 누구보다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농자재 판매에 뛰어들었고,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보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가 우연찮게 국회보좌관으로도 근무했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다음 행보를 고민하다가 오랫동안 좋아한 커피를 떠올렸다. 애호가가 아닌 전문가로서 커피를 다뤄보자는 생각으로 1년 동안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직접 로스팅을 시작했다. 장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매출이 괜찮게 나왔다.
“농자재 판매는 잘 된다면 한 번에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위험 부담이 컸어요. 카페는 매일 현찰이 들어오는 재미가 있죠. 2012년에 카페를 열고 초반에는 매출이 꽤 좋았습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주변에 카페가 너무 많이 생겨서 점차 경쟁이 심해졌어요. 변화가 필요했죠.”
커피 맛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가격경쟁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도심에서 로스팅을 하다 보니 제약도 많았다. 카페 이전을 결심하면서 허영이 회원에게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고, 고심하던 허영이 회원이 명예퇴직 신청을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낭만을 넘어선 삶

허영이 회원은 이평기 회원과 달리 인생의 대부분을 교직에 쏟았다. 교직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허영이 회원에게 카페 운영은 도전이었다. 2016년에 이곳에 카페를 연 이후, 커피 원두를 인터넷으로 판매하면서 마케팅도 맡았다. 온라인 최적화 마케팅을 새롭게 공부하며 블로그를 개설해 카페의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공유하고 있다.
“손님들이 항상 ‘맛있다’고 호평해주시지만, 인터넷 판매는 해보니 또 달라요. 그래도 새로운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재미와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남편이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돌아보니 커피처럼 사람과 친해지기 좋은 도구가 없어요. 손님이 왔을 때 커피를 내놓으면 ‘커피 드실래요?’ 하고 말문을 틀 수 있고, ‘커피가 맛있네요’ 하고 대화를 이어갈 수도 있죠. 카페를 하니까 지인들도 편안하게 우리집에 찾아옵니다.”
사는 곳이 곧 카페다 보니 월세 걱정은 덜었지만, 카페 운영으로 수익을 내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인생 2막을 준비하면서 카페 운영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부부는 ‘이만큼 투자했으니 얼마 이상 이익을 내야 한다’고 접근한다면 오히려 쓰라린 경험을 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모든 삶이 카페에 종속되어 버려요. 커피라는 음료는 낭만적이지만 커피 장사를 낭만적으로 하면 망하거든요.”
교직에서 물러나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인생 2모작을 논하기에는 앞서 길을 걸어가시는 인생 선배들이 많아 아직 조심스럽다”고 이야기한다. 100세 시대인 지금, 한창 50대를 지나는 두 사람이 살아가야 할 날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부부는 앞으로의 삶도 물 흐르듯 유연하게 맡기려 한다. 매일 마시는 향기롭고 묵직한 커피 한 잔이 주는 힘에 기대어.

「인생 2모작」은 동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커피와 함께하는 두 번째 인생을 선택한 이평기, 허영이 부부의 향기로운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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