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인터뷰 2

틈새교육과 융합교육으로
학생 성장을 꿈꾼 참스승

인천 세일고등학교 홍석헌 교사 홍석헌 교사는 참 좋은 스승이다. 그러나 왜 좋은지, 무엇이 좋은지 한 문장으로 담아내는 것은 꽤나 고민스럽다. 도롱뇽알을 품고 학생들과 함께 산을 누비고, 학생들에게 커피와 드론을 배우고, 또 함께 지역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는 그를 한마디로 규정 짓기는 어려운 탓이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그가 있는 곳엔 언제나 학생들이 있고, 학생들이 있는 곳엔 언제나 그가 오롯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 글. 이경희
  • 사진. 김도형

학생들에게서 가능성을 찾다

“안녕하세요? 세일고등학교 미래메이커 부장 홍석헌입니다.” 온화한 미소가 인상적인 홍석헌 교사에게 자기소개를 청하자 간결하면서도 어려운 문장이 돌아온다. 첫인사부터 “네? 미래메이커요?”하는 반문이 나온다.
세일고교에서 홍석헌 교사에게 맡긴 책무는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 다양한 교과 외 활동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막막해 보이지만,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왜 홍석헌 교사가 이 일을 맡게 됐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천 세일고교에서만 무려 29년 3개월째 근무 중인 그는 제삼자가 보자면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 길을 걷고 있다. 하나는 창의과학활동, 또 하나는 봉사활동이다.
“처음 임용된 후에는 과학 과목 하나만 담당했어요. 제 전공 이 화학이었는데 교사로서의 희망이 ‘크리스마스 과학강연’ 을 하는 거였어요. 이는 영국 왕립연구소에서 크리스마스 시기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30~50개에 달하는 실험을 이야 기에 맞춰서 한 번에 2시간 30분가량 계속 해주는 강연을 말해요. 그걸 보고 ‘내가 가야 할 길은 이거다’ 싶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방식을 고수해왔습니다.”
재미있는 과학시간을 고집스럽게 이끌어나가고자 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강의는 재미있는데, 수능 시험에 도움이 되나요?”라는 학생들의 불안이 깊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결국 판서를 하고, 문제 풀이를 하는 전통적인 수업 방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 대학입시 전형에 ‘수시’라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입시도 있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대학을 가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홍석헌 교사는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게서 가능성을 찾고, 틈새교육을 통해 성장시키길 원했다. 그리고 2013년, 동료 미술교사가 홍석헌 교사에게 큰 힌트를 줬다. “선생님, 누구는 개미 연구가 꿈이고, 누구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 하고, 또 누구는 헬리콥터를 잘 날린대요.”
그는 학생들을 하나씩 만났다. 그리고 “너 개미 연구하니? 나랑 같이할까?” “너 바리스타 공부한다며? 나도 커피 좋아하는데 나 좀 가르쳐줄래?” “헬리콥터를 잘 날린다면서? 나 요즘 드론에 관심 있는데 네가 배워서 나 좀 알려주면 안 돼?” 라고 물으며 다가갔다.

“저는 고교 시절에 저를 인격적으로
대해주셨던 선생님들께 큰 영향을 받고
교사가 됐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강요나 충고가 아닌,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융합형 창의활동이 빚어낸 기적

이미 창의과학동아리, 사진영상반, 녹색환경지킴이 동아리 등을 운영하고 있었던 그는 그렇게 각각 다른 분야에 관심 보이는 학생들을 모아 자연스럽게 융합을 이뤄냈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게 아니라, 학생들한테 배워야 할 것을 찾아낸 시간이었습니다.”
세일고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원적산의 도롱뇽’ 이야기다. 이 또한 홍석헌 교사와 학생들이 거둔 결과물이다.
“2000년대부터 과학창의재단에서 과학탐구반을 운영했어요. 저는 초창기 멤버였는데 활동 소재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한번은 선배 교사에게 ‘할 게 없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주변에서 찾으라고 조언해주시더라고요. 둘러보니 학교 뒤에 원적산이 있었어요. 이 산이 절개지(도로를 내거나 시설물을 건축하기 위해 산을 깎아 놓아 비탈진 곳)였거든요. 왜 식물이 안 자라고, 작은 동물들이 살지 못하는지에 의문을 품으면서 학생들과 함께 환경과 과학을 결합한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홍석헌 교사와 학생들은 이곳에 도롱뇽 80~100여 개체가 서식하고 있지만 콘크리트에서 배출되는 독성물질로 인해 도롱뇽 알이 폐사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학생들은 도롱뇽 알을 가져다가 직접 부화시켰고 2014년에 200마리, 2016년에 500마리 등을 원적산에 방생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활동은 각종 대회에서 큰 상을 수상하며 ‘세일스팀(SEIL STEAM)’이라는 동아리 이름을 전국에 알렸다.
그런 와중에 북한 이탈 주민을 도울 기회가 찾아왔다. 이미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학생들과 꾸준히 해온 그였지만 이번에는 좀 특별했다. 인천시 서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북한 이탈 주민의 정착을 도와줄 수 없겠냐고 직접 연락이 온 것이었다. 홍석헌 교사는 휴대폰 사용이나 병원 이용, 초등학교 생활 등 일상에서 여러 가지로 곤란을 겪고 있는 이탈 주민들의 사례를 들었고, 학생들과 함께 국내 정착을 위한 활동을 돕겠다고 결정했다.
“학생들에게 공부와 상식을 가르쳐 줬어요. 같이 게임도 하고, 놀이도 했습니다. 호국보훈 활동을 하면서 이탈 주민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덕수궁, 경복궁, 강화도 일대를 계속해서 탐방했어요. 이렇게 활동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돕고 싶더라고요. 다문화가족, 일제강점기 때 강제 징용당한 사할린 교포들까지 대상을 점차 넓혀갔습니다.”

길을 인도하는 스승의 삶

그다음은 지역사회였다. 정작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에 모두가 머리를 모았다. 학생들은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숲 해설을 들을 수 있도록 공원 8개를 VR로 촬영하고, 쇠락해가는 부평시장을 살리기 위해 광장시장, 통인시장 상인연합회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출입구만 33개인 복잡한 지하상가를 직접 목발 짚고 다니며 장애인이동권에 대해 조사했다.
“환경과 과학, 봉사. 이 모든 것들이 융합된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크게 나타난 변화는 바로 ‘남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자신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 뛰어난 사람,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더라고요. 또 다양한 대외 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더불어 생각하는 능력도 크게 자랐어요. 그렇게 대학에 간 학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길을 지금도 스스로 개척하고 있습니다.”
홍석헌 교사가 디제잉을 했던 학생, 개미를 연구하는 학생, 최고의 커피 연구가가 되고자 노력하는 학생 등 반짝거리는 별 같은 학생들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저는 고교 시절에 저를 인격적으로 대해주셨던 선생님들께 큰 영향을 받고 교사가 됐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강요나 충고가 아닌,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홍석헌 교사는 오늘도 교사들과 머리를 맞댄다. 학생들이 지닌 재능과 교과 활동을 연계시키기 위한 작업을 연구하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 말이다.
“훗날 제 부고 소식이 제자들에게 알려졌을 때, ‘아, 훌륭하신 선생님이었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제가 교사로서 소임을 다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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