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45] 티처 & 티처

자녀들의 다양한 중독,
부모의 사랑으로 치유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자녀들이 디지털 기기 앞에 앉아 있는 ‘스크린 타임’이 크게 늘었다. 아이의 인생을 망칠 것 같은 ‘중독’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절박하게 들린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의 중독 예방은 사랑과 돌봄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
  • 글. 박재원(사람과 교육연구소 부모연구소장)

아이 탓을 하기 전에 사회를 들여다보자

“사춘기가 온 중학생 때부터 아이가 저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갈수록 사이가 나빠져 아이는 게임으로 점점 더 빠지고 지금은 따로 혼자 살고 싶다고 합니다.” 부모들이 터놓는 이런 얘기들은 흔하다. 그런데 우선, 중독은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실제로 중독 걱정을 하지 않는 부모가 별로 없다. ‘다른 집 애들은 다 멀쩡하게 공부 열심히 하는데 왜 내 자녀만 속을 썩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사실적이지도 않고 아이를 원망하는 마음만 키워 상황을 악화시킬 따름이다.
다음으로 아이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중독 없는 세상을 위한 연구 네트워크 ‘중독 포럼’의 가톨릭 의대 이해국 교수는 “우리나라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저렴하게 소주와 같은 도수 높은 술을 사 마실 수 있는 나라, 손가락을 가누기 시작하는 유아 시절부터 스마트폰 게임에 빠지는 나라, 어디든 장외 발매소가 있어 편리하게 경마 베팅을 할 수 있는 나라, 의존성 높은 향정신성의약품을 손쉽게 처방받을 수 있는 나라여서 중독에 무방비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환경이나 문제가 아이들을 중독이라는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 아이도, 문제 부모도 없다. 다만 환경이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야 자녀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게임만 하는, 부모를 괴롭히는 ‘가해자’가 아니라 오염된 성장환경의 ‘피해자’로 자녀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독은 소통 부재의 증상

가장 중요한 것은 ‘중독에 대한 비주류 이론’을 제대로 깊이 있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 일례를 살펴보자. 1960년대, 베트남 참전 미군의 20%가량이 헤로인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만약 전쟁이 끝나면 많은 ‘마약쟁이’들이 미국 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을 연구한 보고서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그들은 금단증상도 없고 전문치료기관에 보내지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온 군인들의 95%는 약물 사용을 멈췄다. 어느 순간에나 죽음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헤로인을 사용하는 건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위한 절박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전쟁이 끝나고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중독 상태에 의지해야 할 이유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우리가 행복하고 건강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부터 위로받으려 한다. 그것이 비디오 게임, 도박 혹은 코카인일 수도 있다. 중독은 ‘소통의 부재’라는 위기의 한 증상일 뿐이다.
수많은 위기 학생들을 보면 이미 중독 증상이 심각한 경우에는 주변에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확인한 사실이 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딱 들어맞는다. 같은 인간으로 진심을 다해 존중하고 공감하면 흘러나오는 그들의 사연은 절절하다.
‘중독은 소통 부재의 증상일 뿐’이라는 말이 들어맞는다. 중독 상태가 돼야지만 비로소 느끼는 마음의 안정이라도 없었으면 버티기 어려웠던 삶을 만나게 된다.
중독에 빠진 자녀를 구원하고 싶다면 이제 자녀를 달리 만나야 한다. 부모를 곤경에 빠뜨린 배신자, 남부끄럽게 만든 불효자식, 그간의 노고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배은망덕한 놈이라는 생각은 결코 안 된다. 화를 가라앉히고 부모의 진심을 회복해야 한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간 말 못 한 자녀의 속사정과 속마음을 만나야 한다. ‘소통 부재’의 결과로 자녀가 감내해야 했던 고립감과 좌절감 그리고 무력감 등이 느껴져야지만 중독에 빠진 아이를 구원할 수 있다.

존중과 이해의 손을 내밀자

집에서 늘 게임에 빠져 있던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게임이 재미가 없어졌다면서 운동을 싫어했던 아이가 마라톤에 출전하고 규칙적인 하루를 보낸다. 부모도 놀란 아이의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이는 말한다. “친구들과 친한 편인데 제가 변하지 않으면 교우관계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가족이지만 늘 갈등하는 관계에 놓여 있을 때와 집밖에서 자신에게 ‘소속감’과 ‘자율감’ 그리고 ‘유능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차이를 아이가 표현했을 뿐이다.
KBS의 「세계는 지금」에 소개된 네덜란드의 알코올 중독 치료 프로그램에서는 중독자들이 아침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캔 맥주를 2개씩 나눠준다. 그리고 취한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간단한 길거리 청소 같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일당을 지불한다. 점심때 맥주를 하나 더 제공하고, 오후 일과를 마치면 캔 맥주 2개를 또 나눠준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의무는 간단하다. 자신이 하루에 캔 맥주를 몇 개 마시는지만 기록하면 된다.
중독 치료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인데 과연 이 치료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 담당자의 말에 단서가 있다. “중독자들을 존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면 자존감이 무너집니다. 여기에서는 그들을 우리와 동등한 사람으로 대합니다. 저도 제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독 증상을 보이면 뜯어말리려 덤벼들거나 함부로 대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알코올’이 더욱 당기는 상태를 만든다는 역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만큼은 자녀와 잘 지내야 한다. 그러나 자녀를 존중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기가 어찌 쉽겠는가? 하지만 달리 길이 없다. 중독 치료를 위한 대부분의 시도가 오히려 중독을 갈망하게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말자. 더는 중독에서 존재감을 느끼려고 하지 않아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자존감을 스스로 느낄 수 있어야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아이들에게는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발적인 의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한데 그건 바로 ‘부모’다. 그런 다음에야 중독 치료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통하기 시작한다.
중독을 막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 간 상호 진실한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랑과 돌봄의 결핍을 최소화하여 자녀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보듬어주자. 또 자녀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마음도 필요하다.

services s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