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명사 인터뷰

내면의 중심을 찾아
삶의 ‘균형’을 지키다

포항공과대학교 인문사회학부 이진우 교수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열심히 산다. 하지만 극단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력과 무관하게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조금만 삐끗하면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무한경쟁 한 가운데로 자신을 던지게 한다.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 앞에서, 이진우 교수는 다시 철학을 이야기한다. 「The–K 명사 인터뷰」는 각 전공별 명사가 된 교수들을 인터뷰하는 코너로, 교육가족이 명사의 교육 가치관과 철학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삶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철학’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욕망은 익숙한 감정이다. 새로운 상품을 보면 갖고 싶고, 부유해도 더 많은 부를 원한다. 언젠가부터 ‘잘 산다’는 표현은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산다’는 의미로 더 자주 통하고 있다. 돈이라는 수단이 목적을 대체해버린 시대. 사람들은 배금주의(재물을 지나치게 숭배하여 모든 판단의 기준을 재물에 두고,그것에 집착하는 경향이나 태도)를 내면화하고 사유하기를 잊었다. 경제적 논리에 휘둘려 삶을 결정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런데 문득, 열심히 살면서도 무엇 때문에 사는지 알 수 없는 헛헛함이 밀려든다.
“외부 자극에 반응하며 남들이 좋다는 일에 휘둘리며 살다 보면 자기중심을 잡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계속해서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급속한 변화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번아웃을 겪게 되지요.”
끝도 모를 극단을 향해 치달으며 무작정 살아도 괜찮은 걸까. 이진우 교수는 오히려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이 철학을 바라보는 오랜 편견이 있습니다. 바로 ‘철학은 어렵다’는 것이지요. 철학을 학문으로만 대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학문은 어렵습니다. 철학만이 아니라 사회학이나 수학도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일상에서의 철학은 어렵지 않습니다. 철학은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문제는 잊고 정답만 찾으려고 합니다. 특히 제가 주로 만난 공학도들 중에서는 모든 문제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인생의 문제는 해답은 있어도 정답은 없지요.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고 난 다음에 비로소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첨단기술이 발전한 21세기에, 이진우 교수는 오히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극단에 처한 현대의 문제를 풀이할 해법을 구했다. 2021년을 앞두고 그가 출간한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설파한 중용과 균형 이론을 현실의 삶에 접목한 책이다.

극단의 시대, 균형으로 회복하는 삶

철학의 기원부터 현대 과학철학에 이르는 60여 권의 저서와 번역서로 한국 사회에 철학적 밑거름을 쌓아온 이진우 교수가 이 시점에 대중들에게 고대 그리스 철학을 전하는 이유가 있다. 기원전 500년경 고대 그리스에서도 경제 논리에서 비롯한 탐욕의 문제가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2500년경, 지중해 해상 권력을 장악한 아테네는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부를 쌓으면서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당시 철학자들은 ‘왜 사람들은 가진 것이 있는데도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이 탐욕의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부터 철학이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을 ‘삶의 예술’ 혹은 ‘삶의 기술’로 받아들였다. 이진우 교수는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 시대(고대 세계에서 그리스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한 시대)를 관통한 철학 조류인 ‘스토아 철학(기원전 3세기 초에 형성된 스토아 학파의 철학으로, 도덕 가치·의무·정의·굳센 정신 등과 같은 덕목에 중심을 두고 보편적인 우애와 넓은 자비심을 강조함으로써 가장 호소력 있는 학설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음)’이 강조한 중용과 균형 이론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실존적인 물음에 여전히 타당한 답을 전해준다고 이야기한다.
“균형이란 ‘6과 10의 중간은 8’과 같은 산술적인 중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이 제시한 중용은 모자람과 지나침의 중간입니다. 너무 과하거나 너무 적지도 않은 적당한 것을 가리키지요. 인생에서 균형을 찾고자 할 때 중간은 상황에 따라 매 순간 달라집니다.”
이론의 핵심은 간단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상식이 시시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여기서 다시 질문이 중요해진다. 그는 “질문에 답하려면 자신만의 삶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시로 부딪히는 여러문제를 목적의 관점으로 해석할 때, 비로소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까닭이다.

코로나19라는 고독 속에서 깊게 마주하는 내면

가만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을 잊은 현대인에게 코로나19는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은 다시금 삶의 목적과 가치를 점검한다. 이진우 교수는 ‘고독한 시간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상황 가운데 어떻게 일상을 살아갈지 생각할 때라는 것. 강요된 고립이 가져다준 홀로 있는 시간은 자기자신과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저 역시 지난 일 년 동안 캠퍼스에 나가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다 보니 학생들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코로나19는 갑자기 찾아온 운명인데, 불운을 탓하거나 걱정한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삶에서 균형을 찾는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코로나19가 아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삶에서 균형을 찾는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코로나19가 아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항상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한다. 매일 자신의 삶을 검토하고, 삶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며, 스스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찾아 나가야 한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며 생존 기계로 살아갈 것인가. 첨단 과학이 세상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시대에도 변함없이 철학은 ‘인간다움’을 사유한다. 이 시점에서 이진우 교수는 “자신만의 ‘왜’를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어떻게’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생의 목적을 성찰하고 이를 실현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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