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명사 인터뷰

한국인이 사랑한 ‘트로트’
오해와 진실을 밝히다

한국교원대학교 음악교육과 손민정 교수 그야말로 트로트 전성시대다. 한 방송국의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배출한 트로트 스타들이 각종 음악방송과 음원차트 상위권을 장식하며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돌아보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한 소절만 불러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른바 ‘국민가요’들이 트로트에서 나왔으니.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웃고 울린 한국인의 음악 장르, 트로트. 손민정 교수는 대중음악으로서 트로트의 가치를 학술적으로 연구한 음악인류학자다. 「The–K 명사 인터뷰」는 각 전공별 명사가 된 교수들을 인터뷰하는 코너로, 교육가족이 명사의 교육 가치관과 철학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서민의 삶과 함께 해온 음악, 트로트

2019년부터 시작한 트로트 열풍은 몇 해를 지나도 가시지 않고 있다. 한동안 다른 음악 장르에 밀려 대세에서 밀려났던 트로트가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트로트는 한국에서 제일 먼저 생겨난 대중음악 장르이지만, 그 자리를 인정 받기까지 상당한 편견의 벽을 넘어와야 했다. 오랜 기간 제대로 된 이름을 인정받지 못하고 ‘저급한 뽕짝’으로, ‘왜색 가요’로 폄하되어 왔다. 이 같은 오해를 풀어준 이가 바로 손민정 교수다. 트로트 연구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006년에 국제 학술지에 트로트 관련 논문을 최초로 싣기도 했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 국내에서 ‘트로트는 일본 엔카(트로트가 초창기에 ‘유행가’로 불려졌듯이, 당시 ‘류코카’로 명명되었던 일본의 대중음악 장르)의 아류’라는 논쟁이 이어 졌는데, 결국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트로트의 이미지에는 상당한 타격을 주었고 당시 논쟁에 영향을 받은 분들은 여전히 그러한 관점으로 트로트를 인식하고 있어 요. 그래서 저는 판단하고 주장하기보다 담론을 추려내 음악적 특성과 연결하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트로트라는 양식이 형성되어 왔는지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손민정 교수는 트로트 역사가 ‘한국인의 치열한 분투’와 함께해 왔다고 말한다. 트로트가 일상적으로 울려 퍼지는 곳은 대체로 서민들의 노동 현장. 이처럼 트로트는 과거 민요가 했던 역할을 대신하며 서민의 굴곡진 삶과 동행했다. 손민정 교수는 트로트가 처음 등장한 때를 1920년대로 보고 있다. 그리고 1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트로트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손민정 교수는 “이만한 시점이 되었다면 이 음악을 부인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인생에 굴곡이 있으면 살아남는 과정에서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어요. 트로트가 국지적인 민중운동으로서의 역할을 했는데도 당시 엘리트 정서를 가진 분들은 이 음악을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문화를 폄하하려는 의식이 남아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서 지식은 물론 취향도 공유되고 있습니다. 요즘 세대는 오히려 트로트에 편견이 없어요. 기성세대 역시 ‘신(新) 중년’으로 불리면서 자기 취향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시대가 왔고요.”

손민정 교수는 대중음악이 교육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대중음악에는 시대와 사회가 묻어 있다는 것.
또한, 학생들이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에는
대중음악이 특히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음악은 단순한 기능 교육이 아니라 가치관과 사고력,
사회적인 인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박사과정 학생들은 물론 현직 교사들이 참여해서
대중음악 교육 연구를 하고 있어요.”
트로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손민정 교수는 ‘왜색 가요’라는 지적에도 다른 관점을 갖고있다. 2003년에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소에서 발행한 「그리움의 눈물 : 일본 대중가요의 향수와 민족」에 따르면 1973년 이전까지 엔카는 류코카(流行歌), 즉 ‘유행가’로만 불렸다. 엔카라는 명칭은 과거 19세기 일본 계몽운동가들의 연설에 음을 붙여 부른 ‘연설의 노래’에서 유래했는데, 이후 이 용어를 차용하면서 엔카는 일본의 전통 가요로 상품화되었다. 하지만 정작 트로트는 ‘한국형 엔카’로 정리되면서 아류 논쟁의 불씨를 남겼다.
일본학자들이 주장하는 엔카의 특징은 ‘7-5조 가사’와 ‘2박자’, ‘5음계’다. 하지만 7-5조 가사는 「청산별곡」 같은 고려가요에도 엄연히 나타나고, 2박자 역시 한국 민요에 등장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일본 엔카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가 마사오가 “작곡 활동에 조선의 가락(한국 민요)에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말하는 등 엔카에 미친 한국문화의 영향을 인정한 바 있다.
손민정 교수는 KBS1 「이슈 픽 쌤과 함께」에 출연해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일본의 영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알렸다. 문화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함께 변화하고 진화하는 까닭이다.
“한국인이 트로트를 어떻게 향유하면서 음악을 재생산하고 재창조해왔는지 그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트로트 역시 한 가지 방향으로만 발전해오지 않았습니다. 트렌드가 변하면서 새로운 리듬이 들어오고, 음계가 교체 되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 특질이라고 하면 ‘가창 방식’입니다. 정서적으로는 상실에 대한 감정을 보듬어주는 것이지요.”
서울대에서 작곡 이론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서양음악 이론을 연구했던 그가 대중음악 연구를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음악인류학을 공부하면서부터다. 「록 음악의 역사」라는 과목의 선임 조교를 맡은 것이 계기였다.
학생들과 토론 수업을 하던 중 ‘한국에는 어떤 대중음악이 있느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한국의 록 음악을 들려주었지만 가사를 모르고 듣는 한국 록은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트로트를 들은 학생들의 반응은 달랐다.
이후 미국 대중음악학자인 엘리자베스 버그만으로부터 “미국음악이 한국음악에 영향을 주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느냐”, “트로트라는 핵심 장르가 있는 데도 왜 주변을 맴도느냐” 라는 두 가지 질문을 받고 고민을 거듭해 트로트를 제대로 연구해보기로 했다. 덕분에 최근 트로트 열풍과 함께 그의 연구도 주목받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음악교육은 세상의 간극을 줄이는 밑거름

대학에서 트로트를 따로 강의하지는 않지만, 현직 교사들도 다니는 대학원 과정에는 ‘대중음악연구’라는 과목이 개설되어 있다. 이미 교과서에 다양한 대중음악이 소개되고 있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 대중음악을 제대로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현재 교단에 서는 교사들은 대중음악을 학교에서 배운 세대가 아니기에, 교육 현장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부족했다.
“예를 들어 교과서에도 힙합이 실려 있는데 ‘힙합과 랩을 이용해서 건전 캠페인송 만들기’처럼 실제 힙합 정신과는 거리가 먼 과제를 다루게 합니다. 힙합은 저항과 반항의 장르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3년 전에 제자 중 한 명이 힙합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면서는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방향으로 연구를 했습니다. 학생들의 반항 의식을 무조건 통제하여 교양 있는 가요로만 연결하는 것도 어른들의 막힌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손민정 교수는 대중음악이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대중음악에는 시대와 사회가 묻어 있다는 것. 또한, 학생들이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에는 대중음악이 특히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음악은 단순한 기능 교육이 아니라 가치관과 사고력, 사회적인 인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박사과정 학생들은 물론 현직 교사들이 참여해서 대중음악 교육 연구를 하고 있어요.”
그는 덧붙여서 대중음악을 강조하는 교육이 아닌 ‘배제하지 않는 교육’을 이야기한다. 클래식 음악만 위대하다는 접근은 학생들에게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학생들 개개인의 성장배경이나 교육 여건을 고려하고 일상 속에서 접한 다양한 음악을 존중하는 태도로 접근할 때, 학생들은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자신감을 얻는다. 결국 교육자의 보람은 학생들의 변화에서 온다. 교육의 진정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손민정 교수는 앞으로도 편견을 없애는 음악교육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손민정 교수가 세계음악 수업 시간에 사용하는 악기들

services s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