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인터뷰 2

교육연극으로 꿈꾸는
행복한 교실

경북 상주중학교 노정 교사 연극에는 희곡, 배우, 관객, 무대가 필요하다. 잘 쓰인 희곡과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 멋진 장치를 갖춘 무대는 ‘좋은 연극’을 공연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다. 그러나 노정 교사는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만의 교육연극으로 학생들을 변화시켜온 그의 수업은 그래서 너무도 궁금했다.
  • 글. 이경희
  • 사진. 김도형

대본 없는 5분 회의 그리고 3분 공연

경북 상주중학교 2학년 1반 교실은 왁자지껄했다. 그러나 작은 체구에 작은 목소리를 가진 노정 교사가 칠판에 종이를 한 장 걸자 이내 조용해진다. 오늘 수업은 ‘공공예절에 대한 연극 만들기’라는 주제 하에 모둠별로 극을 구성해 연기하고 마지막에는 모둠별로 평가를 한다는 내용이다.
각 모둠에 주어진 준비 시간은 단 5분. 대본은 없어야 하고 연극은 3분 안에 끝내야 하며 마지막에는 관객(친구)들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한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학생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맞댔다. 6개의 모둠이 발표한 연극 주제는 ‘영화관 에티켓’, ‘화장실 에티켓’, ‘공공장소에서 개 목줄 채우기’, ‘노상 방뇨 금지’다.
누군가는 목청껏 떠들고 누군가는 조용히 듣기만 한다. 슬쩍 다가가 귀를 기울이니 저마다 에피소드 의견을 내면서 배역을 정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툴툴거리기도 했지만, 정해진 5분이 되자 정확히 회의가 끝났다. 6개의 모둠이 번갈아 앞에 나와서 하는 연극은 시종일관 폭소의 도가니였다.
영화관 에티켓의 경우에는 앞 사람 의자를 걷어차거나 핸드폰을 보는 등 다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감 나게 연기했고, 화장실에서의 리얼한 모습, 방뇨를 당하는 전봇대, 목줄 없이 짖는 개 등 다양한 캐릭터들을 직접 연기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회의 때 얌전히 듣기만 했던 학생들도 기꺼이 나가서 한몫하는 모습과 친구들이 연극할 때 모두가 몰입해서 지켜보는 눈빛이었다. 연극을 마친 뒤 평가 시간은 꽤 냉정하고 객관적이었다. 이 전체 수업 과정에서 노정 교사가 거의 관여하지 않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 교육연극은 학생들에게 숨어 있는 다양한 잠재력을 끄집어내면서
학생들을 한층 더 성장시킵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도 자존감이 높아져요.
교사가 연극이라는 도구를 통해 교육 과정을 철저히 분석해서 당의정(학생들의 흥미를
교육 내용 위에 덮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만들어 제시했을 때,
학생들은 학습 목표를 정확히 달성하고 시험도 잘 치릅니다.”
교육연극, 보람과 고통의 시간

수업이 끝나고 마주 앉은 노정 교사는 올해로 34년 차 경력을 가졌음에도 맑고 신선한 느낌을 전해주는 인물이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당연히 그가 연극에 빠지게 된 계기다.
“사범대를 다닐 때 희곡론 수업이 있었어요. 그때 교수님께서 모둠별로 연극을 하라고 했고 그 결과로 학점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모둠의 한 친구가 윤대성 작가의 희곡집인 「신화 1900」이라는 대본을 들고 왔는데 주인공의 대사가 전체 대본의 2/3를 차지하는 매우 무거운 내용의 사이코 드라마였어요.”
리딩을 하는 동안 온몸에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던 노정 교사는 주인공을 맡겠다고 나서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결국 그는 이 연기로 최고 점수와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힘이 있었구나. 내가 교사가 되어 연극을 한다면 나처럼 표현 못하는 학생들 속에 있는 불덩이를 꺼내줄 수 있겠다’고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가 천 편이 넘는 연극을 봤고 서점에서 연극과 관련된 모든 책을 구입해 읽으면서 교사가 되면 학생들과 연극을 하겠다는 꿈을 키워나갔다.
1990년대에 우리나라 교육연극의 선구자였던 김석만 교수, 최영애 교수, 김선 교수에게 “연극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내는 것”임을 배운 것은 이후 교육연극 교사로서의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그가 들려준 학교에서 일어난 연극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밤새 들어도 모자랄 정도였다. 교육연극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장 선생님을 설득했던 일, 성적이 떨어진다는 학부모의 반대로 연극반 학생들에게 오전에는 국·영·수를 가르치고 오후에는 연극 연습을 했던 일, 학교 밖에서 사고 치는 학생들을 다잡기 위해 10여 명의 학생을 데리고 합숙했던 일 등등.
그러나 노정 교사는 끝까지 연극과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연극을 통해서 달라진 학생들의 변화는 기적처럼 펼쳐졌고, 변화는 스스로에게도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행복해진 학생들, 더 행복해진 교사

“끊임없이 사고 치던 학생이 있었어요. 그 학생 엄마의 소원은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장만이라도 받는 거였죠. 그런데 그 친구가 연극을 하면서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망친 연극을 다시 무대에 올려보겠다고 자진해서 담배를 끊고 돈을 모으면서 후배들을 가르쳤어요. 그리고 졸업식 날 우등상, 모범상과 함께 자격증을 2개나 따서 기능상, 선행상까지 받았습니다. 학생 엄마는 그날 대성통곡을 했어요. 그 학생은 한국폴리텍대학을 졸업하고 좋아하는 자동차 분야 일을 하면서 지금은 아주 건실한 가장으로 잘살고 있습니다.”
올해 마흔이 된 이 제자는 지금도 명절이면 가족들을 데리고 노정 교사는 물론, 노정 교사의 부모님까지 찾아오는 가족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고. 이외에도 연극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존감을 높인 학생들, 학업 성취도를 올린 학생들의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교육연극은 학생들에게 숨어 있는 다양한 잠재력을 끄집어내면서 학생들을 한층 더 성장시킵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도 자존감이 높아져요. 교사가 연극이라는 도구를 통해 교육 과정을 철저히 분석해서 당의정(학생들의 흥미를 교육 내용 위에 덮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만들어 제시했을 때, 학생들은 학습 목표를 정확히 달성하고 시험도 잘 치릅니다.”
노정 교수의 수업은 재미있다. 남자 중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들을 파악해 학습 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른 다양한 활동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시를 싫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고등래퍼 김하온과 빈첸의 「바코드」로 먼저 풍자를 찾아보고 그다음에 시를 보여주며 풍자를 찾게 하는 수업이나 한글 창제 원리를 공부할 때는 학생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세종대왕에게 찾아가 직접 그 원리를 듣는 내용의 연극 등을 만들게 하니 “선생님 수업은 축구만큼 재미있어요”라는 말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노정 교사는 교육연극을 통해 학생들에게 두 가지를 바란다. 첫 번째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것, 두 번째는 남의 표현을 집중하고 존중할 수 있을 것. 2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노정 교사의 이 두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니 이 또한 교육연극이 만들어낸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초등학교 2학년, 맨발로 다니는 빈민가 학생들이 다칠까 유리조각을 줍고 다녔던 ‘페스탈로치’ 선생의 전기를 읽으며 교사를 꿈꾸었던 꼬마는 정말로 교사가 됐고 오랜 교육연극을 통해 얻은 상처, 눈물, 기쁨, 보람을 딛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당신은 좋은 교사입니까?”
“네. 좋은 교사입니다. 학생들이 저를 그렇게 만들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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