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이(가톨릭상지대학교 도서관장) 엄영애(대구가톨릭대학교 도서관학과 명예교수)
지금, 쉬어가기
아름다운 동행

포근한 햇살처럼 따스하게
다시 피어난 우리의 봄

스승과 제자의 원주 여행기 혼자서 알려 하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스승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스승이 필요하고, 책이 필요하다. 마침 좋은 스승을 만났다면 그것은 삶에서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을 잡았다고 할만하다. 진정한 친구만큼이나 귀한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 글. 김유리
  • 사진. 권대홍

인연이 시작된 봄, 만학도 대학에 가다!

살면서 수많은 선생님을 만나며 사제지간의 연을 맺지만, 그 관계를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녹록지 않은 삶의 순간들을 지나며 연락이라는 것이 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오늘 아름다운 동행의 주인공 이두이(세례명 클라라) 가톨릭상지대학교 도서관장의 사연이 특별했던 이유였다. 이두이 관장은 「The–K 매거진」 편집실에 보낸 사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제가 1998년 늦은 나이에 대구가톨릭대학교 도서관학과에 편입하게 되었는데 만학도였던 저를 자식처럼 챙겨주신 지도교수님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여건상 제자로서 해야 할 도리를 하지 못했는데 이번 아름다운 동행을 기회로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두이 관장과 함께한 스승은 대구가톨릭대학교 도서관학과 엄영애 명예교수였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수녀님의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어요. 사실 얼마 전에 백내장 수술도 받고 외출을 줄인 편이었는데, 더 시간이 가기 전에 기회가 될 때 제자와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아름다운 동행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고맙게도 나를 생각해서 신청한 건데 당연히 함께해야죠.” 한참 나이 어린 제자지만, 엄영애 교수는 이두이 관장에게 ‘수녀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존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톨릭 학교이기에 수녀님이 학생으로 온 것은 이상하지 않았지만 나이 든 학생이자 수녀인 제자를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어요. 제가 지도교수이기도 해서 담임 선생님처럼 학교생활을 함께하다 보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죠. 아직도 제 눈에는 클라라 수녀가 20년 전 그 모습으로 보여요.”
책과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이 찾은 첫 번째 여행지는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노후를 보내며 「토지」 4~5부를 집필한 자택이 있는 박경리 문학공원이었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존경하는 소설가의 자취를 살피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두이 관장에게 학교 진학은 삶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학교에 편입하게 된 것은 사실 생각도 못 했던 일이었어요. 수녀원 입회 전 전산을 전공했고 우연한 기회에 준사서 자격증은 있었는데 공부를 더 하려는 생각은 없었거든요. 성당에서 소임하고 있었는데 책임 수녀님이 편입을 제안하셔서 자연스럽게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죠. 처음부터 학교에 가라 하셨으면 아마 고민했을 텐데, 사서 일을 하며 편입 제안을 받으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교수님도 만날 수 있었고요.”

“ 가톨릭 학교이기에 수녀님이 학생으로 온 것은 이상하지 않았지만
나이 든 학생이자 수녀인 제자를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어요.
제가 지도교수이기도 해서 담임 선생님처럼 학교생활을 함께하다 보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죠. 아직도 제 눈에는 클라라 수녀가 20년 전 그 모습으로 보여요.”
열정으로 가르친 스승, 실천으로 보답하는 제자

두 번째 장소인 용소막 성당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 유럽의 어느 성당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성당 외관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내부에 들어선 이두이 관장은 차분하게 성당을 둘러본 후 짧은 기도 시간을 가졌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포근하게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엄영애 교수는 이두이 관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교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기는데, 처음 수녀님을 보았을 때 선하고 바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알면 알수록 엄청나게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죠. 추진력이랄까? 뭔가 해낼 거 같다는 느낌이 강했죠. 하다못해 뭘 가르치면 그것을 습득하는 능력도 남달랐고요. 그러다 보니 나도 더 열심히 가르치려 노력하게 되고 스승을 긴장시키는 똑똑한 학생이었어요.”
기도를 마친 이두이 관장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 그때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았거든요. 그때 정말 교수님이 밥 먹여 가면서 저를 공부시켰어요. 영양보충 시켜준다고 식당에 데리고 가서 고기를 사주셨는데 지금도 서울에 갈 일이 있어 찾아뵈면 잘 먹어야 한다며 맛있는 걸 사 주세요. 특히 대학원 다닐 때 학교를 가야 하면 교수님이 기차역까지 절 데리러 와주시기까지 했죠. 더 감사한 건 그 당시에 교수님이 부담 느끼지 말라고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나요. ‘내가 이렇게 하는 건 늙은 제자가 와서 힘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힘 빠져서 그러는 거야’라고요. 정말 저는 교수님에게 사랑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독서 예찬, 책이 사람을 만든다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인 ‘뮤지엄 산’은 종이 박물관과 미술관이 합쳐진 종합 뮤지엄으로 일상을 책과 함께하는 두 사람이 가장 흥미롭게 여행한 장소였다. 종이의 역사와 자료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 엄영애 교수는 사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서들은 학문 전반에 관한 지식을 넓게 가지고 있는 편이죠. 목차와 서론을 꿰고 있어야 하니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모든 분야에 대해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가 될 수밖에 없고요. 단지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닌 이용자가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에 다가갈 수 있게 구성하고 안내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니까요. 포털의 연관검색어 같은 것도 결국 우리 학문에서 파생된 영역이죠. 시대가 변한 만큼 전공자들이 포털 업체에도 많이 진출하고 있고요.” 이에 이두이 관장은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덧붙였다.
“도서관은 책과 관련한 고유의 기능도 있지만, 사람이 모이고 소통하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새로운 변화가 가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여력이 많죠. 일단 도서관에 사람을 모이게 할 수 있다면 책과 친해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근엔 만화책도 구비를 하고 있고, 독서 토론, 독서 치료 등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흐르는 시간 속 깊어진 사제의 정(情)

이튿날, 두 사람은 ‘원주한지테마파크’를 끝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저는 사서라는 직업이 너무 좋아요. 보통은 책이 좋아서 도서관에 간다는데 저는 책 이전에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만나는 게 좋고, 책이라는 매개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껴요. 또 학생들과 함께하다 보니 늘 활력이 넘치고요.”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 예정인 이두이 관장이 설레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엄영애 교수가 깜짝 놀란 듯 말을 이었다. “제 은사님이신 이봉순 교수님께서 미국 유학시절 스승님께 들었었던 이야기에요. ‘사서는 사람을 좋아해야 하고, 책과 도서관을 사랑해야 한다’고요. 저 역시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았는데, 제자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게 되니 정말 놀랍네요.”
부모의 DNA가 자식에게 유전되는 것처럼, 대를 이어 내려온 스승과 제자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많이 닮아 있었다. 엄마 같은 스승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제자는 생각한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세상에 돌려줘야 한다고. 그것이 스승의 사랑에 보답하는 제자의 도리이자 다른 누군가의 스승으로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니까.

1박 2일
여행을 마치고
이두이(가톨릭상지대학교 도서관장) “은사님과 함께한 선물 같은 시간”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선물로 주어진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교수님에게 늘 받기만 했는데 작게나마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네요. 마음은 늘 있었지만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랐는데 좋은 기회에 은사님과 뜻깊고 소중한 여행을 하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주신 한국교직원공제회 여러분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엄영애(대구가톨릭대학교 도서관학과 명예교수) “잊지 않고 찾아준 제자와의 행복한 만남”

좋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준 제자 덕분에 30여 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했네요. 함께한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던 여행이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 박경리문학공원

    박경리문학공원은 작가 박경리의 소설 혼이 담긴 공간으로 장편소설 ‘토지’의 산실이다. 이곳엔 박경리 선생이 1980년 서울 정릉집을 떠나 원주 단구동 742번지로 이사해 토지 4부와 5부를 집필했던 옛집을 비롯해 박경리 문학의 집, 박경리 문학공원 북카페가 있다.

    033-762-6843 강원 원주시 토지길 1
  • 용소막성당

    병인박해 때 피난 온 신자들이 이곳 부근에 교우촌을 형성하여 신앙을 지켰고, 1904년에 강원도에서는 3번째의 용소막 성당이 이곳에 지어졌다. 1915년 벽돌 양옥 성당을 완공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1988년 11월에는 용소막 출신 사제로 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했고, 성서 번역에 힘썼던 선종완 신부의 공적을 기리는 유물관을 건립했다.

    033-763-2343 강원 원주시 신림면 구학산로 1857
  • 뮤지엄 산

    산속에 감춰진 뮤지엄 산(Space Art Nature)은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한 건축물의 대가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2013년 5월 개관했다. 뮤지엄은 오솔길을 따라 웰컴 센터, 잔디주차장을 시작으로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본관, 명상관, 스톤가든 그리고 제임스터렐관으로 이어져 있다. 문명의 번잡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은 뮤지엄에서 휴식과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033-730-9000 강원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 원주한지테마파크

    한지의 어제와 오늘을 한자리에서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한지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한지로 표현한 예술성 높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또한 한지가 가지는 역사적 우수성과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던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숨결을 체험할 수 있다.

    033-734-4739 강원 원주시 한지공원길 151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할 참가자를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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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K 매거진」 편집실 E–mail. thekmagazine@ktcu.or.kr

지난 1년간 총 27명의 회원님이 아름다운 동행에 신청 사연을 보내주셨습니다. 신청해 주신 모든 회원님께 감사드리며, 매 호 한 분의 사연을 선정하다 보니 모든 분을 초대하지 못하여 죄송한 마음입니다. 회원님들이 보내주신 사연은 소중히 보관하고, 추후 시의적절한 사연을 선정하여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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