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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K 인터뷰 1

새로운 문명의 시대
포노 사피엔스로 살아가기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최재붕 교수 아이부터 어른까지,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끼고 사는 일상이 자연스럽다. TV보다 유튜브를 즐겨보고, 극장 대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며, 오프라인 매장 대신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산다. 삶의 양식이 달라지면서 문명의 질서를 이루는 기준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미 도래한 ‘포노 사피엔스 시대’, 과연 우리는 준비되어 있을까?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최재붕 교수를 만났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새로운 인류 문명의 시대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디지털 문명을 이용하는 신인류를 ‘포노 사피엔스’라고 명명했다.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 ‘지혜가 있는 휴대폰을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정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체감하는 변화. 그 속도가 빠른 만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최재붕 교수가 쓴 「포노 사피엔스」가 출간 1년도 채 되지 않아 100쇄를 넘긴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인 그도 예상하지 못한 돌풍. 이는 ‘생각의 표준을 디지털로 바꿔야 한다’고 인식한 사람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최재붕 교수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엄청난 사회 변혁이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회적 충격을 겪은 사람들의 행동 양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온라인 교육으로도 얼마든지 학습할 수 있다는 경험치도 쌓인다. 요즘 세대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식은 기성세대와 다르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코로나19 확진자 정보를 바탕으로 대학생들이 불과 24시간 만에 ‘코로나 알리미’ 앱을 개발했고, 대구에서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코로나나우’라는 앱을 선보였다. 우리나라 교육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미 아이들은 교과서를 뛰어넘었는데, 아직도 한국 교육은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교과서에도 없는 내용을 어떻게 배웠을까?’ 기특해하는 데 그치지 말고, 생각의 표준이 달라지고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새로운 인류 문명의 시대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디지털 문명을 이용하는 신인류를 ‘포노 사피엔스’라고 명명했다.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
‘지혜가 있는 휴대폰을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정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체감하는 변화.
그 속도가 빠른 만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디지털이 곧 표준이다

최재붕 교수는 한국 사회의 문제로 ‘대한민국 리더십과 대중의 표준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현재 국민의 63.5%가 모바일 뱅킹을 이용하는데 이를 평균이 아닌 연령대별로 나누면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 20대에서 40대의 경우 모바일 뱅킹 이용자가 80%에 수렴하지만, 60대 이상은 18%, 70대부터는 6%로 낮아진다. 그런데 입법을 추진하는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은 55.5세. 원내대표의 경우는 연령대가 더 올라가 60~70대가 다수를 이룬다.
“이분들이 볼 때는 60대는 다섯 명 중 한 명도 모바일 뱅킹을 하지 않는데 제도를 바꿀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70%는 모바일 뱅킹이 표준입니다. 이미 디지털 변혁이 상당히 진행되었는데도 과거의 기준을 보호하기 위해 올가미를 씌워 놓은 셈입니다.”
앞으로 10년 후, 지금의 40대가 50대에 진입하면 모바일 뱅킹이 당연해지고 대다수 은행 지점은 사라질 것이다. 정해진 미래가 있다면 어느 시점에서는 미리 준비를 마치고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교훈은 코로나19 대응 방안과도 연결된다.
“만약 국내에도 원격 진료 프로세스가 있었다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표준도 달라졌을 겁니다. 교육 역시 혁신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MIT, 스탠퍼드 등 외국 명문대학 교수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시대다. 출석 교육만 인정하던 과거의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프랑스의 자기주도형 소프트웨어 교육 기관인 ‘에꼴42’는 훌륭한 참고 사례다. ‘소프트웨어 교육의 혁신’, ‘교육계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곳은 학비도 교사도 교재도 없다. 그리고 3년 동안 스스로 생각하고 협업하며, 인공지능·빅테이터 등을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나가도록 하는 42단계의 체계적인 교육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 디지털 플랫폼 분야에서는 프로그램을 짜는 능력뿐만 아니라 기획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프로그래머가 아니더라도 바탕을 이루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그 기본은 코딩 언어고요.”

일단 도전하고, 경험하라

그가 학생 시절에는 교과서를 보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아야 했다. 인터넷이 있기는 했지만, 정보의 양이 부족하고 질도 충분하지 못했던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일각에서는 어떤 정보든 쉽게 검색하게 해주는 디지털 문명이 아이들의 생각을 앗아간다고 보기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정보 자원이 많아지면 생각의 여지가 넓어진다”고 말한다.
“어른들은 옛날 방식으로 일해야 자신이 보호된다고 느낍니다. 저는 요즘 학생들을 보며 문제해결 방식에서 큰 차이를 느껴요. 최근 교육계의 화두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인 ‘메타 인지’인데요. 어른들의 메타 인지와 아이들의 메타 인지는 다릅니다. 앞서 언급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만든 코로나 앱은 제 영역 밖의 일이죠. 기획력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가 속한 성균관대에서도 2019년에 AI센터를 개소하고 학부생 교육 혁신안을 만들었다. 중학생이 한 일을 대학생이라고 못할 리는 없다. 토익 점수를 따려고 영어 공부를 하는 시간의 일부만 할애해도 전공과 상관없이 누구든 앱 개발이나 코딩에 도전할 수 있다.
새로운 문명의 확산은 분명 기회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기성세대에게는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최재붕 교수는 반문한다.
“우리가 과연 변화를 시도하고 있나요? 집에 가면 TV를 켜고, 책을 읽는 게 익숙하고 편하죠. 이런 혁명기에 그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까지의 내 삶과 달라서 부담스러운 게 아닐까요. 사실 도전하고 경험해보면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얼마 전에 유튜브 프리미엄에 가입했는데, 시작하고 보니 예전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보게 되더라고요. 한국에서는 교육 콘텐츠를 보는 비율이 3.3%밖에 되지 않는데, 찾아보면 유튜브로 다양한 교양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최재붕 교수는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아이디어도 제안했다. 은퇴한 교사를 위한 복지 프로그램의 하나로, 디지털 교육을 시작하는 것. 모바일 뱅킹을 배울 수도 있고, 진짜 유튜버가 되어 다양한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경험도 해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결국 본질은 ‘사람’이다.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위기보다 기회를 보는 현명함을 갖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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