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인터뷰 1

의학과 인문학 사이,
소통의 다리를 놓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의학교육과 예병일 교수 코로나19 확산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알고 보면 인류의 역사는 세균과 바이러스에 맞선 생존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예병일 교수가 2015년에 출간한 저서 「세상을 바꾼 전염병」이 요즘 들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과연 세균과 바이러스는 어떻게 인간의 삶을 바꾸었을까. 예병일 교수를 통해 의학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바이러스에 대응해온 인류의 역사

인류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전해도 여전히 인간에게 감염병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감염병이란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 병원체가 우리 몸에 들어와 생기는 병. 감기처럼 전염성이 높은 질환도 있지만 일부 질환은 전염성이 높지 않은 데도 단어가 주는 불안감 때문에 보건복지부에서 ‘감염병’을 공식 용어로 삼았다. 오랜 연구를 통해 익히 알려진 병원체도 있으나, 새롭게 등장해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신종 감염병도 있다. 단순한 구조로 된 바이러스가 쉽게 돌연변이를 만드는 까닭이다.
예병일 교수는 저서 「세상을 바꾼 전염병」의 서문에서 “감염병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전한다. 코로나19는 물론, 메르스·에볼라 바이러스·사스 등 다양한 감염병이 우리 일상을 뒤흔들었다. 인류가 감염병에 대처할 능력을 갖춘 시기는 영국의 과학자 제너(Jenner, Edward)가 종두법을 발견한 1796년. 이후 프랑스의 세균학자 파스퇴르(Pasteur, Louis)가 탄저병과 광견병 백신을 개발해 백신을 활용한 감염병 예방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즈음 독일의 의사이자 세균학자인 코흐(Koch, Robert)가 체내에 침투한 작은 미생물이 감염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덕분에 19세기 후반부터 감염병 예방과 그 원인인 병원체를 발견하는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감염병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던 인류는 1910년에서야 비로소 첫 번째 감염병 치료제를 개발했다.
그는 “의학 역사를 공부하면 대부분 감염병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1960년대에 이미 등장했고요. 이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가 이 바이러스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사스’와 ‘메르스’입니다. 그리고 2019년에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인 ‘코로나19’가 발견되었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없는 것이 생겨날 수도 있지만, 이미 있는데 못 찾은 것도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효과적인 약을 처방했다 하더라도
환자 스스로 몸을 관리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
그러자면 의사가 환자를
‘인문학적으로’ 대해야 한다.”
두려움을 넘어 극복으로

20세기 초반에서 중반 사이에는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다양한 약이 개발되었다. 오래도록 인류를 괴롭혀온 감염병을 극복할 길이 열린 것이다.
“인류가 적극적으로 퇴치 운동을 벌여 처음으로 종식 선언을 한 질병은 천연두라고 부르기도 했던 ‘두창’입니다. 1980년에 공식적으로 종식 선언을 한 이후 40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죠. 두 번째로 종식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회백질척수염을 일으키는 ‘폴리오바이러스’입니다. 국내에서는 소아마비라고 부르기도 했죠. 이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지만, 아직도 몇몇 국가에서는 이 바이러스가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 두 가지 바이러스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걸리는 인수공통감염병이에요.”
지금은 손을 잘 씻고 평소 건강 관리를 잘해 면역 기능을 강화하면 감염병 발생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 상식으로 통한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는 일이 잦아지고, 교통이 발달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감염병에 노출될 위험도 커졌다. 신종 감염병이 증가하고 있지만, 다행히도 인류는 풍부한 의학 지식을 앞세워 최대한 빠르게 대응책을 내고 있다.
“지금 유행하는 코로나19는 앞으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정점을 찍은 것 같습니다. 다만 세계적인 유행이 끝나려면 하루빨리 치료제가 나와야 합니다.”

인문학으로 익히는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C형 바이러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의과대학에서 생화학 교수로 근무하다가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미래의 의사들을 교육하면서 그가 가장 관심을 둔 분야는 다름 아닌 인문학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독일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한 적이 있지요. 전쟁이 끝난 후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피고들이 ‘어차피 죽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고 항변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의학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관점이 생겼습니다.”
의사에게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현재도 변하지 않는다. 예병일 교수는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의사들이 환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기계가 판단한 수치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다”고 말한다. 생활습관에서 유래한 현대의 질환은 특정한 약 하나를 먹었다고 해서 낫지 않는다. 아무리 효과적인 약을 처방했다 하더라도 환자 스스로 몸을 관리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 그러자면 의사가 환자를 ‘인문학적으로’ 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환자가 생명이 오가는 위중한 병에 걸렸을 때 그 사실을 어떻게 전할 것인지 학생들에게 생각해보게 합니다. 대다수 학생들이 ‘의사가 되면 할 수 있겠지’하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그 상황에 실제로 닥쳐보면, 쉽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의사가 되어서 당황하지 않으려면 학생일 때부터 교육을 해야지요.”
국내 의학교육 초창기부터 기틀을 잡아 온 예병일 교수가 최근 관심을 둔 분야는 외국인 교육이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과 협업해 대학원에 베트남·라오스·미얀마·캄보디아 등 개발도상국 외국인을 위한 의학교육학 과정을 개설한 것. 이는 궁극적으로 전 세계의 의학 여건을 개선하는 일이다. 하나의 감염병을 극복하고 나면 또 다른 감염병이 등장할지도 모르지만, 의학 발전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이 있어 조금은 희망적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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