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인터뷰 1

아이들의 마음에 담긴
속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조선미 교수 이 세상에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하지만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거나 혹은 잘못 알아서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부모는 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가 아닌 진짜 아이에게 들려주어야 할 사랑의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조선미 교수는 오래전부터 부모를 위한 교육 활동에 집중해왔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우리 아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조선미 교수는 우리나라 대표 자녀교육 멘토로 통한다. 2006년부터 EBS 「60분 부모」, 「달라졌어요」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녀교육 문제로 고심하는 여러 부모에게 전문가의 조언을 전해온 것. 더불어 그 자신이 자녀를 키우며 겪었던 다양한 고민과 해결 과정을 「나는 오늘도 아이를 혼냈다」, 「성장하는 십 대를 지혜롭게 품어주는 엄마의 품격」 등 일곱 권의 책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국내 정신건강의학과에 소아정신 분과가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1990년에 비로소 아주대학교병원을 비롯한 세 곳의 병원에 소아정신과가 생겼어요. 소아정신 문제를 다루는 곳이 흔하지 않으니 ‘아주대학교병원이 진료를 잘 본다더라’ 하며 많은 분이 방문하기 시작했어요.”
199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는 자녀에 대한 체벌이 적지 않았다. 아이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일은 부모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교정하는 일과도 다르지 않았다. 부모들에게 ‘아이를 때리지 마세요’ 하고 일일이 당부하는 일이 일상이었던 나날. 그러다 한 지면에 칼럼을 기고한 것을 계기로 방송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심리치료를 하다 보니 ‘치료보다 예방이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혼자 부모 한 명, 한 명을 붙들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조선미 교수의 소속은 정신건강의학과이지만, 그는 의사가 아닌 임상심리학자다. 아주대학교병원 같은 대형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의사와 심리학자가 함께 근무하며 평가와 심리 치료, 관련 연구 등을 공동 수행한다.
그의 책 속에 그리고 방송으로 전하는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두 자녀가 어느덧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하는 여러 부모와 소통하며 머리를 맞댄다. 지난해부터는 유튜브에 ‘조선미TV’를 개설하고, 부모들의 질문에 직접 답을 전하고 있다.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짐이 된다

그가 아주대학교에 임용되었을 때가 1997년.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병원을 찾는 아이들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국내에 소아정신과가 생긴 초창기만 해도 병원을 찾는 아이들의 문제는 정신건강의학과 교과서에 나오는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증후군)나 자폐증, 지적장애 등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외에 심리적인 문제로 치료실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이 크게 늘었다.
“ADHD는 전체 인구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지금도 치료실에 오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또한 주변에서 ‘순하다’고 하는 아이들이 버티다 못해 병원을 찾기도 해요. 바이올린에 빗대면 멈추지 않고 연주하다 갑자기 줄이 끊어진 거죠.”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겪는 아이들이 왜 더 많아진걸까. 조선미 교수는 “부모가 자신이 세운 기준에 아이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다못해 학원이나 학습지만 중단해도 심리적으로 나아지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아이들의 인지능력은 완성된 채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1~2학년쯤이 되어서야 비로소 성인과 비슷한 수준이 됩니다. 어른이 보기에는 ‘10분이면 할 일을 한 시간씩 한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 아이에게는 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에요.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양치질이 인생의 과업일 수도 있는 것처럼요.”
다양한 정보가 쏟아지고 한두 명의 자녀만을 키우는 가정이 많아진 지금은, 양육에 대해 부모가 느끼는 압박감도 크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불필요한 노력을 계속하며 자신을 소진하기도 한다. 조선미 교수는 “아이들은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자란다”고 말한다.
“성장은 아이들에게 이미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재능을 끌어내야 한다고 부담을 느낄 까닭이 없습니다. 오히려 과도한 학습 때문에 우울과 불안 문제를 겪는 아이들을 더 많이 봅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속상하겠다’하고 공감해주면
위로는 될 수 있어도 문제는 반복되지요.
임상에서는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어떻게 행동할지 지침을 제시합니다.”
위로가 아닌 가이드를 제시하다

이론에서는 소통과 교감을 논하지만, 임상에서는 훈육과 훈련, 감정조절을 중시한다. 조선미 교수도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화를 많이 내는 아이라면 놀이 치료를 하면서 화를 발산하게 해주고, 학교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교실 문을 열며 먼저 ‘안녕’ 하고 인사를 하라고 알려준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속상하겠다’하고 공감해주면 위로는 될 수 있어도 문제는 반복되지요. 임상에서는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지침을 제시합니다.”
코로나19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도 늘었다. 온라인 교육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고 걱정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조선미 교수는 “그 시기에 집중력이 유지되는 시간은 불과 10분에서 15분 정도”라고 말한다. 등교했더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는 것, 한편으로 조선미 교수는 요즘 국내에 잘못 소개된 심리학 개념을 바로잡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서구에서 간행된 전문서들이 번역되면서 원래 의도와 다르게 전해진 경우가 많다. 국가마다 다른 문화와 언어 표현 방식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외국 방식대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아직 어휘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전문가로서 이바지해야겠다는 마음이 크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 해도 접근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사회가 변하고 세상이 좋아져도 여전히 조선미 교수는 치료실에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과 마주한다. 부모도 아이도 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조선미 교수는 아이들의 마음이 아프지 않을 방법을 찾아 고민하고 또 숙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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