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인터뷰 2

학교의 숲에서 피운
사랑과 희망의 꽃

제9회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 수상자
한영고등학교 신동필 교사
제자는 스승의 진심을 알아보았고, 스승은 제자의 진짜 모습을 알아주었다. 30년 교직생활 중 27년간의 연속 담임생활, 그 안에서 신동필 교사가 얻은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같은 제자들이었다. 그를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 수상자로 만든 그 묵직하고 단단한, 지금도 현재진행 중인 사랑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글. 이경희
  • 사진. 김도형

동기부여를 위해 정성을 쏟다

돌이켜보면 신동필 교사는 언제나 학생들을 믿어왔다. 그에게 학생이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미지의 대상이자,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1990년 한영고등학교에 첫발을 내디딘 새내기 신동필 교사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꿰어온 첫 단추는 ‘상담’이었다. 그것도 학생당 2시간에 걸친, 길고 긴 상담 말이다. 그 시간은 신동필 교사가 마음을 주기 위해서 학생을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학생들은 늦은 밤까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담임교사의 진심을 조금이나마 눈치채는 시간이었다.
“고교 시절에는 많은 것들이 구체적으로 결정되는 시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담임교사에 대해서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어요. 학생들은 압니다. 어떤 교사가 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행동을 보고 마음을 파악해요. 오랜 담임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진심으로 다가가면 학생들과 소통이 된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래서 그에게 담임이라는 자리는 매우 유의미한 것이었다. 삶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학생들을 다듬어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얻고, 제법 가까운 물리적 거리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27년간 연속 담임을 맡으며 그중 18년간 3학년 담임을 자진해서 맡았던 그의 이력은 어쩌면 힘듦보다는 기쁨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교사로서 그가 학생들에게 주고자 했던 것은 명백했다. 바로 ‘동기부여’. 공부는 스스로 느껴서 하고자 할 때 큰 성취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학생들에게 뜨거운 정성을 쏟았다. 주말을 포함해 매일 밤 11시까지 학생들과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함께했고, 쉬는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 중에서도 40분 동안 묵묵히 교실을 지키며 학생들과 눈을 맞췄다.

꽃길과 흙길을 함께 걸으며

학생들에게 학습 성취감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고3 담임을 맡은 신동필 교사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주요 과목의 과목 부장을 정해서 매주 학습 범위를 알리고, 주 2회 과목별 문제를 만들어서 평가했던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학생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공부하는 재미를 알게 된 학생들은 성적이 놀랄 정도로 올랐고, 높은 대학 진학률을 보였던 것. 그것이 이듬해에도 계속되자 신동필 교사는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에게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주목받았다.
그는 교직 생활 내내 소위 말하는, 반 평균을 낮추는 꼴찌를 사랑했다고 고백했다. “저는 늘 학급에서 맨 아래 학생을 챙깁니다. 그러면 변화가 생겨요. 그 학생이 감동을 받으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학생들도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면 학급 분위기가 매우 좋게 변합니다. 학교폭력도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단합된 학생들은 성적이 오르는 것은 물론, 체육대회나 축제에서도 상을 휩쓸죠. 34명 중 서울 주요 대학에 18명을 보낸 적도 있고, 56등을 하던 학생에게 ‘넌 한문만 하자’해서 한문 100점으로 자신감을 끌어 올려 대학에 보내기도 했죠.”
그렇게 대학생이 된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신동필 교사가 맡은 반 학생들의 멘토를 자처하면서 다시 학교에 돌아와 자신의 경험담과 학습법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걸어 온 모든 여정이 꽃길만은 아니었다. 반항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사고를 치는 학생들도 있었다. 혼을 낼 때는 호랑이 선생이 따로 없었다. 체벌이 가능했던 예전에는 왜 맞아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고, 체벌을 한 뒤 학생을 껴안고 같이 운 적도 있었다. 힘든 가정형편에 가출한 학생도 있었는데, 밤새 학교와 집 주변을 뒤져 2주 만에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학생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는 결코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가출했던 그 학생은 지금 경찰이 되어 성실히 복무 중이라고 해요”라는 이야기를 덧붙인 신동필 교사의 얼굴에는 애틋한 미소가 어린다.

교사로서 그가 학생들에게 주고자 했던 것은 명백했다. 바로 ‘동기부여’.
공부는 스스로 느껴서 하고자 할 때 큰 성취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학생들에게 뜨거운 정성을 쏟았다.
주말을 포함해 매일 밤 11시까지 학생들과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함께했고,
쉬는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 중에서도 40분 동안 묵묵히
교실을 지키며 학생들과 눈을 맞췄다.
제자들이 만든 동필장학회, 삶의 의미를 더하다

선생님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수많은 제자들은 자진해서 1996년 다음카페에 ‘한영고 DP(동필)사단’을 만들었다. 17년간 이어져 오던 이 모임에서 제자들은 만남의 의미를 키우고 동기부여가 필요한 후배들에게 힘이 돼 주자는 생각으로 ‘동필장학회’를 만들자며 그에게 제안을 했고, 마침내 2016년 3월, 동필장학회가 설립됐다. 고교 은사의 이름을 딴 장학회라니, 모두가 놀란 이례적인 일이었다. 첫 담임 때 만났던 제자들은 이제는 대학교수, 변호사, 교사, 공무원, 회사원 등 어엿한 사회 일원이 되어 장학회를 이끌고 있는데, 지금까지 천만 원이 넘는 장학금과 장학증서를 후배들에게 전달하면서 스승과의 만남도 지속하고 있다. 한편,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이 보다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길 원했다.
“역사를 가르친 저는 수업 시간에 고려 말 혼란기에 마주 선 정몽주와 이방원, 정도전을 놓고 토론을 하게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토론 주제로 학생들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장이기도 했어요. 저는 건강하게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교직 생활 30년이 되는 해에 제가 직접 쓴 ‘정도전’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신동필 교사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3년 동안 사료를 조사하고, 자료를 정리해 틀을 만들었으며, 소설 작법에 대한 책을 10권 넘게 읽었다. 그리고 집필한 원고를 2년에 걸쳐 다듬고 고쳤다. 그렇게 고군분투했던 그의 정도전 역사소설 「창업」은 마침내 지난 3월에 빛을 보았다. 제자들과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어 했던 그가 만들어낸 성과였다.

신동필 교사에게 교직은 천직이다. 마을에서 서당 훈장을 하셨던 외조부의 영향으로 역사를 전공했고, 논어·맹자를 익혔던 그는 꿈을 이뤘다고 전했다. 그의 말속에는 좋은 교육자가 되고자 한 열망과, 간절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작은 불씨를 학생들에게 지펴주려는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제9회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자신의 일처럼 응원해준 제자들과 도와주신 주변 모든 분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지요.”
신동필 교사는 지금도 부지런히 공부한다. 좋은 수업은 교사의 기본임을 잊지 않기에 EBS 인터넷 강의를 꾸준히 보고, 인기 강사의 인기 요인을 분석해 자신의 수업에 적용한다. 그의 방과 후 역사 수업 신청이 3초 만에 마감되는 이유다.
정년퇴직까지 4년이 남았지만, 그에게는 할 일이 많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새내기 교사들의 멘토 역할을 꾸준히 할 예정이고, 퇴직 후에는 장학회를 통해 제자들과 함께 더욱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자 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의 30년 교사의 삶.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삶이 천천히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여전히 그는 초심으로 또 다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필 교사가 한번 더 천천히 힘주어 말했다. “소중한 인연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선생으로서 제자들을 만난 건 제 삶의 큰 행운이고 축복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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