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공간의 재구성

학교는 살아있다

서울상천초등학교

상천초등학교는 살아있다. 학교 안 운동장에 웃음소리가, 텃밭에 생명이, 교실에는 학생들의 꿈과 상상력이 살아있다. 이 공간들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 쓸모를 바꾸며 학생들의 꿈과 함께 살아 숨 쉰다.
  • 글. 이성미
  • 사진. 김도형

(왼쪽)상상력이 살아있는 상천초등학교 목공실, 감성공작소 (오른쪽)모험심이 피어오르는 색다른 등하굣길, 꿈오름길
햇살, 바람, 나무 그리고 학생들

교문 앞부터 이어진 꿈오름길을 따라 학교 안으로 모험을 떠나본다. 학교 가는 길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있을까? 오르막길, 내리막길,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길 위로는 시원하게 나무 그늘이 드리워지고, 바람개비 끝을 건드려 보겠다고 바람도 쫓아온다. 뒤꿈치에 날개가 돋아난 듯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동심이 살아난다.
학교 건물 앞에 도착하자 이번엔 초록 텃밭이 반긴다. 반별로 구획을 나눈 텃밭에는 방울토마토, 참외, 가지, 고추, 해바라기 등 작물과 화초가 자란다. 걸음을 옮기며 작물들이 얼만큼 자라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텃밭 끝까지 이어져 꽂혀있는 바람개비에는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되어 학생들과 자유롭게 만나길 바라는 교사들의 마음이 글로 적혀 있다.
초록빛은 중앙현관까지 이어진다. 출입구를 둘러싼 초록색 테두리 위에는 상천초등학교와 딱 어울리는 문구가 적혀 있다. 「햇살, 바람, 나무 그리고 학생들」 이 문구처럼 학교는 어디든 햇빛과 바람, 나무, 그리고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게 개방되어 있다.
현관으로 들어서니 왼편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기를 기다리는 재활용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오른편에는 새들이 지저귀며 손님을 맞이한다. 중앙현관은 통로이자 커뮤니티 공간, 새들의 보금자리 그리고 재활용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새활용실’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상천초등학교가 생태친화적인 학교로 유명해진 것은 2017년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20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한 교육 공간 리모델링 사업 ‘꿈을 담는 교실’에 선정되면서부터다. 이 사업으로 현관의 문을 없애고, 천장에 둥근 창을 내고, 필요에 따라 접어둘 수 있는 폴딩 도어를 달아 햇빛과 바람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공사가 진행되면서 학교는 밝고 개방적인 분위기로 확 바뀌었다. 또 바닥에 원목 가구와 화분, 새장을 들여놓음으로써 공간에 숨을 불어넣었다. 복도에는 물고기가, 목공실 옆에는 토끼가 산다.
학교를 생명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자, 학생들도 눈에 띄게 밝아졌다. 텃밭을 가꾸고 동물과 함께 생활하며, 학생들은 생명이 자라는 과정을 익히고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배운다.

  • 초록색 중앙현관 출입구를 중심으로 생태친화적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 중앙현관에 새롭게 들어선 새활용실, 오른쪽 유리벽에는 교장실 겸 메이커 스페이스가 있다.
벽을 없애자 소통이 살아났다

학교에 손님이 들어온 걸 보고, 중앙현관 옆 교장실에서 이준범 교장이 나온다. 벽을 투명유리로 마감한 교장실에서는 멀리 운동장까지 밖이 훤히 내다보인다. 교무실과 행정실 벽면도 투명 유리로 마감하여 학생과 교사, 교직원들끼리 언제든 얼굴을 서로 마주볼 수 있다. 교무실과 행정실 사이에 회의실 겸 탕비실을 두고 세 공간을 잇는 통로를 놓으면서 교직원 사이는 한층 가까워졌다.
교사들은 자율적으로 학습 공동체를 만들어 반, 학년에 얽매이 지 않고 교육 철학과 학습법을 공유한다. “학교는 경쟁 하는 곳이 아닌 학생, 교직원이 협력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곳”이라는 것이 상천초등학교의 철학이다. 교장실도 개방형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인다. 학생, 교사들은 교장실에 거부감 없이 들어가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게다가 올해는 교장실에 메이커 스페이스에 활용할 수 있는 3D 프린터를 들여놓으면서 ‘교장실’이란 이름조차 무색해졌다. 그러나 이준범 교장은 “중앙현관과 교장실을 메이커 스페이스로 활용하면서 제가 매니저를 맡게 되었습니다”라며 웃는다. 교내 공간들은 학생의 인성, 상상력, 창의력 향상에 중점을 두는 교육 목적에 맞게 점차 변화하고 있다.
“현재 상천초등학교에서는 생태친화적인 공간 위에 학생들의 상상력을 덧입히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메이커 스페이스가 설치되고, 중앙현관에는 폐품을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새활용실이 생겼죠. 복도에 레고 블록 벽도 만들었습니다. 도서관과 가사실, 목공실에서도 학생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갑니다. 또 이번 여름방학에는 체육관에 VR 체험관이 생깁니다. 체육관 양쪽 벽면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과녁, 골대 등을 만들어서 학생들의 수학적 사고와 신체 능력을 동시에 키워주는 융합 교육을 시행할 예정입니다.”

  • 원형 탁자, 마루 등이 골고루 배치된 상천초등학교 도서실
  • 목공실에서 학생들이 만든 작품. 책상 옆에는 공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공간이라도 학생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금방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학생들이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어요. 아무쪼록 하루빨리 많은 학생들이 등교해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면 좋겠어요.”
학교로 모험을 떠나자

운동장에서도 학생들의 상상력이 자란다. 교문 앞부터 학교 건물 앞까지, 나무 데크로 이어진 꿈오름길은 전교생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학생들은 꿈오름길 밑에 숨어 속닥거리기도 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공간의 쓰임은 놀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꿈오름길 기둥에 재활용 페트병을 붙여 빗물이 내려가는 길을 만들고, 도르래 끝에 양동이를 매달아 학생들이 놀면서 과학 원리를 터득하게끔 했기 때문이다. 체육관 앞에는 빗물을 저장하여 필요에 따라 재활용할 수 있는 우물 형태의 빗물 저금통을 만들었다.
목공실 ‘감성공작소’도 학교가 자랑하는 공간이다. 학부모 목공 동아리인 ‘목꾸라지’도 운영된다. 감성공작소 벽면에는 “우리는 여기서 더불어 상상하고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며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라는 공간의 의미가 적혀 있다. 매끄럽게 마감된 의자, 학생들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도시 모형 등 목공실 곳곳에 놓인 작품 수준만 봐도 평소 목공실이 얼마나 활발히 활용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꿈오름길 옆에 자리한 모험놀이공간, 짚 라인 등에도 모험을 마친 학생들의 발자국이 가득하다. 모험놀이공간에서는 주 1회 학부모들이 나와 학생들과 놀아주는 ‘와글와글 놀이터’가 진행된다. 여름 방학으로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교사들은 밝게 웃는 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공간이라도 학생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금방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학생들이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어요. 아무쪼록 하루빨리 많은 학생들이 등교해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면 좋겠어요.”
학교의 심장은 바로 학생이다. 교사들의 소망처럼, 하루빨리 학교 곳곳에 심장 소리가 울려 퍼지길 함께 바라본다.

services section